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앞다퉈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도입했다. 바이러스를 피해 비대면·비접촉 생활인 이른바 ‘언택트’가 일반화되면서 재택근무는 선택의 여지없이 수용해야 하는 강제사항이 되버렸다.

한국은 2017년부터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근무제를 지원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 도입률은 8.5퍼센트에 그쳤다. 평균 활용실적은 원격근무제 1.5명, 재택근무제 1.3명으로 기업에서 제도를 도입했어도 실제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매우 낮다. 그런데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 및 인터넷 평균속도는 전 세계 1위다. 집집마다 PC나 노트북이 보급되어 있고 모바일 보급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소극적인 이유가 뭘까?

첫 번째는 ‘만나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이다. 직원끼리 면대면 빈도가 높을수록 협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원격근무대신 면대면 근무를 강화하는 전략도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나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은 좀 다르다. 협업보다는 일을 진행하기 위한 상사의 업무 효율성에 무게가 더 실린다. 상사의 눈앞에 직원을 가둬놓고 통제해야 하는데 눈앞에 없으니 불편한거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피드백도 하고 여러 감정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런 행위가 없으니 존재가 미약해진다. 최근 재택근무를 시행한 기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의 장점을 조사한 결과 “직장상사의 감시를 피하고 얼굴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라고 응답한 비율(23%)이 적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문화적 맥락에 따른 차이다.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 사회다. 고맥락은 메시지에 담긴 정보보다 맥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팀장이 “이건 중요해”라고 말하는 표현이 진짜인지 엄포용인지 알 수가 없다. 상사가 일을 시킬 때 일의 중요도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눈빛과 말투, 표정 등을 통해 중요도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데 재택근무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고맥락 사회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이 대표적인데, 이곳 사람들은 서로 친밀하고 깊게 관여한다. 이 사회에서 정보는 깊은 의미를 담은 단순한 메시지로 넓게 퍼진다.

세 번째는 현상유지편향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는 출퇴근 시간 절약, 공간시설 비용 절약 등의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 미래의 업무 방식이 이런 방향으로 간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나오면 사람들은 현재의 성립된 행동에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면대면 만남을 통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야근하고 늦은 시간 회식까지 함께 하면서 어울려 일하는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에선 재택근무를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봤다. 굳이 효율성의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서로 얼굴을 보며 잡담을 나누며 일했던 방식이 익숙하고 검증된 것이다 보니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재택근무를 ‘미친 짓’이라고 했다.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미친 짓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