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존재감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남은 방법은 초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점진적인 판 뒤집기에 나서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TSMC 1분기 매출 42% 성장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강자인 TSMC가 1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한 가운데 매출 약 12조5600억원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5%나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어려움에 빠졌으나 TSMC의 존재감은 더욱 탄탄해지는 분위기다. 이는 파운드리 시장의 특성상 미리 선주문된 물량이 정상적으로 처리됐고, TSMC가 위치한 대만이 코로나19로 인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TSMC 본연의 기술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장 4월부터 5나노 칩 양산에 돌입하는 가운데 TSMC가 애플 아이폰12의 AP 수주를 맡은 장면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디지타임즈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TSMC는 아이폰12에 들어가는 A14 바이오닉칩 수주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5나노 공정 평균수율이 80%를 넘기는 상황에서 TSMC의 강력한 기술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셈이다.

▲ 출처=삼성

삼성, 갈 길이 멀다

TSMC의 쾌속질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7나노를 기점으로 갈렸다. 글로벌파운드리 등 핵심 플레이어들이 7나노 공정을 속속 포기한 가운데 지금은 삼성전자와 TSMC만 7나노 공정의 벽을 넘은 상태다. 이후 5나노 공정에서 삼성전자는 연말 양산을 약속했으며, 3나노 전략도 공개했다. 실제로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 구조를 적용한 3나노 공정 등 삼성전자의 최근 연구 성과도 이미 나온 상태다.

TSMC도 빠르게 달리고 있다. 이미 5나노 공정 양산 ‘속도’는 삼성전자를 압도하는 가운데 3나노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당초 북미 기술심포지엄에서 3나노 기술 등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6월에서 10월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TSMC의 3나노 공정 기술력이 상당부분 완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전체 시장의 판세는 TSMC로 집중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4%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 삼성전자는 15%를 약간 넘기는 점유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TSMC가 점유율 기준 지난해 1분기 48%에서 무려 6%P 상승했다면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19%에서 15%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이 좀처럼 TSMC를 위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장 전체의 분위기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호조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전체는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의 어려움은 곧 믿음을 받고있는 1위 사업자 쏠림 현상을 부채질할 수 있다.

▲ 삼성전자 V1 라인. 출처=삼성

남은 것은 결국 초기술 격차

삼성전자는 지난해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다. 2030년까지 133조원의 투자를 단행해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를 노리는 것이 핵심이며 연구개발에 73조원, 생산 인프라에 60조원을 투입하는 로드맵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TSMC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점유율이 올라가지 않는데다 TSMC의 존재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기술 격차를 바탕으로 점진적인 판 뒤집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장의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조금씩 시장의 점유율을 키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신년 첫 행보로 파운드리 미세공정의 최전선인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서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오직 기술만 믿고 조금씩 시장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최첨단 EUV(극자외선) 전용 라인인 'V1 라인' 가동과 같은 직접적인 액션플랜이 더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018년 초 건설을 시작해 2019년 하반기 완공한 EUV 전용 라인인 V1 라인은 5G·AI·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가속화하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 핵심기지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UV 노광 기술은 짧은 파장의 극자외선으로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을 구현할 수 있다. 이는 급증하는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고성능 저전력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V1 라인 가동으로 2020년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의 생산 규모가 2019년 대비 약 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액션플랜이 지속적으로 나와 파운드리 점유율 전쟁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2월 현장을 찾아 "지난해 우리는 이 자리에 시스템반도체 세계 1등의 비전을 심었고, 오늘은 긴 여정의 첫 단추를 꿰었다"라며 "이곳에서 만드는 작은 반도체에 인류사회 공헌이라는 꿈이 담길 수 있도록 도전을 멈추지 말자"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운용의 묘도 중요하다. 퀄컴이 3세대 5G 모뎀인 스냅드래곤 X60 5G 모뎀-RF 시스템(X60)을 공개한 가운데, 일부 물량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소화하기로 결정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당초 X60이 등장하자 업계에서는 누가 파트너가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TSMC가 대부분의 물량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지난해 12월 등판한 스냅드래곤의 경우 최상위 라인업인 865를 TSMC가 맡았기 때문에, 퀄컴이 도래하는 5G 시장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중요한 3세대 5G 모뎀 제작을 검증된 파운드리 업체에 밀어줄 것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 X60. 출처=퀄컴

그러나 퀄컴은 X60 물량 일부를 전격적으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겼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갤럭시S20에 자사의 엑시노스 탑재를 포기하는 대신 스냅드래곤을 택한 장면에 주목하는 중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갤럭시S20에 자사의 모바일 AP인 엑시노스를 모두 포기하고 AP와 5G 모뎀 모두 퀄컴 스냅드래곤으로 통일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신형 스마트폰에 내수용은 엑시노스를, 외수용은 스냅드래곤을 탑재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다. 여기에는 스냅드래곤의 기술력이 엑시노스를 상회한다는 현실인식과 더불어, 최신 스마트폰에 퀄컴의 라인업만 채워 ‘다음 물량’을 소화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살(갤럭시S20에 퀄컴 제품 단일화)을 내주고 뼈(X60 물량 일부 소화)를 취한 셈이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의 퀄컴 계약 수주는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영역에서 고객을 확보하려는 삼성의 노력에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결국 운용의 묘이며, 선택과 집중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가능성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메모리부터 시스템 반도체, 스마트폰 등 모든 공정을 아우르는 삼성전자의 특성상 내부의 파운드리 사업부에 퀄컴이나 애플 등이 선뜻 물량을 맡기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이러한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