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미국 181개 대기업 CEO들은 이제 주주 이익만이 아니라 근로자들과 지역사회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주주 이익보다 고객 가치와 직원들의 이익 증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성명서에 서명한 CEO들이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8월 미국 181개 대기업 CEO들은 이제 주주 이익만이 아니라 근로자들과 지역사회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약속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

이를 두고 마침내 기업들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며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성명을 역사적인 이정표로 축하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CEO의 급여가 주가와 연동되는 한, 주주 이익이 최우선 경영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행위를 보여주기식 눈속임 행보라고 일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날 전세계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당시 이 성명서에 서명한 회사들이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면서도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성명의 약속대로 직원들을 위험으로부터 적절히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성명서의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돈이 궁극적으로 흘러가는 곳이 어디인가’라는 미국 자본주의를 향한 결정적인 질문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많은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에 현금을 사용하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면서, 정작 타격을 입은 근로자를 지원할 재원은 더 줄인 것이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성명서에 서명한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매리어트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배당금으로 1억 6000만 달러(2000억원) 넘게 지불하고 안 M. 소렌슨 CEO의 급여 인상을 추진하면서도 미국 근로자 대부분을 해고함으로써 그들의 건강보험 혜택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코로나 대응 태스크포스 공동 회장이기도 한 소렌슨 CEO는 NYT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이 회사의 대변인은 이메일을 통해 “소렌슨 CEO가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 몇 주 동안 급확산된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직원, 고객, 주주, 회사를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배당을 중단했습니다."

또 다른 서명 회사인 아마존은 시가총액이 1조 달러가 넘는 회사다. 그런데 이런 회사의 근로자들이 마스크나 손 세정제 같은 보호 장비를 제공받지 못해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며 몇몇 도시의 창고 밖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마존은 수백만 개의 마스크를 배포했으며, 시설을 철저히 소독하고 시급도 인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억 6400만 달러의 수익을 낸 소매 체인 메이시스(Macy’s)는 건강보험료는 유지한 채 대부분의 근로자들을 해고했다. 이 회사는 4월 1일 주주들에게 약 1억 1600만 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했다(이후 후속 배당을 중단했다).

미국 노동부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하버드대 로렌스 캐츠 교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배당금을 지급하거나 임원 보너스를 지급하는 회사들은 분명히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성명에서 공언한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매우 부적절하고 근시안적인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카츠 교수는 그러한 행위를 한 회사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선언은 일방적인 것에 불과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의 성명서에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 단체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직원들에게 투자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중요한 복리후생을 제공한다"고 언급하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이행할지는 기업 경영진에게 맡기고 있다.

물론 서명 회사들 가운데에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용 절감 계획을 완화한 회사들도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웰스파고(Wells Fargo) 등 주요 은행들은 계획했던 정리 해고를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JP모건체이스는 연봉 6만 달러 미만의 직원들에게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100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애플은 미국 전역의 매장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직원과 계약직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펩시는 유급 병가를 강화하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하는 근로자들에게 유급 휴가를 허용하고 있다.

AT&T, 베스트바이, 델타항공 등 많은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계획을 중단했다.

매리어트의 소렌슨 CEO는 지난 달 19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리 사업이 평소보다 75%나 밑돌고 있다"고 말하면서 코로나가 너무 파괴적이어서 노동자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비디오 메시지를 배포했다.

소렌슨 CEO는 지난 해 800만 달러(100억원)가 넘는 스톡옵션이나 자신이 받은 350만 달러(42억원)의 현금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연봉 130만 달러(16억원) 중 올해 남은 기간의 몫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2일 후, 회사는 주주들에게 예정된 배당금을 지불했다. 4월 8일, 메리어트는 이사회가 다음 달 주주 총회에서 승인을 받기 위해 준비한 제안서를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거기에는 CEO 급여 7.7% 인상과 최고 200%의 현금 보너스 지급안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