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유럽에서 중국 화웨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강력한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5G 존재감을 탄탄히 하는 가운데 영국에 이어 독일도 화웨이 5G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이 유럽의 화웨이 장비 도입에 반대하고 있으나 전혀 효과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수준이다.

미국의 굴욕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가능성이 대비해 공격적인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경제 공조 효과도 예전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폭락하는 국제유가 정국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더욱 흐릿해지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화웨이, 유럽진공작전

화웨이는 미중 무역전쟁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집중적인 공격을 당했으며, 지금도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미국은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고 있다. 최근 화웨이의 새로운 폴더블 스마트폰인 메이트xs가 출시됐으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한 발 나아가 동맹국과 화웨이의 거래도 차단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밀착설을 강조하며 소위 ‘화웨이 백도어설’을 거론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동맹국에는 ‘중국 정부와 유착한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활용할 경우 동맹에 균열이 갈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보내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화웨이 압박이 생각보다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점이다. 당장 영국 정부가 화웨이의 손을 잡았다. BBC 및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월 28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국가안보회의(NSC)를 열어 5G 통신 네트워크 공급망에 관한 검토 결과를 확정했으며, 여기에 화웨이 장비가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핵심 부문에서는 화웨이를 배제하고, 비핵심 파트에서도 화웨이의 점유율이 35%가 넘지 않도록 제한을 뒀으나 사실상 화웨이와 함께 5G 동행을 선택한 셈이다.

니키 모건 영국 문화부 장관은 "우리는 가능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결성을 원하지만, 이는 국가 안보를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으나, 화웨이와 손을 잡은 영국의 행보는 그 자체로 신선한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는 전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독일 업계 2위 이동통신사인 텔레포니카 도이치란트(Telefonica Deutschland)가 자국 5G 네트워크 망 구축을 위해 화웨이와 노키아를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5G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협력업체로서 화웨이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프랑스 대표 이통사인 오렌지(Orange)의 스테판 리차드(Stéphane Richard) CEO는 “중국산 안테나를 이용해 대화하면 모든 대화내용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도청당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화웨이 보안 논란을 일축했다.

안나 베키우스(Anna Beckius) 스웨덴 우편통신청(PTS) 주파수 분석 부문장은 “스웨덴의 5G 통신망 구축에 소위 말하는 ‘화웨이 배제’는 없을 것이다”며 “경매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은 누구든 당국의 검토를 우선적으로 거치게 될 뿐이다”고 밝혔다. 또 칼레프 칼로(Kalev Kallo) 에스토니아-중국 의회장도 “화웨이 “화웨이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보안과 관련된) 위험을 지적해 온 이들 중 그 누구도 기술적인 변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화웨이가 통신장비 시장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막대한 R&D 투자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EU 집행위원회가 발간한 ’2019 산업 R&D 투자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2018년 화웨이의 R&D 투자 규모는 세계 5위로127억 3960만 유로(약 16조4393억원)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R&D에 투자하는 비율을 얘기하는 R&D 집중도는 13.9%에 달한다.

화웨이는 5G에 있어서도 2008년부터 10여년간 약 6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5G 네트워크 인프라에 투자한 바 있다. 여세를 몰아 화웨이는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GlobalData)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9년 하반기 5G 무선접속네트워크(RAN): 경쟁구도 평가' 보고서에서 상반기에 이어 1위 기업에 선정됐다. 기저대역 유닛(BBU) 용량, 무선통신 포트폴리오, 설치 용이성, 기술 진화 등 4개 항목을 평가한 이번 보고서에서 화웨이는 4개 항목에서 모두 최고점을 받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럽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에 문을 여는 결정적인 이유다.

국제유가 공조 무너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선을 횡보하는 가운데, 이 지점에서도 미국의 ‘약발’은 떨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증산경쟁에 돌입하며 국제유가가 폭락하는 가운데 자국의 셰일가스 업계를 살리려는 미국이 사우디에 증산경쟁에 나서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사우디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최근까지 국제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적절한 수요와 공급선을 유지했으나 최근 증산경쟁에 돌입하며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원유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명적인 패권경쟁에 돌입한 셈이다.

국제유가 폭락에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울상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경우 채산성이 낮은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줄파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공격적인 증산경쟁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했으나,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람코는 리야드 주식시장 공시를 통해 4월 1일부터 하루 생산량을 970만 배럴에서 130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노리는 러시아와의 한판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사우디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오래된 우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역시 최근의 정세를 보면 ‘정해진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군의 시리아 철군 과정에서 두 나라의 이상기류가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시리아 내전에서 지난해 발을 뺐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과 공조하던 사우디는 큰 타격을 받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와도 친밀한 관계지만, 미군의 시리아 철군 당시부터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걷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중이다.

보호 무역주의, 어려운 경제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집권부터 보호 무역주의를 천명한 미국의 입지는 점점 작아지는 분위기다. 2차 세계대전 후부터 공조하던 유럽과의 관계도 소원해졌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은 스스로 세계경찰의 지위를 포기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가 더욱 악화되자 미국의 지위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최악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각 국이 각자도생을 바라며 미국 주도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던 트럼프 행정부는 어려운 경제위기가 가중되는 순간, 나아가 화웨이처럼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순간 스스로 선택한 ‘패권국의 지위’에 따른 후폭풍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글로벌 정치 및 경제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뜻이며, 진정한 의미의 다원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분석과도 맥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