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의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는 가운데, 화웨이가 타협이 아닌 전투라는 초강수를 택해 눈길을 끈다. 지난 미중 무역전쟁 당시 화웨이는 막판에 이르러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는 했으나 초반에는 몸을 낮추며 미국과의 타협을 시도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반부터 강공모드를 택해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지금 물러나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 켄 후 화웨이 순환회장. 출처=화웨이

미국의 연이은 압박
미중 무역전쟁은 올해 1월 극적인 휴전에 이르렀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여전했으나 화웨이는 이 기간 유럽과의 5G 동맹을 강화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다.

코로나19가 등장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책임공방이 벌어지며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거리는 한편, 대만을 사이에 두고 정치 및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 기업의 통신장비를 미국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1년 연장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미 상무부가 화웨이 및 68개의 계열사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후 해당 조치를 연장한 셈이다.

화웨이와 거래가 막힌 미국 기업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심지어 제3국 기업이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다. 미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oreign Direct Product Rule, FDPR) 개정이 그 주인공이다. 화웨이에 흘러가는 반도체 공급을 완전히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미중 무역전쟁 당시에서 끝까지 화웨이와 협력했던 TSMC의 상황도 묘해졌다. TSMC가 15일 공식성명을 통해 2021년부터 2029년까지 총 120억달러를 토자해 5나노 공정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 전격 발표했기 때문이다. 공장은 내년 착공되며 2024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파생되는 일자리만 1600개며, 간접적인 수 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집요한 압박에 TSMC가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입장에서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아시아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을 실현시키는 한편, TSMC와 화웨이와의 밀월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 연장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물까지 받았다.

TSMC가 미국쪽으로 한 걸음 다가간 가운데, 중국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 외무부의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여러 영역에서 미중의 협력 본질은 상생협력이라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싸우면 디커플링과 관계 단절이 된다. 출구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TSMC가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한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려왔다. 실제로 닛케이는 18일 TSMC가 화웨이로부터 반도체 신규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TSMC의 매출 15%를 화웨이가 차지할 정도로 두 기업의 연결고리가 강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현재 화웨이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의 거래가 차단된 후 TSMC와 파운드리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TSMC가 화웨이와 거래를 차단하면, 화웨이는 당장 반도체 수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된다. 화웨이가 자회사로 SMIC를 키우고 있으나 아직 미세공정 기술력은 프리미엄 제품 제작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악의 상황인 셈이다.

TSMC는 일단 닛케이의 보도에 선을 그었으나, 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TSMC가 또 한 번 굴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TSMC는 미국과 밀접한 대만의 기업이지만 지금까지 친중국 행보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며 TSMC가 미국의 압박을 받은 대만 당국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화웨이의 반격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이 시작된 가운데, 화웨이도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화웨이는 지금과 같은 미국의 압박이 이어질 경우 반도체 수급에 있어 플랜B를 택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화웨이 대변인은 4월 22일 미국의 수출 통제가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와 대만의 미디어텍, 중국의 스프레드트럼로부터 칩을 조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켄후 화웨이 순환회장은 더욱 강경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18일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 행사를 통해 미국에 대한 화웨이의 압박을 비판하며 "(이런 미국의 행보가) 과연 세계에 어떤 이점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많이 제한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는 난관을 타개해왔고 전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오늘날 세계는 통합된 협력 체제를 갖추고 있다. 글로벌화는 퇴보할 수도 없고, 퇴보되어서도 안된다. 표준과 공급망이 훼손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으며, 산업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미칠 것이다. 산업계는 지식 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 통일화된 글로벌 표준 시스템 보호, 협력적인 글로벌 공급망 형성 등을 위해 협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별도의 입장문까지 발표했다. 화웨이는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 개정을 두고 "화웨이는 수많은 주요 산업과 기술 요소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국 정부의 관련 법과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고객과 공급 업체에 대한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힘쓰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면서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발전을 억압하기 위해 많은 협회, 산업 및 기업들이 보내고 있는 우려를 철저히 무시하고 끊임없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인 FDPR을 강화해 가기로 결정했다"고 맹비난했다.

화웨이는 이어 " 결정은 자의적이고 치명적이며, 전 세계 산업 전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면서 "이 새로운 규정은 170여 개국에서 화웨이의 제품으로 구축한 수 천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네트워크의 확장, 유지 관리 및 지속적인 운영에 충격을 끼친다. 미국 정부는 다른 국가의 선도 기업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웨이의 글로벌 고객과 소비자의 권익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화웨이는 또 "미국 정부의 이번 규제 개정은 화웨이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면서 " 글로벌 관련 산업에도 큰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등 많은 산업계가 의존하고 있는 글로벌 협력에 기반한 신뢰를 훼손할 것이며, 이로 인해 수 많은 산업의 피해와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지적했다.

화웨이는 아지막으로 "미국은 자국 기술 우위 전략을 내세워 타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기술과 공급망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며,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면서 "관련된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화웨이는 최선을 다해 이에 대한 해결안을 찾을 것"이라 말했다.

누가 타격을 입을 것인가?
지난 미중 무역전쟁 당시 화웨이는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꺾으려는 미국의 제1호 타깃이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초반에는 몸을 낮췄다. 실제로 2018년 7월 미국이 ZTE에 이어 화웨이에 대한 압박에 돌입하자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추가 미중 무역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화웨이는 퀄컴으로부터 5000만개의 반도체를 구입했다"면서 "(미국과 중국은) 적이 아닌, 친구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중국은 더 발전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내려야 한다"면서 "직원들은 쓸데없는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행동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거칠어지는 한편 멍완저우 화웨이 CFO가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국 경쟁사의 기밀을 유출하고 대 이란 제재를 어기는 한편 금융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다. 뉴욕에서는 사기와 대 이란 제재로 무려 13개 혐의가, 워싱턴에서는 기밀 유출을 이유로 총 10개 혐의가 기소됐다.

화웨이는 발끈했다. 화웨이는 "미 정부의 기소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면서 "멍 부회장이 체포된 이후, 화웨이는 미국 법무부, 뉴욕주 동부지방검찰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였으나 미국 측은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이러한 요구를 거절했다"고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미국 화웨이를 급습, 압수수색까지 단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1월 FBI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화웨이 연구소를 덮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화웨이는 결국 강공모드로 나섰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 무역주의에 지친 유럽이 화웨이의 손을 잡았고, 화웨이는 여세를 몰아 강공모드를 택했다. 지난해 2월 런정페이 창업주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를 무터뜨릴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공격해도 화웨이는 굳건할 것이며, 5G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시대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물론 이후 정국에서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시사하는 '올리브 가지'를 내밀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 화웨이의 강공모드는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이 1단계 합의를 통해 휴전에 접어든 지금, 또 다시 논란이 커지자 화웨이는 초반부터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TSMC까지 돌아선 상황에서 무조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림과 동시에, 기술적 자신감도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압박이 이어질 경우 미국 반도체 기업의 타격도 엄청나다는 현실적인 문제제기가 눈길을 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발간한 '중국과의 무역 제한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리더십을 어떻게 종식시키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한 이후 미국의 25개 상위 반도체 회사는 매분기 각각 4%에서 9% 사이의 평균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BCG는 미국이 수출 제한 기업 명단을 유지해 중국 기업과 미국 기업의 거래를 제한한다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3년에서 5년내 8% 포인트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16%의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관련 판매를 전면 금지하면 같은 기간 미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18%p) 및 매출(37%p) 낙폭은 더 증폭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화웨이는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고, 미국에 조금이라도 밀리면 곤란하다는 각오가 충만하다.

상황은 약간 다르다?
화웨이가 코로나19로 촉발된 미중 2차 무역전쟁 가능성이 꿈틀대는 상황에서 초반 강공모드에 돌입했으나, 1차 무역전쟁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말도 나온다.

1차 무역전쟁 당시 유럽의 경우 미국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화웨이와 손을 잡았으나, 지금은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이 일며 유럽이 다시 미국과 연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와 유럽의 연대는 여전히 튼튼하지만 최근 다소 약해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가 강공모드를 택할 경우 의도하지 않은 역효과를 만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편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단 정중동이다.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을 두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다양한 플랜이 나오는 가운데 화웨이의 막혀가는 반도체 수급 상황을 두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반도체 수급 측면에서 한국 기업에 반사이익일 될 수 있지만,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 전반의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려 움직이면 피해가 올 수 있다"면서 "지금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지켜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