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면,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처럼 익살맞은 속담도 드물다. 아시다시피, 이 속담의 사전적 의미는 우연히 운 좋은 기회에, 하려던 일을 해치운다는 말이다. 그런 뜻의 속담을 어쩌다가 떡과 제사에 빗대어 만들었는지 기발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갑자기?’라는 반문이 있다. 친구가 ‘나 떡볶이 먹고 싶어.’ 라고 말하면, ‘배고파?’ 혹은 '정말?'이라고 묻는 대신, ‘갑자기?’라고 묻는 식이다. 애초에 '나 급 떡볶이 먹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급'이라는 접두사가 갑자기란 뜻의 부사가 되어버렸다. 만약 어느 집 가장이 떡 있으니 급 제사를 지내자고 한다면, 요즘 자녀들은 ‘갑자기? 아빠?’ 이렇게 물을 것이다.

제사라는 전통문화는 사실 한국의 여인들을 속박하는데 일조해온 측면이 있다. 조부, 조모는 물론이고, 얼굴도 못 뵌 증조, 고조, 3대 이상의 조상님에게 절기마다 선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 몇 십 대 손인 친구가 있다. 요즘은 제사 음식도 아예 주문을 하기도 한다지만, 예로부터 종류도 많고 격식도 갖추어야 하는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 집안에 시집온 여인들의 몫이었다. 그 친구 어머님이 당신은 이 집에 시집와서 평생 제사 음식 만들다가 세월이 다 갔다고 하소연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60세 쯤 며느리에게 제사를 일임하고 도자기를 배우시더니 개인전도 여셨다.

살아있는 자의 수고를 수반하지만 제례를 통해 뼈대 있는 가풍과 효심을 계승하는 이런 점잖고 근엄한 제사일진대, 어느 집 아버지가 떡이 생겼으니 제사나 지내자고 한다고 상상해보면 참 희극적이다. 조상님도 때 아닌 급 제사상에 놀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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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를 찾은 40대의 여자 환자는 상악이 더 많이 나온 심한 돌출입이었다.

진료 중 여러 각도의 의학 사진을 먼저 찍고, 마지막으로 치아 상태와 교합을 보려고 ‘이~ 해 보세요’ 한 순간 20년간 돌출입수술을 해온 필자도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거 다 틀니예요' 라며, 그녀가 권투선수가 마우스피스 빼듯 틀니를 통째로 빼는 순간 깜짝 놀랐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치아는 상악에 한 개, 하악에 한 개, 단 두 개의 어금니였다. 나머지는 모두 벌건 잇몸뿐이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건 바로 이 환자 이야기였다.

치아 상태가 안 좋은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돌출입수술해왔지만, 치아가 딱 두 개밖에 남지 않은 환자는 처음이었다. 이 환자의 구강구조는 말 그대로 잇몸뼈 돌출, 즉 골격성(骨格性) 돌출입이라는 용어 그 자체였다. 치아가 없으니 치성(齒性) 돌출입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입술을 떠받치는 전치부 잇몸뼈에는 아예 치아가 없었지만, 그 잇몸뼈 골격이 만들어낸 환자의 돌출입은 상, 중, 하로 나누자면 단연 상급에 해당했다.

환자에게 물었다.

-아니, 어쩌다가 치아가 두 개 남을 때까지 치료를 안 하고 지내셨어요?

-그러게요.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몇 개 더 있었는데, 이번에 염증이 심해져 치료하려고 했더니 가망이 없대서 결국 다 뺐어요.

환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돌출입이 항상 컴플렉스였거든요. 이번에 임플란트를 싹 다 해 넣으려고 하다가 돌출입수술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상태로 돌출입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치아 다 빠진 김에 돌출입수술부터 하자는 것은,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참 신의 한 수다. 만약 환자가 임플란트부터 다 했더라면, 돌출입수술을 위해서는 기껏 해넣은 임플란트 네 개를 다시 제거할 수밖에 없다. 시간과 노력과 비용에서 환자에게 손해가 된다. 살다 보면, 더 이상 나빠지기는 어려운 상태에서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한다.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실수가 의외의 성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실, 필자가 오랜 기간 돌출입수술을 해오면서 치아 상태가 나쁘거나 충치가 많거나 전체 치아 중 대여섯 개 정도 결손된 환자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환자처럼 치아가 단 두 개 뿐인 환자는 처음이다.

그래서, 이 환자의 돌출입수술은 더 어려웠을까?

그렇지 않다. 그 반대다. 치아가 하나도 없으면, 돌출입수술은 기술(技術)적으로 더 쉽다. 돌출입수술을 하면서 아주 드물지만 만에 하나 손상될 가능성이 있는 치아뿌리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신경치료하고 씌운 이, 금니, 보철 등이 많은 경우에도, 오히려 돌출입수술이 (미세한 차이겠지만) 더 쉽다. 이미 신경치료를 한 치아는 오히려 손상으로부터 자유롭다. 치아결손이 많다거나 뽑아 버려야할 충치가 많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돌출입수술을 더 쉽게 만드는 셈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결손 치아나 보철 치아 없는 건강하고 튼튼한 치아를 가진 환자들의 돌출입수술이 더 많고, 이 역시 필자에게는 여전히 쉬운 수술이다. 단, 쉽다고 대충 해서는 안 된다. 내 손에 익은 수술일수록 안전과 아름다움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데 더 집중해야 한다.

돌출입수술 후 두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환자는 ‘웃지만 않으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돌출입이 없는 이상적인 입매로 기품 있고 우아해 보였다. 단, 활짝 웃으면 벌건 잇몸만 보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기이해 보이는 상태였다.

돌출입의 한을 푼 환자는, 이제 치아 임플란트를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돌출입수술로 악궁의 크기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임플란트를 해 넣을 치아 개수를 4개 줄일 수 있다. 그만큼의 임플란트 비용을 절약한 셈이다. 떡 본 김에 벼르던 제사도 지내고, 저축도 한 셈이다.

치아가 다 빠져버리게 된 사연이 있을 것 같아 환자에게 두세 번 넌지시 물어봤지만, 이야기하길 원치 않는 듯하여,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치아가 단 두 개 남을 때까지, 아마 환자에게 인생의 질곡들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돌볼 틈이 없을 만큼 가족에게 희생해왔는지도 모른다. 다름 아닌 종갓집 맏며느리로 평생 제사 지내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사는 동안 치아는 가족을 위해 바친 제물처럼 하나둘씩 모두 빠져버리고, 중년이 된 이제야 자신 안에 숨어있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큰 선물을 스스로에게 준 것이라고 행복한 마무리를 하고 싶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게을러서 평생을 양치질 잘 안하고, 치과 가기 귀찮아서 치아를 방치한 것이었다면 뭔가 스토리가 허술해진다.

그래도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셈 치고, 이왕 글 쓴 김에 칼럼으로 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