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집이 있었다. 1991년 유하 시인의 시집이다. 이 시집이 출간될 때만 하더라도 압구정동은 당시의 젊은 층을 대표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신세대상권이었다.

오렌지족이라는 새로운 수요층이 나타나는가 하면,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는 물론 청담동 언덕배기의 카페거리는 여성 수요층의 로망이었다. 패션트렌드를 리드하면서 최고의 명품 패션상권으로 부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압구정동 상권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4년 10월 21일, 강북수요층의 압구정상권으로의 진입로 역할을 했던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압구정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3년 동안의 교량공사가 끝나고 1997년 성수대교가 재개통되면서 압구정은 다시 활기를 띄는 듯 했지만 97년 말 국가부도사태라고 할 수 있는 IMF시대로 진입하면서 패션상권이 주도했던 압구정상권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면서 압구정상권은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압구정상권을 압도하는 강력한 경쟁상권인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이 부상하면서 수요층들은 다시 압구정과 멀어져만 갔다.

더욱이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은 대형 패션몰이 주도하는 압구정의 도시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왕복 2차로를 중심으로 160여 그루의 은행나무길이 고객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로수길 상권은 융복합(Convergence)상권의 결정체였다. 그렇다면 압구정상권은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최근 필자는 다시 압구정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올해 말 개통되는 분당선 연장선 개통을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푼 느낌이었다. 선릉역과 왕십리역을 잇는 분당선 연장구간 중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의 청담역 개통은 압구정 상권에 호재인 것은 맞다. 개통을 앞두고 벌써부터 임대료 및 권리금이 오를 것이라는 분위기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압구정 상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첫째, 압구정 상권에는 문화적인 칼라가 부족하다. 단순한 쇼핑상권과 일부 음식상권 외에는 이렇다 할 압구정 문화가 보이지 않는다.

경쟁상권인 가로수길 상권과 비교하자면 이국적인 정취나 패션 트렌드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하드웨어가 부족하다. 공연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것도 압구정 상권의 한계이다.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수요층들이 자유롭게 머무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압구정동 상권에는 머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움이다.

둘째, 업종구성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볼거리와 살거리, 놀거리가 공존해야 상권의 파워는 높아질 수 있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원스톱쇼핑에 길들여지고 있다. 상권도 소비자들로부터 주목받기 위해서는 먹고, 입고, 노는 것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압구정상권은 쇼핑상권 외에는 이렇다 할 테마가 약한 측면이 있다.

셋째, 압구정 상권에 발목을 잡는 요소는 작년 말 강남구청에서 40억 원을 투자해서 조성한 일방통행길이다. 인근 상인들은 일방통행길이 조성되면서 오히려 매출은 감소했다고 하소연한다. 상권 특성상 차량을 이용해서 접근하는 소비자들 역시 일방통행 길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압구정상권은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부활을 가로막는 요소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 옛날 명성을 되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본다.

김상훈
(주)스타트컨설팅/스타트비즈니스 대표컨설턴트. 1997년부터 맞춤형 창업컨설팅회사를 운영해온 창업시장 전문가. 현재 (주)스타트컨설팅과 스타트비즈니스(www.startok.co.kr) 대표 컨설턴트로 활동중이다. 대표저서로는 ‘두번째 잡으로 부자되기’, ‘못 벌어도 월 1000만원 버는 음식점 만들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