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유적 공간 259×194㎝ oil on canvas. 2018

이석주의 작품소재는 유화의 거장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던 바로크 시대뿐 아니라, 20세기의 회화까지 이른다. 창이나 거울로서의 회화를 거부했던 20세기의 그림은 이전 시대의 것보다 입체감이 덜하지만, 여전히 재현적 형상을 가지고 있어서, 끝말잇기 같은 상상을 촉발시킨다.

2018년의 사유적 공간에는 파울 클레의 작품이, 또 다른 작품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보인다. 둘 다 낡은 예술 관련 책자가 전경에 세팅되어 있다. 현대미술이 비록 대중들에게는 낯설더라도 그 또한 익숙화 단계를 거치며, 작가는 그러한 작품들을 주로 활용한다.

▲ 사유적 공간 454.6×181.8㎝ oil on canvas, 2018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이 보이는 작품은 마치 이편의 책꽂이 너머로 보이는 저편의 풍경 같기도 하지만, 일찍이 현대인의 쓸쓸한 삶을 포착했던 미국화가의 유명한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다.

호퍼는 현대적 삶의 쓸쓸함을 비추는 빛의 표현에 능했던 화가였지만, 후경에 자리한 탓에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늦은 밤까지 홀로인 사람들을 비추는 카페의 냉랭한 빛은 이석주의 작품에서는 전경의 책들에 적용되어 있다.

21세기의 화가도 20세기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겹의 그림에서 사람 간의 관계가 사물 간의 관계로 이동하는 추이가 감지된다. 호퍼의 작품도 이석주의 작품도, 사람이 부재한 가운데의 빛은 부재의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전경에 낡은 책들은 서로를 기대고 있는데, 인간들은 늦은 밤 카페에서 각자인 인간들과 비교된다.

사유의 공간은 작가가 애호하는 대상들을 무대처럼 배치하고, 각 대상이 가지는 상징들 간의 근접성에서 야기되는 대화적 상상력이 있다. 사물이 사람을 대신하는 무언극인 셈이다. 그의 사유의 공간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 세계를 창조한 자의 의도에 맞춰 제자리에 있는, 잘 정돈된 고요한 세계이다.

신비롭게 나타나는 이석주(서양화가 이석주, 이석주 화백,ARTIST LEE SUK JU,이석주 작가,李石柱, 하이퍼 리얼리즘 이석주, Hyperrealism Lee Suk Ju,극사실회화 1세대 이석주)의 작품은 초현실주의를 생각하게 하지만, 초현실주의같은 도상과 도상 간의 과격한 맞닥뜨림은 없다.

△글=이선영 미술평론가/미술과 비평(Art&Criticism), 201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