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고도 김순협 대표.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김순협 갤러리 고도 대표는 독일 유학출신의 회화 마스터(Master)로 통한다. 김 대표는 귀국 후 ‘한국미술의 세계화’라는 지향점을 향해 오늘날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386세대의 감성 소유자인 김 대표는 상업화랑에서 작품을 가장 잘 보는 혜안을 가진 대표주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미술 자체를 위한 미술'을 추구하는 작가들은 가급적 외면하는 대신 사회와 직·간접으로 소통하는 작가들 가운데 우수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키우는 역할을 주로 수행해왔다.
천리마가 될 싹수를 미리 알아보는 백락처럼 젊은 화가 가운데 장래 유망주를 발굴해내는 식견이 탁월하다는 것이 화랑가의 대체적 평가다. 김 대표가 독일 민중미술의 어머니인 여류 판화가 케테 콜비츠(Kaethe Kollwitz),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Guenter Grass)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국내에 소개하며 전시한 것만 봐도 그의 미술세계와 방향성이 어느정도 감지된다.

“한국미술이 해외에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알려지며 판매까지 된 것은 불과 얼마전 일입니다. 갤러리 운영자로서 제가 전세계를 누비며 이런 역할을 할 수있다는데 나름대로 큰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갤러리 고도 김순협 대표(52)는 최근 중국미술이 미국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각광받는 요인 가운데 특히 자본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말하자면 이것이 실제(實際) 상황이라는 얘기죠. 중국 국력의 크기만큼 중국미술의 위상이 동반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국력만큼 미술도 국제무대에서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을 따져봐야 할 시점”이라며 “이제는 우리도 세계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야 할 책무를 다해야 하며, 실질적으로 우리 작가들이 그같은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랑가에서도 직접적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발굴해낸 국내의 무명작가를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널리 알리고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지의 미술품 경매시장에 지속적으로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출품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김 대표는 “이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가 과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봐야할 때가 됐다”며 “우리가 외국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만큼 그들의 역사와 철학과 인문학적 성과를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미술시장에서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그는 역설했다. 나아가 “바로 지금이 한국이 그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판단된다”고 확신어린 표정으로 강조했다.

지난 1988년 해외유학 자율화 이후 수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으로 나갔고 그들이 다시 귀국해 한국사회에서 활동한 것이 10∼15년 정도 됐다는 것이 김대표의 진단이다. 1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내작가들의 수준이 각국의 문화와 정신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화랑가의 인식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이제는 역으로 우리의 한국적 미감(美感)을 외국에 더욱 많이 제대로 알려야 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트페어는 작품을 판매하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각 나라의 갤러리와 미술관, 아트매니저 등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곳이다.

한국은 서양미술을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캔버스에서 소화하기 시작한 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일천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양미술이 진행해 왔던 사실주의와 그 이후 인상파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여년 역사를 수용하는 엄청난 소화력을 보였다는 것이 김대표의 분석이다.

그는 “요즘 잘나가고 있는 중국도 갖고 있지 못하는 부분을 우리는 지니고 있다”며 “한국 작가들은 추상미술과 개념미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까지 수용했지만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문화단절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 시기의 기반이 한국보다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그러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해외 미술무대에 진출하면 당당히 주류로 자리잡을 수 있을뿐 아니라 미술한류의 새로운 신기원을 열 수 있다는 김대표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취약하기 그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같은 혼동성이야말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어 정체성 질문을 불쑥 던져봤다. 김대표는 이에 대해 “비잔틴 미술이 동·서양의 만남으로 인해 꽃피워지거나 서양음악이 아랍음악의 악기를 수용함으로써 다양성을 이뤄낸 것 처럼 정체성 논의는 새로운 우리만의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생산적 혼돈’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예술세계의 탄생이 가능한 환경으로 보는 것”이라며 “한국작가 가운데 이같은 관점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없다고 보지는 않지만 인문학적 진단과 평가가 뒤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미 서양 옷을 입으면서 생각과 몸이 육화(肉化)된 것처럼 동·서양 만남이 이제는 어느 정도 체질적으로 완성돼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그들 즉 서양세계에 접근하면서 수용가능한 작품들은 상당수 존재하지만 그것이 상품화되는 시스템과 이론이 뒷받침되지 못해 혼돈상황이 불거지는 것이라는게 진단이었다.

김대표는 “미술계 종사자들 특히 아트 매니저들은 우리의 취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외국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며 “왜 남의 취향에 흔들리냐”고 반문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할 때 남들도 우리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건강한 비판이어야 하고 우리 스스로 한국미술계 더 나아가 세계미술계의 스타를 발굴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류 붐이 일고 있는 이 때 한국 미술이 함께 뻗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김대표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만 그러한 흐름을 부흥시킨 분들의 노력과 긴장감뿐 아니라 그 몇 배 이상의 힘이 미술계에서 받쳐져야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 한류 미술의 새역사를 그리고 있는 김 대표의 눈이 빛났다.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