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대량 실업과 경기 위축에 직면하고 있지만, 기술 대기업들은 새로운 소비자 습관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다.     출처= Antoine Doré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세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기술 대기업들은 오히려 필생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술 대기업들은 수 십 건에 달하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독점금지 조사와 그들의 권력에 대한 일반 대중의 경계를 방어하는데 지난 해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거대 기술 기업들에게 극적인 행운의 반전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지역 폐쇄로 집에 갇힌 사람들의 필수 서비스로 떠올랐고, 구글과 애플은 코로나 19의 감염 경로를 추적하면서 주 보건 당국이 중요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를 만들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규제 당국의 조사도 무뎌지고 느슨해졌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담해진 기술회사 로비스트들이 올 7월로 다가온 새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을 연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세계 경제는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는 대량 실업과 경기 위축에 직면하고 있지만, 기술 대기업들은 전국 봉쇄령이 내려진 기간 동안 사람들이 쇼핑하고, 일하고, 접대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생긴 새로운 소비자 습관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다. 코로나 유행으로 최근 몇 주 동안 증시는 폭락했지만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최고가를 경신했거나 최고가에 근접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올해 1만 명 신규 채용을 발표했다.

기술 대기업들의 깊은 주머니는 그들이 다가오는 세계 경제 불황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무너질수록, 기술 대기업들은 인재를 낚아채거나, 경쟁자의 기술을 훔쳐오거나 아예 사버리거나, 전통 산업을 잠식하는 등 지난 10년간 축적해 놓은 힘을 더욱 확장할 것이다. 코로나로 약화된 회사들 중 일부는 완전히 사라지고 훨씬 더 많은 영토를 기술 대기업에게 양도하게 될 것이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가상 패널에서 "요즘 같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가장 강력한 기업들이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업계의 리더들은 어느 일부가 붕괴돼도 잘 관리해 1년 후에는 더 강력한 업계 리더로 부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금융위기 때에는 세계 경제와 더불어 기술 대기업들도 타격을 입었다. 당시 상위 5대 기업이었던 엑손모빌(ExxonMobil), 제너럴 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 AT&T, 프록터앤 갬블(P&G)의 시가 총액을 다 합쳐도 1조 6000억 달러였다. 오늘날, 시총 1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한 회사만도 1조 3천억 달러에 달한다.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의 해고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Layoffs.fyi에 따르면, 지난 3월 11일 이후 250개 이상의 스타트업들이 이미 3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줄였다. 벤처캐피털 NFX가 최근 투자자와 창업자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이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용을 동결했거나 응모 가격을 낮췄다고 대답했다.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수 억달러를 모금한 스쿠터 회사 버드(Bird) 같은 스타트업들도 수 백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회사를 2021년까지 무사히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밝혔다.

경기 위축이 지속되고 스타트업들이 하나씩 소멸하면서, 그나마 고용 여력이 있는 회사는 기술 대기업 밖에 남지 않았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최근 WP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엔지니어링과 제품 개발 부문에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벤트 관리 및 온라인 티켓 판매 사이트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는 직원의 거의 절반을 해고해야 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각종 행사와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벤트브라이트의 줄리아 하츠 CEO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했다"면서 "해고된 직원 중 일부는 페이스북이 흡수했다"고 덧붙였다.

페이스북은 지난 주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과 경쟁하기 위해 50명이 동시에 회의할 수 있는 새 제품을 선보였다. 영국의 데이터 분석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에 수 백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혐의 등 여러 스캔들로 수 년간 평판이 땅에 떨어진 페이스북은 코로나 대유행의 위기를 잠재적 구원의 기회로 보고 있다.

아마존도 코로나 위기 동안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상품을 공급하는 회사의 역할을 크게 부각시키며 언론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은 창고와 배달 분야에서 17만 5천 개 이상의 신규 저임금 일자리를 발표하면서 기술 대기업들의 채용 공세를 주도하고 있다. 아마존은 다른 업종에서 해고된 근로자를 고용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팀 쿡 애플 CEO도 최근 직원들에게, 회사가 비록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의 판매 부진을 겪고 있지만 올해 내내 연구개발(R&D) 투자를 계속할 정도의 현금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며 정리해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 기술 대기업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고용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은 실리콘 밸리에서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몇몇 스타트업들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 번성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상회의 서비스 줌의 이용자층은 지난 12월의 1000만명에서 지난 3월 2억명으로 20배 증가했다. 앱 분석업체 앱애니(AppAnnie)에 따르면 비디오 채팅 앱 하우스파티(Houseparty)의 성장은 줌보다 더 빠르다. 하우스파티의 다운로드 증가율은 3월 15일 이후 1580%에 달했다. 식료품 배달 앱 인스타카트(Instacart)도 다운로드가 540% 늘어났다.

분석가와 투자자들은 이같은 소비 패턴과 습관이 장기적으로 계속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로엘로프 보타 파트너는 "이런 변화가 위기에서 벗어나거나 살아남는 스타트업들 사이에 새로운 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주택담보대출부터 쓰레기 수거, 원격근무 지원에 필요한 데이터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승자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체 경제 시스템에 대한 충격입니다. 때때로 그런 충격에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법이지요.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진 것처럼, 새로운 시대는 살아남은 자들로 재편될 것입니다. 어쩌면 실리콘밸리가 그 동안 구축해 온 미래를 가속화하는 것 자체가 충격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