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이 28일 오전 11시15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구본상 LIG넥스원 회장과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구지연씨, 구지정씨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다. 유족들은 고 구자원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지낼 생각이다.

조력자, 그리고 영욕의 경영인

LIG그룹은 범 LG그룹으로 분류되며, 그 시작은 고 구자원 회장의 아버지인 고 구철희 창업고문에서 시작된다.

고 구철희 창업고문은 형인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자와 함께 현재의 LG를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고 구인회 회장이 196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고 구철희 창업고문은 동생들과 조카들을 불러 본인은 경영승계에 관련이 없고, 창업주이자 형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고 구자경 당시 부회장이 경영을 총괄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LG의 장자승계원칙의 시작이다.

이후 고 구철희 창업고문은 형인 LG그룹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이 세상을 뜨자 즉각 LG를 떠났고, 조카인 고 구자경 LG그룹 2대 회장에게 그룹 경영을 맡긴다.

다만 고 구철희 창업고문의 장남인 고 구자원 회장은 계속 LG에 남아 2세대 경영인인 고 구자경 회장과 함께 활동한다. 그는 럭키증권 사장을 거쳐 럭키개발, LG정보통신부문을 거치며 LG의 사세확장에 큰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고 구본무 회장이 3세대 경영에 나서며 고 구자원 회장도 LG를 떠나게 된다. 삼촌격인 본인이 계속 LG에 남아있을 경우 고 구본무 회장의 경영전략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고 구자원 회장은 아버지인 고 구철희 창업고문이 2세대 경영에 이르러 LG를 떠난것처럼, 아들인 그도 3세대 경영이 시작되자 LG를 떠나 새로운 선택을 시도하게 된다.

고 구자원 회장은 1999년 LG화재를 계열분리해 LG그룹에서 독립했다. 이후 LIG손해보험으로 사명을 바꾸며 LIG그룹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보험을 핵심 먹거리로 삼아 종합금융회사로의 발전을 타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종합금융회사의 비전을 추진하면서도 건설업에 관심을 보인 그는, 2011년 LIG건설 기업어음(CP)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당시 상황이 나빠진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음에도 CP를 발행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 구자원 회장이 투자자들의 피해를 예상했음에도 CP를 발행했다는 주장이 나오며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는 불명예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당시 검찰에서는 현 총장인 윤석열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가 'LIG그룹 기업어음 사기 사건 수사를 총괄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고 구자원 회장은 2013년 CP 투자자에 대한 피해보상 자금 마련을 위해 LIG손해보험 주식 전량을 매각했으며, 사세는 크게 쪼그라들게 된다. 최근까지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LIG넥스원의 실적은 근 몇 년 계속 떨어지고 있고, 그 외 계열사의 반등 포인트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재계에서 LIG그룹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본다.

LG의 초석 중 하나를 쌓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형제의 난, 자매의 난 등 다양한 경영권 분쟁을 치르거나 치뤘던 경험이 있다. 실제로 삼성과 현대차, 효성, 롯데, 한진그룹 등 많은 기업에서는 경영권을 두고 피를 나눈 형제자매들이 치열하게 격돌하는 분위기가 심심치않게 펼쳐진다.

다만 LG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고 구인회 창업자에서 고 구자경 회장으로 이어지던 순간 고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이자 동지던 고 구철회 창업고문은 미련없이 LG를 떠났고, 고 구자경 회장에서 고 구본무 회장으로 이어지는 3세대 경영에서도 고 구자원 회장은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라 LG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골육상쟁은 벌어지지 않았고, 계열분리도 매끈하게 벌어진 바 있다.

고 구철회 창업고문과 고 구자원 회장 ‘부자(父子)’의 결단이 만들어낸 LG의 가풍(家風])이다.

물론 고 구자원 회장이 LG를 떠난 후 행보를 두고는 일부 아쉽다는 말도 나오지만, 큰 틀에서 영욕의 세월을 걸어온 ‘진지한 도전자’라는 평가도 유효하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세상을 떠난 고 구본무 회장, 고 구자경 회장과 함께 또 하나의 거인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