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를 너무 자주 꺼내면 아재 인증인 줄 알면서도, 젊은 날 대학병원에서의 나름 슬기로운 의사 생활 이야기를 소환해야 이야기보따리가 풍성해지는 걸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또 한가지, 건강한 사람의 소변은 대변과는 달리 균이 전혀 없다. 소변은 의학적으로는 깨끗한 셈이니, 너무 지저분한 이야기로 치부하지는 마시길...

의사면허를 막 따자마자, S대 병원 인턴(수련의) 시절이었다. 요즘 정맥주사는 정맥주사 전담 간호팀에서 맡아서 한다지만, 그때는 모든 환자의 정맥주사(소위 링거주사)를 잡는 것은 인턴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였다. 그 작은 정맥주사 바늘로부터, 필자가 수술할 때 화를 안 내는 법을 깨달았다는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굳이 인턴이 안 했어도 될 것 같은 일들은 또 있다.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는 모든 검사결과는 전자 차트로 전송되지만, 당시에는 인턴이 지하, 1층, 2층을 돌아다니면서 조직검사 결과, 피검사 결과, 소변검사 결과, 엑스레이 결과, 심전도 결과 용지를 찾아서 일일이 수거해왔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겹겹이 쌓인 용지, 결과지, 엑스레이 뭉치 속에서 우리 병동의 그 환자 이름을 일일이 체크하고 골라내 가져와야 한다. 다른 병동의 미련한 인턴이 우리 병동 것을 가져가 버렸다면 정말 큰 일이다.

만약, 다음날 수술 예정 환자의 검사결과가 덜 나왔거나, 엑스레이 판독이 안 되어 있다면 1, 2년차 주치의와 인턴에게는 재앙이다. 응급으로 피검사를 다시 내든지, 아는 진단방사선과(영상의학과) 선배에게 개인적으로 판독을 부탁하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술 전까지 완결시켜 놓아야 했다. 인턴은 슈퍼맨이고 슈퍼우먼이어야 한다. 4년 차 레지던트는 이런 업무 해결능력을 보면서 인턴을 점수로 평가한다. 자정 넘어서야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당직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간호사다.

-인턴 샘! 62병동인데요. 환자 한 분 폴리 끼워 주세요~

소변줄은 Frederic Eugene Basil Foley 라는 이름의 미국 비뇨기과 의사가 고안한 도관으로, 폴리 카테터(Foley catheter)를 줄여 보통 폴리라고 부른다. 요도에 삽입 후 방광 안으로 들어간 도관의 끝에 있는 풍선을 식염수 주사로 부풀려 미끄러져 나오지 못하게 한 유치용(留置用) 도관으로, 소변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목적으로 사용한다.

폴리를 끼우는 것은 당시 인턴의 업무가 맞다. 그런데 좀 특이한 룰이 있다.

환자가 여자면 여자 간호사가 한다. (당시에는 S대 병원의 병동에 남자간호사는 한 명도 없었다)

환자가 남자면 인턴, 즉 의사가 한다. 환자는 남자인데, 인턴이 여자 의사면? 그래도 인턴이 한다. 즉, 여자 인턴도 남자 환자의 소변줄을 끼워야 한다.

정리하면, 남자 환자의 소변줄을 끼우는 것은 성별에 관계없이 의사인 인턴의 업무고, 여자 환자의 소변줄을 끼우는 것은 간호사의 업무인 것이 S대 병원에서의 룰이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들었다.

어딘가 어색하다. 굳이 이해하려고 해보자면, 여자 환자를 수치심으로부터 보호해주고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의미에서 여자 환자의 소변줄은 여자인 간호사가 끼우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턴 여자 의사가 남자 환자의 소변줄을 끼우는 것은 괜찮은가? 남자 환자도 부끄럽고 불편하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보호해주지 않아도 되나? 남, 녀 환자의 양성 평등권에 부합하는가? 또한, 시술하는 여자 인턴 선생도 역시 민망하고 불편할 텐데, 여의사의 여성 인권은 고려 안 해주나? 여자 의사도 남자 소변줄을 끼울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숙명이자, 습득해야 할 수기이므로, 의당 감내해야 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일환인가? 그렇다면, 남자 의사는 여성의 소변줄을 끼우는 법을 몰라도 되는 것인가? 같은 프로페셔널리즘은 남자 의사에게는 적용하지 않나? 남자의 소변줄을 끼우는 것만 (간호사 아닌) 의사의 업무로 정하고, 남자 의사든 여자 의사든 차별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양성평등이 맞는 건가? 여러 의문이 생긴다.

남자 인턴은 서로 부끄러울 수도 있는 여자 환자 소변줄 넣는 일에서 제외시키고, 여자 인턴은 서로 부끄러울 수도 있는 남자 환자 소변줄 끼우는 일을 하도록 하니, 여자 인턴들 사이에 ’여자 인턴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다‘ 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단, 남자 환자의 폴리는 여자 의사가 하는데, 여자 환자의 폴리는 왜 내가 하면 안 되냐고 항의하는 남자 인턴은 역대 단 한 명도 없었다. 몇 시간 못 자는 인턴 생활에서 일이 하나라도 줄면 고마울 따름이다.

여하튼 병원에서도 양성평등이나 남성, 여성 인권 등은 쉽지 않은 화두다.

 *  *  *

우리 사회도 꽤 열린 사회가 되어서, 커밍아웃을 했거나 알려진 동성애자들이 있다.

그런데 남성 동성애자라고 해서, 여성 취향이거나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는 것은 아니다. 말과 행동이 상남자이지만 동성애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말투나 차림새가 훨씬 더 여성 취향인 듯하다. 여성이 되고 싶은데 걸크러쉬 느낌의 여성이 되려는 남성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를 찾아왔던 환자 중에 여성이 되고 싶은 남성은, 어찌 보면 원래 여성 평균보다 더 여성스럽고 더 맘이 여리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십여 년을 일반 직장에서 팀장급으로 일해온 한 남자가 필자를 찾았다.

남자 목소리와 남자 얼굴, 남자의 몸을 가진 그는, 긴 머리를 넘기며 여성스러운 말투로 이제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계속 꿈꿔오던 일인데 직장을 다니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여성호르몬 치료를 시작하고 머리를 기르고, 개명을 하고, 여성으로 살아갈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십 여년 동안 자신의 성 정체성에 역행하며 남자로, 직업인으로 사는 삶이 고단했을 것이다.

돌출된 입과 우락부락해 보이는 긴 얼굴은 누가 봐도 남성적이었다. 실제로 남성호르몬은 남성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얼굴뼈의 안와상융기나 강한 턱 모양, 돌출된 윤곽선을 만들어낸다. 필자에게 그 환자의 앞으로의 인생이 걸려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광대뼈수술과 돌출입수술, 그리고 턱끝길이 축소수술을 집도했다. 환자의 긴 생머리가 그제야 얼굴에 어울렸다. 수술이 정교하고 깔끔하게 끝날수록 수술 직후의 붓기가 적고 수술의 변화를 바로 느낄 수 있다.

소변줄은 끼우지 않았다.

소변줄은 보통 네 다섯 시간 이상의 수술에서만 끼운다. 수액이 들어가면 인체는 그만큼 소변을 만들고 방광에 소변이 찬다. 매우 긴 수술의 경우, 들어간 수액량과 나오는 소변량을 계산하고 기록해야 할뿐더러, 방광에 소변이 과도하게 차면 역류하거나 문제가 되므로, 미리 소변줄을 끼워놓는 것이다.

전신마취 중에, 아직 남자의 몸을 가진 이 환자에게 만약 소변줄을 끼워야 했다면, 필자의 돌출입수술시 마취를 줄곧 담당해 온 여자 마취과장님이 했을 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필자에게 광대뼈수술과 돌출입, 턱끝수술은 총 두 시간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마취과장이 S대 병원 인턴 때 남자 소변줄 끼우는 법을 제대로 습득해놓은 것은 마취과 전문의로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었다.)

마음이 여리고 고운 그 남자 환자가 앞으로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숙제가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중 필자가 얼굴을 맡았다. 의술의 힘을 빌린 첫걸음이었다.

종교, 정치적 성향, 직업, 지역, 배경이나 학벌, 성 정체성에 차별을 두지 않고, 필자는 늘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원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수술한다. 그게 즐겁기도 할뿐더러, 필자를 찾아와 얼굴을 맡기는 분들의 신뢰는 고귀한 것이고 감사할 일이기 때문이다. 성형외과 의사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결과로 보답해야 한다.

40년 넘게 남자로 살아온 환자에게 이제 와 여자로 살기로 한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고, 필자를 찾아와 얼굴뼈 수술을 맡긴 것 역시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니 그녀의 선택이 해피엔딩이 되길 빈다.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