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그간 불명확했던 기준들이 명료해지면서 규제가 완화된 효과를 불러왔다. 논쟁이 있던 부분들의 싹을 잘라낸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해 진행된 주류 규제 개선 방안으로 1차적인 주류산업 생태계 활성화가 이뤄졌지만, 2차 개선안으로 규제 문턱이 한층 낮아졌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번 개선안은 정부가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이로써 지난 50년간 국내 주류산업 성장에 발목잡았던 낡은 법은 해묵은 행정 위주의 때를 벗고 주류산업 성장 확대에 날개를 단 새옷을 입게 됐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관계청이 지난 19일 내놓은 '주류규제 개선 방안'은 생산과 유통, 판매에 대한 규제 개편이 핵심이다. 생산적 측면에서는 '주류의 OEM 제조 허용'과 '주류 신세품 출시 소요기간 단축'이, 유통과 판매 측면에서는 '주류 판매 시 택배 운반 가능'과 '소주・맥주에 대한 대형매장용 용도구분 표시 폐지' 등이 눈에 띈다.

50년 낡은 법 벗고 새옷 또 새옷

한국의 주세체계는 지난 1969년 만들어졌다. 전 주종 중 맥주는 당시만해도 고급술로 분류되면서 세율이 다른 주종보다 훨씬 높은 72%로 책정됐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유통기업들이 맥주 수입에 열을 올리면서 국내 맥주기업들의 주세 '역차별' 논란이 일었다.

이로 인해 최근 몇년새 국내 주류시장은 성장세가 정체됐다. 멈춰버린 국내 주류시장 틈새를 수입 주류가 파고들면서, 국내 주류의 경쟁력을 낮춘 것이다.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주류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0.5%수준이었고, 같은 기간 국내 주류 연평균 출고량은 2.5% 증가한 반면, 수입주류는 무려 24.4% 상승했다.

 

때문에 주류 업계는 수입맥주 국내 시장 잠식과 '수입맥주와 국산맥주간 세금불균형이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맥주 종량세 전환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한동안 업계 목소리를 묵과하던 정부는 지난해 6월에서야 태도를 바꿨다. 맥주와 탁주에 대한 주류 과세방식을 기존 종가세(가격에 비례해 세금 책정)에서 종량세(과세 대상 용량에 따라 세율 결정)로 전환하는 '주세개편안'을 확정한 것.

그렇게 이 내용을 담은 개정안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을 충분히 담지 못했단 목소리가 거세게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조‧유통‧소매 및 전통주 업계 간담회를 통한 현장 목소리 수렴에 나섰고, 규제 손질에 과감히 칼을 댔다. 이로써 50년간 잠자던 주류업계의 낡은 법은 단편적 행정 위주 개선에서 벗어나 종합적이고 과감한 개선을 이룬다.

韓 전통주 수제맥주 시장 활성화 '날개 달다'

1차 개선안에서 6개월의 시간을 거쳐 발표된 2차 안 핵심은 주류 배달을 이용한 홈(Home)술·혼술 확대 등 주류 소비 성향과 규제 사이 간극을 완화해 소비자 편의를 제고했다는 점이다.

크게 생산(제조)과 유통, 판매로 구분됐다. 나아가 지난해 진행된 1차 개정안이 맥주 시장 산업 발전에 촛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전통주와 수제맥주 시장 발전에 중점을 둔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생산부문에서 '주류의 OEM 제조 허용'을 통해 시설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주류 제조업자도 타 제조장에서 술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정부는 제조 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 원가를 낮추고 해외에 맡기려던 생산 물량도 국내로 전환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중이다.

 

주류 신제품 출시할 때도 소요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15일로 줄인다. 제조방법 승인과 주질 감정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서다. 알코올 도수 변경 같은 경미한 제조방법 변경 역시 기존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변경할 방침이다. 

유통면에서 주류 제조·수입업자의 택배 운반이 가능해진 것도 전통주와 수제맥주에 유리한 개정이다. 현재 주류 제조·수입업자 배송 차량에는 '주류 운반 차량 검인 스티커'를 붙이고, 운전자가 세금 계산서도 갖고 있어야 한다. 택배업체나 퀵과 같은 배송전문업체가 소규모 주류 생산자들의 상품을 옮기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마트서도 가정용 소주·맥주 사세요", 비용절감·재고 물량 문제 해결

판매에서는 '대형 매장용' 소주·맥주가 사라진다. 이는 국내 대형 주류업체가 반기는 부분이다. 현재 희석식 소주·맥주는 가정용·유흥 음식점용·대형 매장용으로 용도가 구분됐지만, 앞으로는 가정용·대형 매장용이 가정용으로 통합된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제품은 같으나 분리해 납품하는 과정에서 포장박스 문제로 제조과정에서 라인을 두개 돌려야했었다. 납품처별 재고가 남아있어도 교차 판매가 불가능했었다"라며 "비용절감과 재고물량 해소란 두가지 고민이 모두 해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개정안에도 소주·위스키의 종량세 전환은 제외됐다. 현재 소주외 위스키를 종가세를 적용하는데, 종량세로 변경할 경우 소주 세율을 대폭 올리거나 위스키 세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서다. 소주와 위스키 세금체계를 다르게 적용하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

임재현 국세청 세제실장은 "현실적으로 소주와 위스키에 종량세를 적용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정기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위 법령 중 시행령은 12월, 고시는 3분기 중 개정을 추진해 연내 규제 완화를 마무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