“서브 미스하는 애들은 연봉을 확 깎아버려!”

2019-2020 V리그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무려 1등을 했다. 우승은 아니란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지막 6라운드 대결을 생략하고 5라운드까지의 성적으로 순위를 매겼기 때문에 1등은 했지만, 리그 우승은 못했다. 그래서 다가올 시즌에 입을 유니폼에도 별을 달 수는 없다고 한다. 나는 점선으로라도 별을 새기면 어떨까 싶지만 말이다.

그 팀의 프론트로 있었던 것이 2013-2014 리그까지였으니 그 뒤로 4시즌만에 리그 선두를 차지한 것이다. 꼴찌를 다투던 팀에서 리그 1위까지 오면서 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감독부터 구단주, 프론트, 코치진은 물론 주력 선수들도 다 바뀌었다. 팀의 상징이 황새에서 벌로 바뀌기도 했다.

그룹의 높으신 분들을 모셔놓고 패전을 거듭 할 때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패전한 다음날은 쪽 팔려서 새벽 같이 출근을 하게 된다. 직원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제 경기는 잘 봤어요. 근데 계속 연패를 해서 어떻게 해요? 힘내세요.’라며 격려를 보내지만,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다. 중간에 화장실 갈 때도 복도에 사람이 없는지 살피게 된다. 행여 엘리베이터에 다른 직원들과 함께 타게 되면, 마치 바쁜 일이 있어 대화가 힘든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서 요란스레 뭘 하는 척도 했다. 엘리베이터 모서리 쪽을 바라보며 최대한 구석에 붙어 서서 말이다.

그럴 땐, 단장의 호출이 잦다. 수시로 불려가 화풀이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배구의 배자도 모르는 은행원이 갑자기 단장이 되다 보니 그저 눈 앞에 보이는 현상에 대한 지적만 일삼을 뿐이고, 자신이 화가 난 것을 선수단에게 전달하여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라는 의도였다.

 

문외한이 평생 전문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서브 미스가 왜 이리 많아? 시합이 아니라 서브 미스로 점수를 헌납하고 있어.”

시합이 제대로 풀리질 않으니 강한 서브로 상대팀을 흔들어 보려는 속셈이었는데, 강 서브엔 원래 미스가 잦다. 그런데 그런 전략은 눈에 보이질 않고 넘어간 점수에만 애를 태운 단장이 버럭 한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서브 미스한 거 표로 정리해와. 그리고 서브 미스한 만큼 다음 연봉 협상 때 반영하고 이걸 감독에게 전달해.” 어쩔 수 없이 전체 선수들 기록을 뽑았고, 개개인들의 서브 성공과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했다. 더 속 상했던 것이 당시 팀은 전체 팀들 중에서 서브 미스를 가장 적게 하는 팀이었다.

정리해서 보고는 했지만 차마 선수단에 전달할 수는 없었다. 시합을 마치고 감독과의 늦은, 평일 시합이 끝나고 나면 저녁식사는 열 시 정도나 되기에, 그것도 아주 늦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반주를 몇 잔 걸치고 넌지시 구단 분위기를 전달했다. 그것도 두루뭉술하게‘강공은 좋지만 미스를 좀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이다. 나이 많은 노장 감독은 말 하지 않아도 이미 구단 분위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남자 배구 사상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아시아의 거포’였다. 하지만 결국 3년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서브만 지적한 것이 아니었다. 패전을 할 때마다 이런 저런 주문 사항이 차고 넘쳐났다. 다른 배구 문외한인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이상한 말들을 주문하기도 했다. “확실하게 전달해”라고 윽박지르곤 했지만, 단 한번도 확실하게 전달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선수단은 감독부터 수련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들의 인생 전체가 배구인데, 어쩌다 한 두 마디 들은 문외한들의 주문들이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중간에 끼어서 속앓이를 있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겉으론 웃고 다녔지만항상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프로 구단들이 잘 안 풀리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모기업 즉 구단주나 단장으로부터의 입김이 세다는 것이다. 최근 모 스포츠지에서 분석한 내용도 거의 일치했다. 우리 나라 프로야구단이 10구단 체제인데, 신생팀을 제외하고, 20년 이상 우승을 하지 못한 프로야구단들의 공통점이 그룹에서의 영향력이 너무 세다는 것이었다.

올해 프로야구는 코로나로 인해서 예년에 비해 뒤늦게 출발해 6월 중순인 지금 각 팀이 38경기씩을 소화하고 있는 일정이다. 3위부터 7위까지는 21승에서 19승까지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변치 않는 순위가 있으니 38전 중에서 달랑 9승을 거둔 한화의 10위라는 순위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예상하고 있다. 이 순위는 올해 가을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지난 6월 13일까지 무려 1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가 14일 두산전에서 승리의 눈물을 보인 뒤에 다시 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 18연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35년만에 역대 최다 연패 타이 기록이라고 한다. 1999년에 쌍방울레이더스가 17연패를 했고, 그보다 앞서 1985년에 삼미슈퍼스타즈가 18연패의 기록을 세웠는데, 이 힘든 기록을 35년만에 재현했다. 그런데 문제는 쌍방울이나삼미는 이미 없어진 팀이다. 다시 말하면 한화는 현존하는 팀 중에서 최다 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이라는 말이다. 오죽하면 ‘딸 시집 보낼 때 남자가 한화 팬이면 무조건 허락해줘라. 절대 한 눈 안 판다.’는 말이 인터넷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연패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모기업의 입김 때문이라고 한다. 모기업이면 구단주이자 광고주다. 야구단은 야구를 팔아서 먹고 살아갈 수 없는 구조다. 유니폼에 새겨진 모기업의 로고 값으로 지원을 받는다. 때문에 야구단 입장에서는 차라리 하느님의 명은 거역할 수 있어도, 그 보다 더 위에 있는 광고주이자 구단주의 푸념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룹 임원들의 지나가는 한 두 마디가 구단 전체의 기조를 바꿔버린다’고 분석하고 있다.

 

상황을 던져 놓고 기다리는 속에서 대박이 영근다

국민 예능을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가 있다. 무려 십여 년 전부터 아직도 그들이 쌍두마차다. 김태호 PD와 나영석 PD다. 사실 두 사람의 진가는 처음부터 그리 드러나지 않았다. 김 PD의 프로그램은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한다든가, 석탄 광산에서 삽질을 하기도 했고, 황소와 줄다리기 시합을 하는 등 어찌 보면 등장한 쟁쟁한 스타들의 몰골을 어이없게 만들어 가며 썩소를 받기에 충분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더 이상 화면을 주시하지도 못할 정도의 민망한 장면들이 많았다. 그 프로그램이 끝나자 한 발 더 나가서 아예 주인공 등장인물에게 카메라를 던져주고 ‘놀고 있으면 뭐 하냐’고 카메라로 찍으면서 놀라고 했다.

나 PD의 프로그램은 여럿이 떼지어 여행가서 말도 되지 않은 어설픈 게임들로 우스꽝스런 장면들을 연출하며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물에 빠져대는 그런 프로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유명세로 방송사를 옮기더니 그 뒤로는 등장인물들에게 설정만 던져 놓고 뭘 하든 그냥 카메라들 들고 기다린다. 바닷가에서 조개 줍고 고기 잡기도 하고 산촌에서 깻잎이며 고추를 따다가 밥을 지어 먹는데 카메라는 그냥 지켜볼 뿐이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먹을 걱정하고 점심 때부터는 저녁 먹을 궁리만 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는 생각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움직임들에 서서히 녹아 들어 버린다.

공통점이 상황 전제 하나만 던져주고 카메라는 인물들이 펼치는 즉흥적인 흐름을 그냥 담아 나간다. 일이십 분짜리 짧은 영상물도 아닌데, 대본도 따로 없다. 던져 놓고 기다리는 PD들도 대단하지만, 그런 PD들이 그렇게 찍도록 내버려 두는 방송사들도 대단하다. 그러다 보니 ‘이게 뭔가?’ 싶던 시청자들도 그 속에서 재미를 찾고, 프로그램도 인정받게 된다. 최소한 시시때때로 시청률이나 그 밖의 목적으로 누군가의 의도적인 개입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든 팀장으로 발탁하는 배경은 비단 실무역량이 된다는 이유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팀원이었을 때, 팀장들은 그냥 윗분들의 지시를 받아와서 아래에 전달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다. 짬밥이 차니까 그냥 자리를 물려 받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는데, 대부분이 수동형으로 버티기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적자 생존’과 같이 ‘윗분들이 하는 얘기는 모조리 메모해.가능하면 숨소리까지도 적어놔라’고 배웠다. 그래서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그 윗분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면 머리 처박고 쓰기에 바빴다. 그 옛날 학창시절 선생님이 깨알 같이 칠판에 쓰면 무조건 따라서 공책에 옮겨 적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 45분 동안 그 큰 칠판 전체에 걸친 판서를 무려 서너 번씩 해대는 놀라운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했고, 단계별로 상황에 맞춰 보고를 해야 했다. 보고할 게 없더라도 눈도장은 찍어야 했다. 알아서 잘 하는 사람들보다는 시키는 만큼 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았다. 자칫 알아서 하다가 일이 어그러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경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배워서 리더가 되고 사장이 되어보니 일을 맡길 줄을 모른다. 앵무새가 되어서 들은 대로 전달해야 하는데, 이제는 전달자 입장이 되고 보니 어디서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 전달하고 확인하고, 두 개 전달하고 또 확인한다.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의 파편만을 흩날릴 뿐이다. 그래 놓고 매번 답답해 한다. 위임이 아니라 간섭이다. 그것도 일일이 하는.

인텔의 CEO였던 앤드루그로브가 한 말이 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일을 할 수 없거나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능력이고 후자는 동기이다. 능력이 부족한 직원에게는 교육이 필요하고, 동기가 부족한 직원에게는 동기부여를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능력 자체가 부족한 직원에게 격려만 한다고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문외한이고 제대로 알지도 못해서 파편화된 지시를 이리저리 뿌려대고 성화하는 간섭은 일을 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하는 그것도 폭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