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배를 아십니까?

최근 주주총회 시즌을 전후해서 알고 지내던 몇몇 주주 어르신 댁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댁에 방문하는 것을 상상도 못했는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던 시기라 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는 바깥은 나오기가 겁난다는 이유에서였다. 밖에서 만나는 주주들도 가볍게 밥만 한 그릇 먹고는 바로 헤어졌다. 집으로 찾아오라니 사실 하루 종일 사람들 만나러 헤매고 다닌 탓에 바이러스 보다 신발 벗었을 때 발냄새가 더 걱정이었다.

주가 등락과 상관없이 언제나 믿고 대해주는 몇 안 되는 그런 주주들이 고맙기만 했다. 첫 집에서는 사과와 커피를 한잔 내왔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 시간 여 동안 주고 받았다. 사과 한 개와 토마토 하나를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서 미안해 하면서 일어났다.

두 번째에 방문한 집에서도 역시 과일을 내왔는데, 한참 먹다가 충격에 빠졌다. 귀한 과일이라며 내온 것은 오렌지 하나와 배 하나였다. 목이 말랐던 터라 과즙이 넘치고 달달한 오렌지와 배를 연신 입으로 가져갔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스치듯 질문을 받았다. “맛이 어때?” “되게 맛 있네요.” “진짜? 다행이네.”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하고선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연신 먹어대고 있는데, 오렌지를 하나 더 까서 주더니, ‘이제 몇 개 남지 않아서 줄 게 없다’는 말을 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마트에서 과일 사 드리고 갈게요.”라는 말로 약간 빈정상한 마음을 숨기면서 대답했다.

 

50 평생 처음으로 맛본 ‘봄 배’는 충격이었다

내가 오해하는 것이 엿보였는지 아니면 자랑을 할 요량이었는지, 덧붙였다. “그게 아니라 제주도 농장에서 지인이 재배한 첫 수확으로 오렌지와 배를 조금 보내줬어.” 아무 생각 없이 “아, 예”하던 나는 순간 움찔했다. ‘지금이 봄인데, 오렌지는 몰라도 배가 설마?’ 추석 때가 되어도 설익은 배가 비싸게 팔리는데, 이렇게 단물이 듬뿍인 배가 봄에 재배되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먹다가 말고 접시에 담긴 것을 한참 동안 쳐다 봤다.

“봄 배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근데 이렇게나 맛이 있다니요? 이건 대박입니다.”

농장에서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봄에 이런 맛을 내는 배가 수확되다니’ 하는 마음에 먹기조차 아까웠다. 접시 위에 볼품 없이 썰어 내온 과일 몇 조각이 그냥 과일로 보이지 않았다. 쉰을 훨씬 넘기면서 살아온 내게 봄 배는 귀하다 못해 충격이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왜 내게?’ 아무튼 누군지는 몰라도 이 맛 그대로 봄에 재배해서 시장에 내놓는다면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빠졌다. 누구는 과일 하나도 이렇게 남들이 상상도 못할 것을 내놓는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었다. 결국 그날 그렇게 귀한 과일을 다 먹지도 못했다. 먹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져서였다. 지난 추석 때 먹었던 배 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다른 사람은 봄에 이렇게 달고 시원한 배를 만들어 내고 있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지?’

반면에 생각나는 과일 중의 하나가 있다. 어렸을 때 여름이든 겨울이든 방학을 하면 그 다음날부터는 무조건 나는 시골 큰 댁으로 가서 한 달여를 보내고 왔다. 가난하고 고단한 살림에 올망졸망 3형제를 키우던 집안에서 방학이면 셋 중 하나는 시골에 맡겨버리는 것을 커서야 알았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도시 아이는 일년 중에서 석 달 정도는 시골에서 소 먹이고, 풀 뜯고, 벌레 잡고, 강에서 멱감으며 보냈다.

다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시골에는 그 흔한 가게도 없어서 라면땅 한 봉지라도 사 먹으려면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야 했다. 어른이 되고 난 뒤에야 그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는 않구나 느꼈지만, 초딩 시절의 나에게는 아득히 멀고도 먼, 어린 아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길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TV는 저녁밥을 먹고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시작했던 탓에 무료함 특히나 입이 심심한 것을 참기가 젤 힘들었다.

수박이나 참외는 밭에 늘려있었지만, 어릴 적 내 입은 그냥 밭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돈을 주고 사먹는 달달한 것을 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산기슭 풀을 뽑아서 입에 대면 단물이 나오고, 동네 울타리 가시나무에 열린 땡깔(당시 흔하게 쓰던 사투리, 까만 포도 알멩이를 닮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은)도 먹고 그것도 없으면 창고에 쌓여있던 양파를 군것질 거리로 삼기도 했다. 갓 재배한 양파는 의외로 수분과 단맛이 많다.

어느 날 혼자서 시골 동네를 쏘다니다가 탐스런 모습은 아니지만 제법 잘 익은 듯한 복숭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무를 봤다. 속으로 ‘주인이 없나? 왜 아무도 이 복숭아는 따 먹으려 하질 않지?’하면서, 행여나 누가 보면 야단이라도 맞을까 싶어 두근거리는 맘으로 다가가 양손으로 얼른 몇 개를 따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와서 씻으면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대충 바지춤에 닦고서는 덥석 깨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호주머니에 넣어둔 것들을 마을 웅덩이에 모조리 패대기를 쳤다.

 

합리적 이성의 인간이 ‘빛 좋은 개살구’를??

크기는 좀 작아도 색깔이나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하게 익은 듯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개복숭아였다. 요즘이야 섬유소가 많아서 다이어트에 도움된다고 찾는 이들이 있지만, 그 시절엔 사람이 먹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우리가 맛있게 먹는 열매들과 대비해서 ‘개’를 붙여서 부르는 것들이 있다. 개복숭아니 개살구 같은 것들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울지 모르지만 먹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겉만 그럴싸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지칭하는데,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서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잣대를 엄히 들이댄다. 반면에 누가 그러랴 싶지만 사리분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 일이나 실제 생활에서는 ‘최선을 다해 겨우 빛 좋은 개살구를 만드는 일’이 너무나 허다하다.

전 직장에 있을 때였다. 수십 년간 누려오던 1위 기업의 입지를 경쟁사에 빼앗긴 뒤에 날이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부채비율 같은 재무 지표는 나빠지다 못해 숫자를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되었고, 대규모 구조조정은 언제라도 가능했고 심지어는 다음달 월급은 나올까 하는 소문으로 뒤숭숭해져 있었다. 명색이 마흔여 개의 국내외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었는데도 말이다. 좋은 얘기는 하나도 없고 험악한 얘기들만 소리소문 없이 번져나갔다.

가뜩이나 경쟁사는 실적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 선두에서 열혈 영업맨으로 뛰고 있는 직원이 우리 회사 출신이라는 말이 들렸다. 자초지종을 파악해보니 파벌로 갈라져 있던 부서 내에서 ‘멍청이’로 홀대 받던 직원이었는데, 인사 고과에서 ‘D’ 평점을 거푸 받고 회사를 그만 둔 뒤에 어찌어찌 경쟁사로 입사를 했는데, 거기선 에이스로 거듭나면서 훨훨 날아다닌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을 따돌리며 결국에는 내쫓기게 만들고 살아남았음에 의기양양해 하던 그 모습을 대하면서는 화를 낼 힘도 없었다. 매출을 견인할 능력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들이 끼리끼리 모여 앉아 월급은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만 해댔다. 애꾸 눈만 있는 원숭이 마을에선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이상하게 보이는 법이다.

본의 아니게 이직을 몇 번 하다 보니 신약을 개발중인 바이오 기업에서도 일을 했는데, 임상이 코 앞에 닥쳐 있었고, 이미 뉴스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보고 있었기에 ‘조만간 뭔가’를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임상1상부터 2a, 2b, 그리고 3상까지 삼사 년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과감히 도전했다. 사실 특허 만료까지 남은 기간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서둘러서 임상 과정을 끝내고 해외 시장엔 라이선스 기술이전을 통해서 큰 돈을 벌고 국내 및 중국 동남아 시장은 직판 체제를 갖춰 공급에 나서기만 하면 대박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섣부른 생각에서였다.

이직을 한 때가 2013년이었는데, 다행이 그 중간에 임상1상은 가까스로 마쳤지만, 시장에 제품이 나오려면 아직도 하세월을 기다려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약 개발자이자 담당 부사장이 십여 년간 그 일을 맡아 오면서 최고경영진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자금 집행이며 회사의 모든 것들이 거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진행은 한없이 더디고 더뎠다. 물론 신약이라는 것이 그렇게 갑툭튀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런 기약 없는 기다림에 모든 직원들은 이미 희망을 접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은 특허 만료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에 공급을 하게 되더라도 얼마 안 있어 특허가 풀려 버리면 애써 죽 쒀서 개 주는 꼴 밖에 안 되는 것임에도 회사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사에 돈을 벌어오는 영업도, 대외적인 여론을 긍정적으로 유지하여 대규모 유상증자나 메자닌 자금을 끌어오는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운 재정 살림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끼우는 재무도 한결 같이 시덥잖은 일일 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TV에 ‘어쩌다’를 수식어로 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배우고 깨쳐야 할 것이 많아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최초였는데, 정말 어쩌다 보니 어쩌다라는 말을 아무 곳에나 끼워놓고 있었다. 일을 하느라 했는데, 어쩌다 보니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때가 있다. 이 정도면 약과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최선을 다해서 개도 먹지 못할 빛 좋은 개살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 좀 해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