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5G 이동통신의 상용화와 신기술의 발전으로 망중립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망 중립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변화를 주느냐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현 상황에서는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의 경우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인 통신사와 CP(콘텐츠제공자)인 IT 업체들간의 입장 차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으며, 국내 CP와 글로벌 CP간 의견차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통신 규제당국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가 마무리되는데로 망중립성 관련 가이드라인을 개정할 계획이지만, 현 상황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 무게가 실린다.

당초 망중립성은 오픈 인터넷 정신에 입각해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쪽이 정설이었다. 일반 인터넷 통신망에서 발생한 데이터 트래픽을 대상·내용·유형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처리해야한다는 원칙이다. 기업이 지불하는 망이용료의 액수에 상관 없이 모든 기업이 받는 네트워크 품질은 동등해야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망중립성에 예외가 인정되기도 한다. IPTV와 인터넷 전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서비스는 네트워크 품질이 좀더 안정적인 일종의 프리미엄 서비스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관리형 서비스’로 분류된다. 관리형 서비스는 별도의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망의 품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에 망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으로 보지만, 최근 5G의 등장으로 망중립성을 일정부분 흔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않다.

5G 시대, 관리형 서비스 영역 넓어진다

5G 이동통신 시대에 돌입하며 통신사로부터 관리형 서비스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기술 도입에 따른 통신 환경 변화가 근거다. 5G는 4G 대비 확연하게 좋아진 속도(초고속)·지연시간(저지연)·최대 연결 단말 수(초연결)·에너지 효율성(고효율) 등 특징을 갖는다. 이런 특성은 로봇수술,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등 4차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산업에 활용될 수 있다. 이때 각 영역에 최적화된 통신 환경을 제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차별화된 통신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경우에 따라서 초고속·저지연·초연결·고효율 특징 중 초고속과 저지연만을 필요로한다면 그런 통신망을 제공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통신사가 특화된 망을 제공함으로써 효율적인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가능케하는 기술이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말 그대로 네트워크를 쪼개서 특화된 망을 만드는 것으로 크게 고속 통신(eMBB), 초저지연 및 고신뢰(uRLLC), 대용량(mMTC) 네트워크 슬라이싱으로 구분 된다. 각각 AR·VR 등의 대용량 서비스, 자율주행차 등 실시간 서비스, 스마트 센서 및 IoT 등 초연결 서비스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새로운 관리형 서비스 도입을 바라보는 ISP와 CP의 입장차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양측 모두 신기술 도입과 필요성은 동의 하지만 가이드라인 개정 시기와 망중립성 훼손 우려 등에서 시각 차이를 보이는 양상이다.

 

CP “통신망 비싸게 팔기 위한 개정 요구”

CP는 관리형 서비스가 일반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반드시 지켜져야한다고 주장한다. 망중립성의 훼손을 우려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 서비스에서 차별이 생길 시에 협상력이 낮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원동력을 잃게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네트워크 슬라이싱에 대한 가이드라인 개정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 도입된 상황이 아니며 관련 서비스로 꼽히는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등 또한 상용화 기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관리형 서비스의 도입이 통신 요금의 인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서비스 비용을 많이 내는 CP에게는 빠른망을 제공하고 일반 비용을 내는 CP에게는 망품질을 떨어트려서 프리미엄 상품 구입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송명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전문위원은 “자율주행차 등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따로 관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일반 서비스에까지 프리미엄이라는 글자를 붙여 따로 고속 서비스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이럴 경우 돈이 많은 CP는 더 빠른 서비스를 누리고 경쟁력이 낮은 스타트업은 성장 기회가 닫혀버린다”고 강조했다. 

통신사 “네트워크 슬라이싱, 망중립성 훼손하지 않을 것”

반면 통신사는 관리형 서비스의 추가는 오히려 CP에 더 많은 선택권을 줄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존 상품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억지로 새로운 상품을 이용할 이유는 없으며, 더 좋은 품질의 통신망을 쓰고 싶은 CP에게 또 다른 옵션을 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망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통신사 관계자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상품이 나온다고해서 기존 서비스 품질이 낮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남는 주파수나 회선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데이터가 꽉 차있는 상태에서 잘라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은 현재 5G 비단독모드(NSA)상에서는 상용화되지 않았다. 업계는 5G 단독모드(SA) 상용화 이후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유선망을 물리적으로 분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전용회선을 만들어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일반망에 영향을 줄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기부 “당사자들 의견 충분히 고려후 개정할 것”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개정과 관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경쟁정책과는 연구반을 구성하고 현재 ISP, CP와 함께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가이드라인 개정일을 정해놓지는 않은 상황이다.

통신경쟁정책과 관계자는 “연구반 논의가 올해 잘 완료된다면 그에 따른 가이드라인 개정 계획은 있지만 따로 기한이 있지는 않다”면서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네트워크 슬라이싱에 대해 가이드라인에 반영하겠다고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면서 “다만 네트워크 슬라이싱뿐 아니라 앞으로의 기술 도입에 있어서도 망중립성 기조는 유지된다는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