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준비된 사람이지, 닥쳐서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유명한 홍수환씨가 한 말이다. 프로페셔널의 줄임말인 프로는 우리도 너무나 흔히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 지는 의문이다. 사전에서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요즘은 웬만한 직장인이면 프로라고 불려야 하고 그 정도가 되어야 인정 받게 된다.

우리가 아는 프로는 잘 싸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비싼 몸값에 많은 돈을 받고 스타로 대접받는 사람들이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들은 원래 잘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된다. 권투가 되었든 격투가 되었든지 간에 한 게임 치르고 왕창 받는 사람들로 오해하기 쉽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잘 하기 시작해서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고 수억 원씩 계약해야 프로 아닌가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프로가 얘기하는 프로는 잘 준비한 사람이라고 한다. 지난한 준비과정을 잘 마친 자가 바로 프로라는 얘기다. 어느 정도나 준비해야 잘 준비한 것일까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프로는 최대한 잘 준비해서 시합에서는 이기고 들어가는 자가 진정한 프로가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 시합이 어떤 것이든지 말이다.

최근 방송된 ‘골목식당’ 프로그램에서 나온 내용이 새삼 기억에 남는다. 대상이 된 점포는 고모와 조카가 함께 운영하는 오리주물럭집이었는데, 방송을 탄 덕분인지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손이 딸리다 보니 주문은 밀리고, 방치된 테이블도 있었고, 평소처럼 손님들을 친절하게 맞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하지 못했던 경험이었기에 식당 사장은 ‘대박’의 기운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걸 보는 내내 내 맘이 편치 않았다.

 

고객은 사정 봐가면서 평가 하지 않는다

북새통 같았던 점심 장사가 끝난 후, 백 대표가 그 집을 찾아갔을 때의 결론은 결국 내가 짐작하던 것과 같았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식당 사장은 상기돼 있었다. ‘오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어찌됐던 그들을 응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제법 만족한 눈치였다.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한동안 장사 잘 되니까 다 된 거 같죠? 사실은 그 동안 손님을 다 놓친 거예요.”

역시나였다. 저런 식으로 해서 손님들이 다시 찾을까 했던 우려를 백 대표가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 식당은 아직 준비가 되지 못했다. 그저 오는 손님 다 받기 위해 동동거렸을 뿐, 손님들이 만족하는 지에 대해서는 미처 신경을 쓸 새도 없었다. 그렇게 무작정 손님만 받는다는 건 준비가 덜 됐다는 반증이고 결국은 손님을 잃고 있는 것이었다. 손님은 식당의 사정을 봐 가면서 평가하지 않는다. 식당 주인이 바쁘다는 게 뻔히 보이기에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마음이라면 아직 프로가 아닌 것이다.

“판단 착오는 실수가 아니라 실력입니다.”라고 지적했던 백 대표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오는 손님을 어쩌란 말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준비된 한도 내에서만 제대로 해야 진짜 장사이고 그게 프로의 길이다. 사실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돈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프로얘기를 하면서 좀 동 떨어진 것 같지만, 을사늑약 당시의 조선과 일본의 액션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준비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가장 극명한 대조는 바로 당시의 조선과 일본이 아닐까 싶다.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그저 암기의 대상이었지 그 의미는 새길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새삼 달리 보인다. 왜 이런 건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을까, 아니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05년 9월 5일 러시아와 일본 간의 포츠머스조약(The Treaty of Portsmouth)이 체결됐고, 이 협상 과정에서 일본과 미국간에 한국 문제에 대한 밀약이 있었다. 한 달여 앞서 진행된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Katsura Agreement)이다. 학교에서 배운 기억으로는 다음 중 시대순으로 바르게 된 것을 고르시오 하던 시험문제뿐이다. 우리는 그 조약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한 체 뭐는 몇 년도, 또 다른 것은 몇 년도 하는 식으로만 배웠기 때문에 역사시간이 그렇게 지루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도 말이다. 행여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길까 두려워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미국의 전쟁장관 윌리엄 테프트(William H. Taft)와 일본 총리 가쓰라가 일본 도쿄에서 비밀리에 회동했고, 여기서 일본의 가쓰라는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에 양해하고, 미국의 태프트는 일본의 한국 보호통치를 지지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1882년에 서양 국가로는 최초로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의 제1조에는 선위조처 (善爲調處), 즉 ‘만약 제 3국이 조약 일방에게 부당하게 또는 강압적으로 간섭할 때에는 조약 상대국은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원만한 타결’이라는 말이 아리송하지만 사실 이 표현은 당시의 외교 관행에서는 “상대국의 안전을 담보’하는 의지로서는 최상의 문구였다고 한다.

이런 조약을 체결했기에 미국은 을사늑약 상황에서 조선의 안전을 위해 먼저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루스벨트, 우리는 지금도 루스벨트를 미국에서 괜찮은 위인들 중의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잖은가, 그 루스벨트는 일본에 경도된 인물이었다. 때문에 조선과 미국, 양국 간에 맺은 조약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쳐버렸다. 한 마디로 비겁했고, 국가간에 맺은 조약 위반이었다.

 

중요한 건 뛰어난 발상이 아니라 실행이다

당시 국제정세의 힘의 논리도 있었고, 한국에 대한 무지도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루스벨트의 친구이자 반한 친일 언론인이었던 케넌과 하버드대 동창인 일본인 가네코의 영향이 컸다. 가네코는 일본 외교가 만들어낸 막후 외교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러일전쟁 후 미국과 영국에 막후 사절을 파견할 때, 루스벨트와 대학 동창인 가네코를 미국 사절로 선정했다. 가네코는 미국에 체류하며 일본 무사 정신에 관한 영문 책도 선물했고 일본 역사를 소개하기도 하는 등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이미 루스벨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마디로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를 다져가며 미리 준비를 해왔고, 조선은 그런 준비가 전무했다. 결론은 우리가 아는 과거 그대로다. 그리고 그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루스벨트는 1919년 죽기 직전에서야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점에 대해 1905년 9월 포츠머스회담에서 내가 일본에 동의했다.”는 메모를 가족들에게 남겼다. 루스벨트 스스로 일본의 한국 강점에 대한 동의를 시인한 것이다. 그리고 1921년, 을사늑약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루트가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을사늑약 당시 미국이 취한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에 “국제법상으로는 미국의 행위에 정당성이 없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엄연히 국가간의 정식 조약이 있었음에도 미국이 한국을 포기했다는 정책을 시인했고, 국무장관은 또 조약을 무시한 미국의 행위에 정당성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준비되지 아니한 조선에게는 너무 늦었지만 말이다.

거창한 얘기를 끌어다 붙인 것 같지만, 결국 성공이라는 것은 뛰어난 발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돌아간다. 대박 나는 아니디어 그 자체가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준비하고 실행하는 결과가 대박에 이르게 한다. 그게 바로 프로의 자세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일단 착수하고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번번이 혁신을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보다 실수에 관대하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도 실수에서 빚어진 그 어떤 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라는 것이 주어질 수 있다. 모든 실수를 예방할 수는 없지만 해결해 나갈 수 있기에, 성공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실수로 포장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것이나 이 정도면 준비가 됐겠지라는 판단은 실수가 아닌 실력이다. 실력이 그 정도이니 딱 그 정도의 판단을 내리게 된다.

예전에 밥 루즈의 ‘빈 카운터스 (Bean Counters)’라는 책을 읽었다. 숫자와 데이터로 기업을 망치는 사람들을 빈 카운터로 지칭한다. 이 책에서 실수에 대한 얘기가 좀 많이 나온다. GM이 망가지고 있을 때, 문제를 감추고 안 좋은 것은 일단 최대한 늦게 알리는 것이 오랜 전통이 되다시피 했다며 그걸 ‘똥개 근성’이라고 불렀다. 개가 집 안에서 똥을 쌀 때는 주인이 찾기 힘든 장소만 골라서 싸는 것을 빗대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GM 같은 큰 회사일수록 문제가 드러나는 데에 오래 걸린다. 아니면 실수나 실패로 자신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뭔가를 해서 실수하는 것보다 뭔가 하지 않아서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게 그 조직의 실력이자 한계라는 생각이다.

앞에서 얘기한 골목식당처럼 대부분의 조직은 실패가 두렵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동시에 이 일 저 일, 가능성을 두고 밀어 부친다. 오는 손님 하나라도 놓치게 될까 싶어 식당이 미어터져라 그저 안으로 들이기만 한다. 그런 한계 상황에서 골목식당들은 백 대표가 던져주는 솔루션에 목을 멘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힘에 부치는 상황에서 리더가 모든 답을 알려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져서 그 다음 솔루션이 오기를 기다린다. 또 다시 사람들은 리더가 알려준 답에 따라 일을 수행한다. 결국 리더는 자기가 없으면 사람들은 결코 답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추락하는 조직의 수순이다. 그게 딱 그 조직의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