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통신 업계에서 망중립성 원칙과 관련된 노선은 미국과 유럽이 대표적으로 갈린다. 미국의 경우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했으며 유럽은 망중립성 원칙을 고수하되 관리형 서비스처럼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미국, 망중립성 원칙 폐지… “효율성 제고”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망중립성 규정을 도입했지만 지난 2018년 망중립성 원칙을 공식 폐지했다. 아짓 파이 FCC(연방 통신 위원회) 위원장이 망중립성 폐지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짓 파이 위원장은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 출신 인사로 망중립성 폐지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FCC는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할 당시 이를 계기로 통신사들이 불공정 행위를 하면 FTC(연방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을 것이라고 안심시킨 바 있다. 나아가 경제적 효율성을 전면에 내걸었다. 5G 네트워크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위해 CP(콘텐츠 제공자)가 함께 비용을 부담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망중립성 폐지가 ISP(인터넷서비스사업자)의 설비 투자 동기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한몫했다.

다만 미국에서도 CP와 더불어 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등 주에서는 망중립 폐지에 반발하는 양상을 보였다. 미국의 20여개 주는 지난 2017년 망중립성 폐기를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고 나서 이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 미국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은 FCC의 망중립성 폐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가 진행되며 조작 이슈가 불거지는 등 소모적인 논쟁도 벌어졌다. CP 진영은 이에 항소했지만 올해 2월 워싱턴 DC 연방항소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에 대한 재심 신청을 기각하며 3년여간 진행된 논쟁이 망중립성 폐지 인정으로 가닥이 잡힌 모양새다.

이로써 미국 통신사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비롯한 제로레이팅 등 서비스를 문제없이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FCC는 통신사의 자율권 보장이 적극적인 설비 투자와 효용을 일으킬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유럽, 망중립성 원칙 고수… “예외는 인정”

유럽은 망중립성 원칙을 유지하고 있으나 기술 변화에 따라 관리형 서비스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은 지난 2015년 망중립성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듬해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망중립성 감시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며 망중립성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통신기관을 규제하는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는 지난해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제로레이팅 적용에 관련한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관리형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고 통신사의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허용한다. 조금씩 망중립성 완화로 가는 모양새다.

다만 관리형 서비스가 일반망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는 원칙은 그대로 가져가고 있으며 이를 위한 규정도 만들었다. 관리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반망의 품질이 저해되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미나 정책실장은 “EU의 개정안은 망중립성의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망중립성의 원칙을 훼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제로레이팅의 경우도 모든 CP에게 선택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는 규정도 담겼다”고 전했다.

국내, 망중립성 훼손 없는 ‘예외 규정’ 도입으로 가닥

 

우리나라의 경우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가 유럽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는 망중립성 원칙이 법제화돼 있진 않으며 가이드라인 형태로 존재한다.

지난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 기준을 만들었다.

최신 개정판은 지난 2018년 공개된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망에 훼손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유지하되 예외적인 관리형 서비스를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ISP(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사업자)는 콘텐츠․애플리케이션․서비스의 유형 또는 제공자 등에 따라 합법적인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조항이 그렇다.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망의 보안성 및 안정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일시적 과부하 등에 따른 망 혼잡으로부터 다수 이용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기관의 법령에 따른 요청이 있거나 타 법의 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이다.

관리형 서비스 제공에 따른 망품질 영향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별도로 모니터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