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올해 1월 극적인 합의로 미중 무역전쟁이 휴전에 돌입했으나 최근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삼아 두 수퍼파워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공전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충돌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일각에서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수출지향적 모델을 가진 한국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올 전망이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시나리오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코로나19, 그리고 충돌
미국과 중국은 1월 무역전쟁의 휴전을 선언했으나,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4월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TF 브리핑에서 "나는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고, 이것은 오래 전에 사라질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코로나19와 관련된 책임을 져야하며, 중국이 합당한 정보공개를 하지 않고 대책을 포기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가설에 대해서도 "타당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중국에서 어떤 것이 어떤 형태로 유래됐든 그것 때문에 184개국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라 말했다. 당시는 WHO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기본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며 재검토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선언과, 3월 대만수권법이 통과된 직후다. 무역전쟁 휴전으로 두 나라의 신경전이 가라앉는듯 했으나, 코로나19 책임소재를 두고 다시 신경전이 시작된 셈이다.

이후 두 수퍼파워의 난타전이 벌어졌다. 당장 블룸버그 등 외신은 3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코로나19 사태에 있어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보도했다. 그는 "중국은 이미 세계를 감염시킨 전력이 있고 수준 이하의 연구소를 운영한 전력도 있다"면서 "(코로나19는) 중국 연구소의 실패 결과"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물론 중국 연구소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는 그의 주장은 아직 명확하게 확인된 것이 없기에 큰 틀에서 논란은 가라앉았으나 여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고있다. 미국을 비롯해 서방국들이 연이어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자 본격적인 여론전에 나섰다. 2일 중국 신화통신이 운영하는 뉴 차이나 채널에 '옛날에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Once upon a virus)라는 영상이 올라와 눈길을 끈다. 병마용 레고 인형과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레고가 등장해 코로나19 이후 보인 미국의 기계적인 반응을 비판하는 영상이다. 영상은 자유의 여신상 레고가 "우리는 항상 옳다"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끝난다. 미국이 중국에 코로나19 책임론을 제기하는 장면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셈이다.

꺾으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
코로나19 책임론을 두고 두 나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의 화웨이 압박도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난 무역전쟁 당시 트리거 역할을 했던 화웨이를 기점으로 재차 수퍼파워의 난타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최근 미국이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중단을 1년 연장한 가운데, 미 상부무는 아예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을 원천봉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미 상무부는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어 “화웨이가 미국 기술로 만들어진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미국의 수출 규제를 벗어나려는 화웨이의 시도를 차단할 것”이라 말했다.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자국 기업과 거래한 제3국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막는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화웨이의 기술공세를 꺾으려는 전략이자,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이러한 관범위한 압박을 이해하려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까지 화웨이가 유럽을 중심으로 5G 영토를 넓힌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당시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의도적으로 지피며 유럽 동맹국들의 화웨이 협력을 차단하려고 했으나 사실상 실패했다. 실제로 파이브 아이즈의 핵심인 영국 정부가 화웨이의 손을 잡았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월 28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핵심 부문에서는 화웨이를 배제하고, 비핵심 파트에서도 화웨이의 점유율이 35%가 넘지 않도록 제한을 뒀으나 사실상 화웨이와 함께 5G 동행을 선택한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독일 업계 2위 이동통신사인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Telefonica Deutschland)가 자국 5G 네트워크 망 구축을 위해 화웨이와 노키아를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력업체로서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프랑스 대표 이통사인 오렌지(Orange)의 스테판 리차드(Stéphane Richard) CEO는 “중국산 안테나를 이용해 대화하면 모든 대화내용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도청당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화웨이 보안 논란을 일축했다.

중국의 기술굴기, 일대일로 등 대외팽창이 지속되는 점도 눈길을 끈다. 헝가리가 발칸반도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국과 18억5500만달러의 차관협정을 체결하는 등 중국의 차이나머니 공세에 유럽이 속수무책으로 갈라지고, 미국의 입김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2일 유럽연합 지도부를 향해 "지금은 우리 사이에, 그리고 국가 간 매우 긴밀한 단합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유럽 형제애의 화합을 달성할 수 있도록 모두 유럽을 위해 기도하자"라는 메시지를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상황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차이나머니, 중국의 기술굴기에 협력하던 유럽에서 최근 중국 경계령이 내려지는 한편 미국과 다시 강한 유대관계를 모색하려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다시 화웨이를 트리거로 삼아 기술굴기의 꿈을 이루려고 나섰으며,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 출처=갈무리

TSMC, 화웨이, 그리고 애플과 보잉
무역전쟁 휴전 후 중국이 본격적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었으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이 불거지며 미국의 반격이 시작된 현재, 의미심장한 소식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강타했다. 글로벌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신규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2029년까지 총 120억달러를 토자해 5나노 공정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며 2024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돌입하는 것이 목표다. 파생되는 일자리만 1600개며, 간접적인 수 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에 TSMC가 굴복했다는 말이 나온다.

문제는 TSMC가 중국 화웨이의 강력한 우군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TSMC는 대만 기업이지만, 오랫동안 중국 반도체 기업과 끈끈한 연결고리를 유지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의 생명줄을 차단하기 위해 자국은 물론 동맹국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을 막았으나, 영국의 암은 동조해도 대만의 TSMC는 미국의 독려에 응하지 않은 바 있다.

▲ 출처=갈무리

그러나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며 미국쪽으로 한 걸음 가깝게 이동하자,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중국 외무부의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TSMC의 미국 공장 건설 소식이 알려진 15일 기업의 상업적인 활동에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전제로 "여러 영역에서 미중의 협력 본질은 상생협력이라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싸우면 디커플링과 관계 단절이 된다. 출구가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 입장에서 TSMC가 미국의 편에 설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파운드리의 상당한 물량을 TSMC에 의존한 상태에서 만약 미국과 손을 잡은 TSMC가 화웨이에 대한 물량 조절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자회사 하이실리콘으로 미국 팹리스 기업의 공백을 막았으나 이 마저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태에서, 파운드리의 TSMC 동맹이 약해지면 화웨이는 엄청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물론 파운드리 자회사 SMIC가 있으나 아직 기술력 측면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중국 정부가 최근 17일 SMIC에 22억달러를 긴급수혈하는 등 동력을 살리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TSMC 공백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온다.

결국 중국 정부도 나섰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의 후시진 편집장은 “중국도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면서 “여기에는 애플과 보잉, 퀄컴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에 대한 압박이 이어질 경우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보복조치가 있을 수 있다는 엄포다.

업계에서는 최근 전임 오바마 행정부를 공격하고, 밖으로는 중국을 비판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재선 정국에서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정치적 행보인 가운데 당분간 이러한 분위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심지어 중국과의 무역전쟁 재발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은 외교채널 등을 통해 반격을 시도하는 한편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도 감수하며 더욱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을 전망이다. 당장 양회를 통해 중국 지도부가 어떤 메시지를 발표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이 받는 효과는?
미국과 중국의 전방위적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으나, 아직 국내 기업계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비록 각 국이 경제활동을 재개하려고 하지만 아직은 상처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정면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현재는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위기감은 엿보인다. 두 나라가 정면충돌할 경우 수출지향 모델을 가진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말 그대로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TSMC의 미국 공장 건설을 두고 삼성전자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TSMC가 미국 공장 건설에 집중하며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다른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공장 유치 압박에 나서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역사이기에 자칫 동력의 분산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두 나라가 정면충돌하면 문제는 고차방정식이 된다. 화웨이와의 거래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노림수가 노골적으로 선명해지면 이는 반도체는 물론 5G 인프라 시장 전반의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줄 세우기 현상이 벌어지며 '눈치'를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김오준 국제GLL경영연구소 부소장은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졌던 당시의 상황이 재연된다고 보면 된다"면서 "반도체 수급을 원하는 중국의 입장은 국내 반도체 및 5G 장비 시장의 호재가 될 수 있지만, 미국의 압박이 크게 벌어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대목에도 대응해야 한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IDC가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전망하며 -4.2%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점이 눈길을 끈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하면 감소폭은 -7.2%까지 떨어질 것이라 봤다. 스마트폰 전용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며 최악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이 미중 무역전쟁과 겹쳐 화학반응을 일으킬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장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기초소재 및 부품 인프라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김 부소장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비를 해야한다는 뜻"이라며 "기초체력을 키워야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특히 반도체 수급전에 있어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의 아시아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가 보이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이 문제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