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져녁 때 친구들 모임에 오랜만에 나갔더니

식당에는 온통 나이든 분들 일색이었습니다.

아직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아니면 젊은 친구들은 아직도 일하고 있는 시간이라서 그랬는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주변 자리들에서 나는 소리들을 들어보면 우리처럼 대부분 친구들이나 동창들 모임 같은데,

언뜻 보니 얼굴들은 최소 10여년은 차이 나는 선후배들 모임 같아 보였습니다.

아주 젊어 보이는 분도 있는 반면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분도 같이 있는 거죠.

우리 동창 모임도 그런가 찬찬히 둘러보니 거의 비슷해 보였습니다.

얼굴들이 살아온 세월들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문득 내 얼굴은 어떤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음 한 켠에 조금 전 내린 지하철에서의 하차 역 안내 멘트가 변주되어 들렸습니다.

‘얼굴에 책임지는 나이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져녁 이후 며칠간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가끔씩 얼굴을 거울에 비치면서 말이죠. 그러다 어떤 비법(?)같은 것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일주일에 사흘씩 거의 열다섯 시간 정도씩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일시 잦아들었다가, 다시 위험 수준으로 등락을 거듭하며,

강의를 듣는 우리나 이것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학교도 힘들기는 매 한가지인 듯합니다.

다들 민감해지고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 맞추어 헉헉거리며 급하게 온 외부 교수가 수업 시작 전에 우리에게 묻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강의를 해도 될까요?’

학생 중 한명이 정색하며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해달라고 대답합니다.

일순 침묵이 흐른 후, 교수는 마이크를 찾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또 날이 더워지며 일부는 에어컨을 가동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코로나 확산 가능성을 우려해서 가동하지 말고 견디어보자고 의견을 냅니다.

이런 설왕설래가 강의 앞뒤로 종종 있는 일상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말없이 미소로 지켜보는 담당 교수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책임진 교수로서 코로나로 한동안 개강을 연기했었고, 일부 교수분 들의

격리조치로 출강을 못해 시간을 조정하는 등 살얼음판을 걷듯 노심초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우리 앞에 서면 항상 웃는 표정입니다.

학생들이 코로나로 민감해져 설왕설래가 많았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웃는 표정을 유지할까

궁금했지요. 그래서 틈날 때마다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가지 비결이 보였는데, 그것은 눈웃음, 즉 눈에 항상 웃음을 담고 있는 겁니다.

일단 웃음 띤 눈을 유지한 채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어디 그 노력만 있었을까요?

결정의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흔쾌히 넘기고,

무엇보다 학생들을 위하는 진심의 마음이 담겨서이겠지요.

나도 먼저 눈에 웃음을 담은 채 말을 해보려 합니다. 입 꼬리 올리기도 연습하려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선한 마음을 늘상 갖는 게 가장 중요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