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아카시아 꽃에 알레르기가 있어 그 꽃이 필 때 쯤이면

보름여를 두문불출, 집콕하며 지냅니다. 그런지 벌써 이십여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얼마 전 만나 내가 겪는 코로나 피로증을 호소하자

자기는 이미 오랜 기간 그런 걸 경험했노라며 여유롭게 웃습니다.

그런 기간들을 넘어온 내공이 있어서일까요?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여러 생각으로 회사를 잘 꾸려 가고 있습니다.

‘들국화 필 무렵 가득 담갔던 김치를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다 먹어버렸다‘

어느 노교수분이 그분 시절의 중학교 교과서에서 보았다는 내용입니다.

웬지 여러 면에서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려니 후배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있으면 집 근처 산에서 몰려올 아카시아 꽃의 진한 향이 더 기다려집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기가 길어져서 일까요?

마스크를 써서 일까요?

걸음걸이가 약간은 느려지며,

일상을, 주변을 찬찬히 보게 됩니다. 또한 생각의 시간도 가져봅니다.

그러며 한편으로는 먼 미래도 상상해보고, 그려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많이 올라가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작년 겨울 초입에 보았던 동시(童詩)와는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겨울이 오면 옷을 자꾸 껴입는데,

나무는 옷을 한 겹씩 자꾸 벗어 내립니다‘

금년으로 창간 100주년이 된 국내 일간 신문이 특집으로 청년들을 선발,

세계 곳곳을 탐험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후 그들에게 ‘100년 후 우리는’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만의 인공위성을 띄운다. 미지의 세계 우주 저 너머와 소통한다.

사고 후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지 않는다...

미래 발전하게 될 기술 진보에 듬뿍 신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많은 청년들이 희망하는 인간답고, 여유를 찾는 삶에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누구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 나와 다른 사람과도 더불어 즐겁게 산다.

삶을 자연과 공유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먹고 살 걱정이 없다...

100년 후가 아니라,

더 이른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정하고, 이루고,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갖는 것.

그런 생각을 갖게 됨이

코로나 피로증의 시기에 받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