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화장품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은 증가했지만, 시장은 점점 과포화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정통 화장품 기업들도 고전하고 있어,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도 마냥 쉽지 만은 않을 상황이다. 

백화점, ‘유통’이 전부가 아니다

식약처에 따르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18년 기준 1만2673개에 이른다. 화장품 업체가 이미 많은 상황에서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제약업계, 식품업계에서도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더마 코스메틱이 대세가 되면서 전문적인 기술력을 갖춘 제약회사도 빠르게 성장하며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화장품 시장에 수많은 유통기업들이 진출했지만, 정통 화장품을 위협할 만한 사례는 딱히 없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운영하던 사업에서 파생적인 성격의 소규모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점도 이유로 꼽힌다. 제약업계가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지만 메인 사업은 신약과 R&D 분야인 점도 같은 설명이다.

다만 백화점 채널들의 화장품 사업 진출은 출발점이 다르다. 인지도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중소브랜드와 달리 백화점이라는 고급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 면세점이나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 쉽게 노출되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전문적인 기업들이 기초 케어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만큼 제약도 존재한다. 색조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스킨케어 시장에서는 비전문기업 브랜드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출시 초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대기업 브랜드일 지라도 버텨내긴 힘들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6년 자체 화장품 브랜드 ‘엘앤코스’를 야심차게 론칭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약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전문가들도 화장품 사업은 채널보다는 브랜드 빌딩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백화점에서 출시하는 자체 화장품들은 정통 화장품 기업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국내에서도 초창기 자리 잡지 못하면 해외 진출은 거의 힘들다고 보면 된다. 정통 화장품 기업들은 수년간 다져온 노하우로 잠시 주춤할 때 다시 일어날 여력이 되는 반면, 노하우 없이 진출한 기업들은 반짝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세계는 시코르 등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현대백화점은 자체 제작이 아닌 전문 기업 인수를 통한 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안전장치는 있다”면서도 “유통 채널만 믿고 제품을 많이 진열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찾진 않는다. 단지 백화점 브랜드 가치만 믿고 시장에 진입한다면 큰 코 다칠 수도 있어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 아모레퍼시픽 미래파크 제 2연구동 미지움.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기자

아모레·LG생건, 하반기 포스트코로나 대안은?

현재 화장품 시장은 코로나19로 주춤하고 있는 상태지만 관련기업들이 꾸준히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업계 부진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활기를 찾으면 화장품 업계가 ‘K-뷰티’는 물론 남성 소비자까지 포섭하며 꾸준히 판로를 넓히는 등 성장 가능성이 비교적 크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정통 화장품 기업들은 하반기 포스트코로나를 위해 새롭게 대안을 준비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맞춤형 화장품 기술 개발, 국내외 디지털 체질 개선 등으로 성장 기반을 마련해 하반기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 명동 '아이오페 랩(IOPE LAB)'에서는 피부 유전자 분석과 맞춤형 3D 마스크 등의 서비스 체험이 가능하다. 출처=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5월 호주 럭셔리 스킨케어 전문 기업 ‘래셔널 그룹’과 지분 투자를 동반한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면서 맞춤형 화장품 솔루션 분야 공략에 나섰다. 래셔널 그룹과 핵심 역량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고객 맞춤형 화장품 솔루션 분야에서 성장을 이뤄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명동에 오픈한 ‘아이오페 랩’ 매장은 맞춤형 화장품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이오페 랩은 피부 유전자 분석과 맞춤형 3D 마스크 등의 서비스 체험이 가능한 프리미엄 매장으로 고객의 피부 측정 및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개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한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이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반사하는 무기 자외선 차단 소재 기술을 개발, 관련 성과를 소재 분야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는 성과를 냈다.

▲ LG생활건강 연구원들이 실험중이다. 출처=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은 아시아를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가장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체결한 피지오겔(Physiogel)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을 약 19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종결했다. 지난 2014년 인수해 1000억대 브랜드로 육성한 CNP(차앤박)과 함께 글로벌 더마브랜드 피지오겔을 확보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더마 카테고리 내에서 글로벌 입지를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기술적인 방면으로는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에 힘주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 안에 사는 미생물과 생태계를 합친 말로 피부에 유익균 먹이를 제공해 장내미생물의 균형을 회복하는 기술이다. LG생활건강은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 오휘를 활용해 피부 균형을 개선해주는 ‘더 퍼스트 제너츄어 심-마이크로 에센스’를 출시했다. 

▲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을 적용한 오휘 '더퍼스트 심마이크로 에센스' 제품. 출처=LG생활건강

오휘 브랜드 담당자는 “새롭게 출시한 이번 에센스는 더 퍼스트 제너츄어만의 핵심 성분과 기술에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을 더했다”면서 “특유의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골드 패키지로 품격을 더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정통 화장품 기업들이 1년에 투자하는 연구와 개발비 수준은 일반 비전문기업에서 생각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특히 맞춤형 화장품은 고급화 전략에 맞는 제품으로 정부에서도 밀어주는 사업으로,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요한 만큼 중소기업들이 쉽사리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덕 교수는 “코로나19로 방역품인 마스크·세정제 수요는 물론 K-뷰티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실제 3·4월 화장품 수출이 증가하고 5월은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당장 하반기 화장품 시장이 완벽하게 나아질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불황 대비 계속 꾸준히 성장하는 시장이기에 대비만 잘하면 해외 시장 공략은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