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가족이니, 현재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 봅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가족인가요?”

글로벌 비즈니스를 한 20여년 이상 해오며 지금도 기억나는 난감했던 상황 중 하나입니다. 제가 글로벌 채널을 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며 제 미국 파트너와 미팅 시 나누었던 대화이죠. 우리는 한 배를 탄 파트너이니 힘든 시장상황을 잘 이겨내 보자는 취지로 말한 것인데, 뜬금없이 방점을 “우리가 왜 가족인가요?”라고 반문하니 다소 난감하고 무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으나, 프로테스탄트(신교) 지역인 영·미, 북유럽계 비즈니스맨들이 대체로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정량적’이며 ‘명확한 소유’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의 공동체 의식과 표현에 익숙한 한국인들과 가톨릭 지역의 남유럽 사람들이 개인주의 성향의 영·미계 비즈니스맨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가끔씩 느껴지는 심정적 거리감을 솔직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미계 사람들의 이와 같은 성향은 이들의 모국어인 영어에 내재되어 있는 ‘정확한 수치, 숫자 표현’ ‘명확한 소유’ ‘특정과 불특정을 정확히 분류하는 관사’발달과 같은 언어적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영어에는 특정한 것을 가리키는 정관사와 불특정한 것을 나타내는 부정관사가 정확히 나뉘어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구분없이 표현이 가능하고, 대화 상대와의 상호간 관계와 주어진 상황, 맥락에 따라 듣는 사람이 특정한 것과 아닌 것을 분류하게 됩니다. 이해도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어가 영어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것이죠, 맥락에서 이해하고 분류해야 하니까요.  

정량적인 표현을 더 선호하는 영·미계 비즈니스맨들은 우리보다 좀 더 수치화할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둡니다. 이러한 인식 바탕에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는 업무적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업무평가 시에, 정성적인 평가보다는 가능한 ‘측정이 가능한(measurable)’ 정량적 분석과 평가를 중시하는 것으로 발현됩니다. 

더불어 이들 영·미계 사람들의 중요한 문화 성향 중 하나가 바로 ‘명확한 소유 개념’입니다.

한국어에는 광범위한 소유와 공유 개념이 잘 발달되어 ‘나(I)’보다는 ‘우리(We)’와 같은 공동체적 표현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우리 차’ 심지어 ‘우리 와이프’등과 같이요.  

그러다보니, 가끔 외국인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저의 가족을 이야기할 때, ‘나의 아내(my wife)’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내(our wife)’라고 지칭해서 표현을 정정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공동체적 관습이 몸에 베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며 저도 모르게 이렇게 표현한 것이죠. 

우리와 달리, 소유개념이 명확한 영·미의 앵글로색슨계 사람들은 ‘우리 자동차(our car)’가 아니라 ‘나의 자동차(my car)’ 또는 ‘나의 아버지의 자동차’(my father’s car)라고 구체적인 소유표현을 합니다. 자기가 근무하는 회사를 지칭할 때도 ‘우리 회사(our company)’라는 표현보다는 ‘나의 회사(my company)’라고 표현하지요.

앞서 다시 저의 미국인 파트너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아무리 비즈니스 운명 공동체이지만, ‘우리는 가족’이라는 저의 한국식 공동체적 표현이 상대 미국인 파트너 입장에서 적쟎게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이제는 충분히 상대방이 이해가 되고, 이후에는 섣불리 ‘너와 나는 하나’ ‘우리는 가족’ 과 같은 표현은 구분해 사용합니다.

글로벌 비즈니스의 품격은 상대방 파트너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