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정승일·이종태 지음 부키 펴냄

‘쾌도난마(快刀亂麻)’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는 의미다. ‘헝클어진 삼’은 한국의 경제상황이고 ‘쾌도’는 장하준 교수를 비롯한 저자들의 통찰과 해법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미 7년 전에도 <한국경제 쾌도난마>라는 제목의 책을 낸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우리경제의 문제는 경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도발적 결론을 내고 대안으로 사회적 대타협과 복지국가를 제시했다. 그때만 해도 이들의 제안에 대해 복지축소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 개혁 진영조차 근본 개혁도 모자랄 판에 웬 뜬금없는 복지타령이냐며 마뜩잖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무상급식이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민주당과 진보 정당은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고 여당인 새누리당도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 복지국가 의제가 우리사회와 정치권의 지배적 의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번엔 또 다른 이상기류를 감지했다고 한다. 이들은 2011년 가을부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라는 화두가 솔솔 흘러나오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진보의 착각’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시장주의에 경도돼 정부의 산업정책을 반대하고 결과적으로 1원1표로 대표되는 주주 자본주의에 친화적이며 민영화에 찬성하고 노동조합이 자본에 밀려 약체가 되는 것을 방관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경제 민주화라는 명분 아래 집행한 것’을 두고 ‘진보의 착각’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이 책은 낸 이유는 이 같은 진보의 착각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들은 지난 19일 출판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물론 저자들은 경제를 민주화해야 한다거나 재벌을 개혁하자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방법론이 다를 뿐이다.

시장주의나 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민주화론과 재벌 개혁론은 지난 시기에 엄청난 정책적 실패를 낳았는데 현 정부가 밉다고 해서, 재벌이 동네 치킨가게까지 잠식해 들어가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다시 똑같은 잘못된 수술 칼을 집어 들 것이냐고 저자들은 반문한다. 중요한 것은 ‘재벌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이 우리사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문제 제기다. 저자들은 주주자본주의 규제, 기업집단법 제정, 재벌이 첨단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산업 정책 등을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했다.

세 저자는 현 대한민국 경제의 문제의 해결책을 복지에서 찾는다. 모델은 스웨덴식 생산적 복지국가이다.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스웨덴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는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저자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재벌과의 대타협을 통해 경영권을 보장하는 대신 복지국가 구축에 협조하게 하고 중산층도 증세에 참여하도록 설득한 다음 우리가 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처럼 복지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노력하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은경 기자 kek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