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님이 착해서 허용한 게 아니라 관리하기 귀찮아서 안 한 거잖아요. 왜냐하면 책임지는 일이거든요.” 개통령이라 불리는 유명 인사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TV에서 꽤나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먹이면서 키우던 천박꾸러기에서 인생의 반려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TV 프로그램 내용의 대부분이 처치 곤란한 말썽꾸러기 반려견들이 대부분인데, 나 역시도 조금만 무관심해도 거실 바닥에 똥오줌을 갈겨놓는 4살짜리 슈나우저를 기르는 터라 가끔 관심이 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말썽의 대부분은 보호자 때문으로 귀결된다. 보다 보면 개와 보호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과 주변과의 관계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3살짜리 수컷 포메라니안이었다. 포메라니안이 어떤 개인가, 다 커 봐야 체고가 20센티미터 남짓이고 몸무게 2~3키로그램 정도의 작고 귀여운 개다. 그런데 문제의 그 개는 보호자가 있든 없든 주위 사람들에게 짖거나 물고 하면서 공격성을 드러냈다. 천하의 개통령인 강 훈련사마저 그 개를 지켜보면서 얼굴이 심각한 근심으로 가득할 정도였다.

교육을 시작하자마자 개는 상황을 회피하며 보호자를 찾았다. 그 상황을 개도 보호자도 당혹해 했다. 결론은 그 개의 문제는 그 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보호자로부터 시작된 문제였다. 과도한 애정, 부적절한 환경과 여건 등이 반려견을 엇나가게 만들었다. 소위 개를 키운다는 사람들이 개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떤 규칙도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개가 ‘개 같이’ 구는데도 불구하고 내버려뒀던 것이다.

역시 개통령은 개통령이었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보호자로 하여금 '마음이 착해서'가 아니라 '관리하기 귀찮아서' 이 상황을 방치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낯선 사람의 등장에 불안해 했던 까닭은 보호자가 해야 할 역할을 유기했기 때문이었다. '이 집의 주인은 보호자고, 보호자가 통제할 테니 넌 걱정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강 훈련사는 개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줬고, 결과는 혼자서도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해피엔딩이었다.

 

도둑질을 해도 이뻐한다면 계속 도둑질하게 만드는 것

최근 유명 연예인의 대형견이 이웃집 할머니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해 화제가 됐다. 다행이 상처 입은 분을 바로 응급실로 모셨고, 차후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이나 조치를 취하며 사과했다. 반려견의 보호자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밥 주고 돌보는 자신에게는 한없는 믿음을 보이고 따르기 때문에 뭘 해도 예뻐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냥 예뻐하고, 칭찬하는 것만이 보호자의 역할은 아니다. 집안의 규칙을 만들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려견에게 보호자로서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 관계가 무너지면 말 그대로 '개판'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강 훈련사가 보호자에게 따끔하게 충고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이뻐하는 누군가가 도둑질을 했는데도 이뻐해 준다면, 도둑질을 계속해도 괜찮다고 교육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사실 개와 보호자만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둑질 외에 다른 말을 넣어봐도 말이 된다.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애가 어린이 집에 다녔을 무렵인 듯한데, 친구의 게임 칩을 훔친 적이 있었다. 5층 빌라 아래 위에 살면서 이웃사촌처럼 지냈는데, 나중에 서로 이사 가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모임을 이어나갔다. 당시 닌텐도 게임기가 유행이었고, 웬만한 애들은 다들 가지고 있었다. 함께 모인 애들은 게임 칩을 바꿔가며 놀기도 했다.

그 날도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그 집 딸아이가 자기 칩이 없어졌다며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 애한테도 확인했고, 집에서 놀았으니 집안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거라며 헤어졌다. 놀라운 일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주말에 늦잠을 자야 될 녀석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거실 한 구석에서 게임 삼매경이었다. 사준 적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티 내지 않고 온화한 말투로 슬슬 구슬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주웠다며 이리 저리 핑계를 댔지만 침착하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결국 어제 친구의 칩을 일부러 주머니에 넣어왔다는 잘못을 시인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지만, 절대로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엄청난 잘못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에 대한 대가도 필요하다고 아이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아이가 체벌을 달게 받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작은 방에 둘이 들어가서 방문부터 걸어 잠갔다. 행여 안쓰러운 마음에 집 사람이 말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빗자루로 엉덩이 5대를 때렸다. 그때 애는 5대를 소화하는 동안 울 생각도 못했다. 한참 뒤에야 엄마 품에 안겨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아침에 바로 그 집으로 달려가서 돌려주고 용서를 구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애의 뇌리에 그 때의 엉덩이 5대 기억은 뚜렷이 남아 있나 보다. 18살 될 때까지 맞았던 것 중에서 가장 세게 맞았다고 잊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두 아이를 키워오면서 아이를 때렸던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직도 내 가슴 한 구석이 찡하고 울렁거리는 느낌이다. 덕분인지 그 뒤로는 절대로 남의 물건을 탐하는 법은 없었다. 갖고 싶은 것에 대한 갈증은 엄마 아빠를 조르는 길뿐이었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아이는 온 몸으로 세상의 규칙을 깨치게 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고관대작의 집은 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감사 인사를 하러 온 손님, 부탁을 하러 오는 손님은 물론 크고 작은 수많은 일과 관련하여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덕분에 가장 바쁜 사람은 그 고관대작의 문지기였다. 손님들 대다수가 문지기에게 잘 보이려 애를 썼다. 열어주고 잘 통과를 시켜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 손님들은 문지기에게 대한 답례를 잊지 않았다.

어떤 손님들은 자잘한 것들은 고관대작을 직접 만나지 않고 문지기에게 얘기해도 해결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문지기를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 ‘문지기님을 뵈러 왔습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문지기는 ‘고관대작도 별거 없구만, 죄다 나를 만나러 오는데’라며 목에 힘을 주게 됐다. 문지기의 말 한 마디면 손님들이 고분고분 따랐고, 문지기는 그 대가로 상당한 재산까지 모을 수 있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됐을까?

 

개가 권력을 쥐게 되면 아무나 문다

이곳 저곳 직장을 옮겨 다니다 보니 남보다 별 이상한 경험도 많았는데, 그 중 한 가지는 힘 있는 부서나 팀이 조직마다 제 각각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생산, 구매, 영업, 관리로 크게 나눠지고 관리파트는 기획, 재무, 인사, 총무, 법무, 비서, 감사,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구성된다. 본사 및 계열사 재무팀장들이 지나가면 임원들도 길을 터주는 곳이 있었는가 하면, 기획실장 말이라면 자동으로 경직되는 곳도 있었다. 때로는 회사 살림 도맡아 하는 총무팀장이 실권을 가지고도 있었고 비서실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피해 다니던 곳도 있었다. 직장 생활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직 논리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처세를 잘 못해 아직 요 모양 요 꼴이다.

회사마다 힘을 쥔 부서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회장실 출입이 가장 잦은 사람들이다. 아니면 수시로 연락하는 사이다. 귀찮아서 그럴 것이지만, 회사의 모든 일을 그 사람을 통해 전파하는 채널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바로 회장실에서 연락을 다이렉트로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비겁하지 말라는 둥 고자질하지 말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문고리를 섭섭하게 만들면, 처자식 거느리고 불혹과 지천명을 넘긴 사람인데 설마 했지만, 지나고 보면 늘 어김 없이 설마가 사람을 잡곤 했다.

어릴 적엔 동네마다 불독이라고 불리는 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시커먼 셰퍼드를 기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부분 그 동네에서 방구께나 끼는 사람들 집이었다. 그 집 아이들이 그 무서운 개를 앞세우고 의기양양하게 돌아 다니곤 했는데, “물어” 하면서 겁을 주기도 했다. 당시엔 그만한 공포도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 개가 있는 집 근처로는 가지를 않고 빙 둘러서 일부러 먼 길로 피해 다녔다.

알고 보니 불독은 생김새만큼 사나운 개가 아니라 비교적 온순한 개라 한다. 그런데 물라고 시키는 주인 앞에서는 항상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곤 했다. 그게 주인에게 귀염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개는 전후사정 따져가면서 상대하지 않는다. 밥 주는 주인 말 들으면 간식이 주어진다는 것만 인식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개가 낯선 방문자에게 위협을 가해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주인에게서 관심을 한번이라도 더 받고, 뼈다귀라도 하나 얻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친구 집에 가면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개 때문에 겁 먹고 서 있으면, 친구는 웃으며 사납게 짖어대는 개를 달래곤 했다. 제대로 된 주인이라면 미리 사람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거나 최소한 방문자가 들어서면 그 상황을 제어하고 나선다.

굳이 활자화 된 규칙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신뢰를 포함한 감정적 요소는 계약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다.’ 유명한 베스트 셀러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가 강조한 말이다. 활자에 기대는 거래 관계는 감정이나 호혜에 의해 형성된 관계보다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거래를 키우고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우선 인간적인 소통부터 해야 한다. 개나 문지기나 아이나 문고리에 이르기까지 다 통용되는 원칙이다. 이런 기본 원칙이 깨진 상황을 우리는 개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