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간 무역갈등이 어느 순간 지정학적, 기술적, 이념적 경쟁으로 확대됐다.     출처= Nikkei Asian Review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개인간에도 이혼은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든다. 그들은 독립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 대가로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한다. 최근 펼쳐지고 있는 미·중 결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중간 무역갈등이 어느 순간 지정학적, 기술적, 이념적 경쟁으로 확대됐다. 이제 부분적인 디커플링은 불가피해 보이며 이는 세계 시장, 경제, 정치를 재편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아마도 성장을 더 둔화시키고, 더 많은 정부 지출을 요구할 것이며, 나아가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고조시킬 것이다.

홍콩 보안법 강행이라는 중국의 공격적 조치로 서방 세계에서는 중국과의 경제적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프랑스와 호주 같은 나라들이 중국의 조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전반적인 관계 단절'을 고민했다.

미국은 250억달러(30조원) 규모의 '리쇼어링 펀드'(reshoring fund, 중국에서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을 지원하는 자금)를 고려하고 있으며, 중국의 기술 선두주자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다시 확대됐다. 미국은 또 미국의 기술 회사에서 일하거나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하는 중국 유학생들과 기술자들에 대한 승인을 늦추거나 취소하면서 미중 인적 교류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다.

리서치 회사인 로디움 그룹(Rhodium Group)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직접 투자는 2012년 이후 매년 150억 달러(18조원) 정도의 규모를 꾸준히 유지하는 등,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거대 시장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정학적, 기술적, 이념적 경쟁이 자기실현적 위기를 초래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의 결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 대가는 양측 모두에게 상당할 것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의존은 마스크나 아이폰을 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 첨단 기술의 주요 고객이고 중국의 학생들은 기초과학과 수학 교육에 수십 년 동안 투자가 저조했던 미국의 대학에 상당한 자금줄이 되었다.

미국 대학들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10년 동안 연방 연구 기금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지만 미국 대학들의 과학 혁신의 여전히 앞서 나가고 있다. 미국 대학이 그럴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값비싼 미국 학위에 대한 유학생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 학생들은 가장 큰 고객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들은 2017년 미국에서 교육비 관련 비용으로 139억 달러(17조원)를 썼다. 퓨 자선 신탁(Pew Charitable Trust)의 자료에 따르면, 이는 그 해 연방 연구 기금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이다. 또 이들 중 상당 수가 과학을 공부한 후에 미국 기술 기업에서 일하면서 인건비 절감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중국 본토에서도 ‘아이폰 市’(iPhone City)라는 별명이 붙은 허난(河南)성 중부의 정저우(鄭州) 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과 여러 제조 거점들은 애플이 글로벌 재고를 일주일 정도분만 갖고 있으면 될 정도로 아이폰을 빠르게 대량 생산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애플은 R&D에 필요한 현금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체 제작을 더 많이 하는 경쟁사 삼성은 지난 5년간 평균 60일 정도의 재고를 보유해 왔다. 미국이 베트남, 대만, 멕시코와의 관계를 확대 구축하면 공급망 다변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중국 본토의 규모의 경제를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

또 수십 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대에 머물고 있는 미국의 연구개발(R&D) 상황을 고려해 보자. 미국의 R&D 투자 구성은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연방정부는 GDP의 약 1.2%를 R&D에 지출했지만 지금은 0.7%에 불과하다. 그 차이를 미국 민간부문이 메우고 있다. 거대하고 값싼 노동력과, 미국 학위와 마이크로칩에 대한 끝없는 식욕을 지닌 중국과의 관계가 그나마 미국의 R&D 투자가 GDP의 일정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출처= OECD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기술 판매를 줄이는 것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지연시킬 수 있겠지만 만일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필요한 기술을 구매할 수 있다면 미국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다. 중국은 R&D 지출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새천년 전환기에 100억 달러에 불과했던 투자는 2018년까지 3000억 달러(GDP의 2.2%)에 육박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미중 관계의 악화는 분명 중국의 기술 발전을 둔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R&D 투자가 미국의 기술 수준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았는지를 감안하면 디커플링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완전히 지연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중 어느 것도 미국의 안보 우려와 관련이 없지 않다. 잠재적인 군사 경쟁자로부터 주요 네트워크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 또 안보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는 주제에 대한 연구 협조는 엄격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의료 용품들은 가급적 본국에서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 강경파는 양국의 공급망과 교육적 연계를 분열시키려는 광범위한 시도가 미국 자체의 경쟁력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디커플링이 실제로 진행된다면, 중국의 갭을 메우기 위해 기초 연구와 과학 및 수학 교육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연방 자금이 투자되어야 한다. 그것은 세금 인상과 더불어, 빠져나간 중국인들의 두뇌를 대신하기 위해 인도 등 다른 나라 유학생들을 더 받아들이는 이민 정책을 의미할 것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또 안전하고 다각화된 공급망의 개척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준비를 해야 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기술과 경제 강국으로 군림해 왔다. 미국이 중국과 결별하고 새로운 도전자 국가들과의 약한 연결고리로도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그것은 미국 정부와 미국민들이 그 모든 비용을 감수하고 기존의 동맹국들과의 훨씬 더 깊은 경제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