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OTT 및 인터넷 서비스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망 이용료와 관련된 논란도 본격화되고 있다. ISP(인터넷서비스제공자)와 CP(콘텐츠제공자)의 이견이 큰 상태에서 당장 의미있는 협의가 있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망 중립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테이블 위에 올랐다.

▲ 출처=갈무리

역차별, 그리고 대안

국내에서 망 이용료를 둘러싼 논란은 주로 역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2017년 네이버와 구글의 분쟁이다. 당시 네이버는 총수 지정 이슈와 뉴스 임의배치 논란 등 분위기가 험악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구글 코리아를 향해 “구글은 세금을 내지 않으며, 고용도 없다”면서 망 이용료 문제를 꺼낸다.

네이버는 실제로 “2016년에만 734억원의 망 이용료를 지불했다”면서 사실상 통신사와 캐시서버를 통한 협력을 유지하는 구글을 비토했다.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네이버 입장에서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순간이다.

다만 국내 CP와 글로벌 CP 사이에서 망 이용료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지난해 8월 극적인 변곡점을 맞는다. 네이버 한성숙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을 비롯해 구글, 네이버, 넷플릭스, 왓챠, 카카오, 티빙, 페이스북과 공동으로 돌연 "정부는 망 비용 구조의 근본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CP들이 주장하는 것은 간단하다. ISP가 과도한 망 이용료를 받고있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며, 결국 이를 가능하게 만든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망 중립성과 망 상호접속 문제를 다루는 국제 비정부기구인 PCH(Packet Clearing House)가 2016년 148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9.98%의 인터넷 협정이 무정산 방식이었으며, 오직 0.02%만이 상호정산 방식을 채택했다”면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상호접속 고시와 과점 상태인 국내의 망 산업이 결합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망 비용이 증가하는 나라가 되었다. 가뜩이나 높았던 망 비용이 상호접속고시 개정 이후 더욱 증가하여 국내 CP의 망 비용 부담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일종의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당시 발표한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은 트래픽 정산에 있어 무정산 구간을 설정하는 한편 대형 ISP간 트래픽 비율이 1대1.8일 경우 접속료를 상호 정산하지 않도록 했다.

2016년 상호접속고시 개정 후 같은층위의 ISP들의 무정산 원칙이 사라지며 트래픽 기반 정산이 시작된 상태에서, 늘어난 비용이 CP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다. 나아가 2년마다 새로 결정하는 접속 통신 요율을 인하키로 했으며 요율별로 인하율도 다르게 책정하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통신사 등 ISP는 트래픽 기반의 정산방식을 유지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에 명분을 얻었고, 나아가 1대1.8을 넘을 가능성이 있는 글로벌 CP와의 협상에도 힘있는 액션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 CP들은 무정산 구간이 생겼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말이 나왔다.

싸움은 여전하다

국내외 CP들의 화력이 ISP를 조준하는 쪽으로 전선이 정리된 가운데, 이번에는 페이스북- SK브로드밴드 사태에 이어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사태가 시작됐다. 쉽게 말해 넷플릭스가 제대로 된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핵심이다. 글로벌 CP와 국내 ISP의 대결로 볼 수 있다.

사실 글로벌 CP들은 국내 통신사, ISP와 캐시서버를 통한 협력을 이어온 바 있다. 국내 인터넷 사용자가 많지 않던 시절 ISP들은 글로벌 CP를 유치해 가입자를 모으려 적극적인 캐시서버 구축을 제안했고, 그 비용은 대부분 ISP가 부담했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 가입자가 포화상태에 이르로 글로벌 CP를 찾는 트래픽이 폭증하자 ISP의 생각도 달라졌다. 최초의 홍보효과를 누린 상태에서 이제는 유지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호접속고시 개정안이 발동되며 ISP 사이에서 뜻하지 않은 부담이 발생했고, 여기에 ISP 일부가 글로벌 CP에 비용을 청구하자, 페이스북이 가동 속도를 느리게 만든 것이 논란이 됐다. 다만 최근 글로벌 CP들은 캐시서버 비용 일부를 충당하는 한편 ISP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원만한 해결택을 찾아갔다.

넷플릭스는 사정이 다르다. 캐시서버를 일부 가동하고 있으나 별도의 프로그램인 오픈 커넥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국내서 LG유플러스 등 3개 ISP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오픈 커넥트를 가동하고 있다. 오픈 커넥트는 소비자가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 비용을 지불하는 ISP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며, ISP의 네트워크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고 회원들이 자주 시청하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에 미리 저장해두는 방식이다.

오픈 커넥트는 스트리밍에 최적화된 서비스라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회원들은 유튜브처럼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를 스트리밍해 즐기는 ‘한 방향' 형태로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이는 트래픽의 총량을 미리 예측하기 편리하다. 오픈 커넥트 방식의 ’미리 준비한 새벽 콘텐츠 배송‘과 스트리밍의 단방향 전략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이유다.

넷플릭스가 오픈 커넥트를 강조하는 이유는, 망 이용료 분쟁을 겪는 상황에서 일종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SK브로드밴드 등 국내 ISP에 대한 일종의 오픈 커넥트 설득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미묘한 지점이다. 사실 오픈 커넥트는 국제 망에 대한 비용을 ISP가 치른다는 점에서, 국내 ISP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망 이용료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설명대로 유튜브와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오픈 커넥트의 강점은 분명히 존재하며, ISP의 네트워크에 걸리는 부하는 줄이는 한편 넷플릭스 이용자들의 만족을 끌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망 이용료 분쟁에서 국내 CP와 글로벌 CP의 전쟁이 국내외 CP와 국내 ISP의 분쟁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글로벌 CP와 국내 ISP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현재 이와 관련해 정부 및 업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더욱 본질적인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로 망 중립성 원칙이다.

▲ 망 중립성 훼손은 오픈 인터넷 정신에 타격을 준다. 출처=갈무리

망 중립성, 어떻게 봐야 하나

망 중립성은 통신사와 같은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운용하며 특정 서비스와 콘텐츠 사업자에게 차별대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유럽의 경우 망 중립성을 굳이 지키지 않는다는 기류가 강한 가운데, 한 때 망 중립성의 성지로 불리던 미국도 2018년 아짓 파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주도로 그 원칙이 폐기됐다. 톰 휠러 FCC 위원장 시절 망 중립성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상징했으나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높아진 반 실리콘밸리 정서에 힘입어 공화당이 FCC를 장악했고, 결국 위원들이 전격적으로 표결에 돌입해 3대2로 폐지를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CP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몸집을 불린 CP들은 오히려 후발 CP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NYT)는 망 중립성 논란이 한창이던 2017년 12월 17일 “글로벌 ICT 기업들이 망 중립성 폐지에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보도를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망 중립성 폐지 논란이 불거질 당시에는 열성적으로 반대했으나 막상 망 중립성 폐지가 결정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망 중립성이 폐지되면 신생 인터넷 콘텐츠 사업자가 성장하기 어렵고,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룬 대기업들은 추격자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결국 망 중립성은 CP와 ISP 모두에게 양날의 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망 이용료를 두고 전쟁을 거듭하는 국내외 CP와 국내 ISP의 입장은 명확하다. 망 이용료와 망 중립성이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망의 ‘리소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용료와 중립성의 원칙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문제다.

일단 국내 CP들은 망 이용료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주장을 이어가는 한편 망 중립성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일부 긴급조절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글로벌 CP와 망 이용료 분쟁에서 보폭을 일부 맞추면서 나오는 논리다.

ISP는 당연히 망 중립성에 반대한다. 특히 5G의 등장과 함께 탈통신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사의 콘텐츠 서비스 등을 키우려면 리소스의 전략적 집중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5G 전략이 개화하려면 네트워크 슬라이스 등 다양한 기술적 진보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이는 망 중립성이 강하면 시도될 수 없는 전략이다.

이와 관련된 정부의 연구반이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만약 망 중립성 원칙을 지킬 경우 ISP들은 데이터 속도와 망 이용료 등에 차이를 둘 수 없으며 반대의 상황에는 차이를 둘 수 있기 때문에, 관련된 논의 자체가 출렁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끝에서 결국 CP의 시장에서 CP들만 경쟁하느냐, 혹은 ISP가 망 중립성 훼손을 무기로 삼아 CP 시장에 진출하느냐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