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아시아나항공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1차 거래종결 시한을 앞두고 조건을 원점에서 협상하자는 의사를 밝혔다. 인수 의지는 변함이 없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급변한 만큼 모든 조건을 새로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책은행의 행보를 두고도 "이대로는 문제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HDC현산 “코로나19 직격타… 계약조건 변경 원해”

9일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인수가치를 훼손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재점검 및 재협의를 위해 계약 상 최종기한일(Long Stop Date) 연장에 공감한다는 의사를 채권단 측에 회신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수 계약 체결일 이후,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인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인수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여러 상황들이 명백히 발생되고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HDC현산은 계약조건 변경의 근거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아시아나항공 가치 급락, 아시아나항공 재무제표의 신뢰성 문제, 아시아나항공의 대규모 추가차입 강행과 부실계열사에 대한 자금 지원 등을 이유로 꼽았다. 

HDC현산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2019년 말 기준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 인식됐고, 1조7000억원의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무려 4조5000억원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2020년 1분기 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

자본총계도 2020년 1분기 말 현재 2019년 반기말 대비 1조772억원 감소해 자본잠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당기순손실은 2019년 12월 말 공시 대비 증가된 2019년 순손실과 2020년 1분기 당기순손실을 합해 모두 8000억원 이상 늘어났다.

지난 3월 공시된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외부감사인이 아시아나항공의 내부회계관리제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명해 이번 계약상 기준인 재무제표의 신뢰성 또한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자회사의 상황도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에어서울은 자생력을 상실한 채 모기업 아시아나항공의 금전대여에만 의존하고 있다. 에어서울은 지난 5일에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운영자금 300억원을 빌렸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의 이번 결정이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사태가 악화하면서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부터 발을 뺄 것이란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며 “러시아의 기업결합심사가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산이 매각을 완수할 지는 미지수”라고 귀뜸했다.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항공업 진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지난해 12월 2조5000억여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8억원에 사고, 약 2조1777억원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인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을 둘러싼 매각 환경이 급변하면서 HDC현산의 인수 포기설이 제기됐다. 실제 HDC현산은 지난 4월 말로 예정됐던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일을 무기 연기했다. 당시 러시아에서의 기업결합 심사 등 선행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을 마무리하겠단 입장을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인수 포기시 이행보증금 반환 가능성 등을 따져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상황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내용증명을 보내 “6월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사를 밝혀야 계약 연장이 가능하다”며 HDC현산 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당초 계약 종결 시한은 6월27일이었다. 

“산은, 금융논리 아닌 산업 경쟁력 측면서 검토해야”

채권단과 HDC현산의 가격 줄다리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금융논리에 치우쳐 경영 정상화가 아닌 가격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코로나19라는 예상지 못한 위기로 기간산업인 항공업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국책은행이 제 값 받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통매각을 고수하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지주회사법 등 법률적 문제도 있지만 분리 매각 시 주관사를 재차 선정하는 등 거래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각 가격 극대화도 통매각 고수의 근거로 꼽힌다. 

이는 지난 2016년 한진해운 파산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한진해운은 3000억원의 정부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파산으로 직행했다. 한진해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회사 뿐 아니라 항만 기반 등 부대시설은 물론이고, 중소해운사와 포워더 등 전후방산업도 수렁에 빠졌다. 세계 1위였던 한국 해운업의 위상은 나락으로 꼬구라졌다. 

2018년 매각에 실패해 표류중인 대우건설도 마찬가지다. 호반건설이 유일하게 인수의사를 밝혔지만 실사과정에서 대규모 해외 부실이 발견되면서 약 10일 후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당시 산은은 수주산업의 특성을 들어 손실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지만 무리한 매각을 추진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몇 차례 주인 찾기에 실패하면서 2017년 시공능력평가 3위였던 대우건설의 경쟁력은 지난해 기준 5위까지 낮아졌다.

산은의 과거 몇 차례 실패 경험을 염두에 봤을 때 항공산업의 경쟁력 저하도 충분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만약 HDC현산이 매각작업서 손을 뗄 경우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하에 두고 관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후 업황이 개선되면 다시 매각을 추진하는 식이다. 그 상황에서 인력감축, 외형 축소, 수익성에 따른 사업 재편 등 고강도 구조조정이 수반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2위 항공사의 위상은 물론이고, 항공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제3의 인수자를 통한 재매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산업적 측면을 생각해 절충안을 내는 등 인수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항공업이 시계제로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 국책은행으로서의 책임감을 좀 더 보여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시장 논리로 볼 것이 아니라 기간산업으로 보고 코로나19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며 “현산이 손을 뗄 경우 다른 인수자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책은행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