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이가영 기자] 국제유가가 또 대폭락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배럴당 30달러도 무너지며 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이동 제한 및 국경봉쇄가 이어지며 원유 수요가 감소하는 한편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 전쟁이라는 이중고가 겹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이다.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도 휘청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려는 미국의 초강수도 연이어 나오며 사태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2016년 이후 최저...'총성'
글로벌 증시가 대폭락했던 9일(현지시간) 국제유가도 크게 출렁였다.당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4.6%(10.15달러) 떨어진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고 런던선물거래소(ICE)에서 브렌트 원유 선물거래가격은 배럴당 31.02달러로 역시 거래를 마치는 등 30달러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마지노선으로 분류되는 30달러선이 무너진 것은 16일(현지시간)이다. 실제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9.6%(3.03달러) 내린 28.7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처음으로 30달러선에서 밀렸다. 2016년 이후 최저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는 30.05달러를 지켰으나 조만간 30달러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광범위한 판데믹 현상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17일 현재 미국에서는 4464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78명이 사망했으며 이탈리아는 2만7980명의 확진자, 215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스페인도 9191명의 확진자, 309명의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사실상 전시 체제로 접어들었고 이란에서도 1만4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며 초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미국은 물론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유 수요가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항공업계의 타격이 엄청나다. 항공 컨설팅 전문기관인 CAPA는 16일(현지시간) “많은 항공사가 이미 기술적 파산 상태에 몰렸거나 대출 약정을 현저하게 위반한 상태에 있다”며 “항공사의 현금 보유고는 여객기 운항 중단 등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의 1월 수출 자료에 따르면 최근의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석유화학과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9.7%, 0.9%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시장이 쪼그라든 상태에서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기록하면 석유화학과 수출단가까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대부분의 하늘길을 막았고, LCC는 당장 도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국제유가의 폭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사우디와 러시아의 충돌
코로나19로 인한 원유 수요 감소가 국제유가 하락을 부추겼으나, 더 큰 요인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힘겨루이게 있다는 분석이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가 동시에 증산에 돌입하며 소위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석유공사 아람코가 내달부터 일일 생산량을 1000만 배럴로 늘릴 계획이라 밝힌 가운데 러시아도 국영기업을 총가동해 증산에 돌입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두 나라의 증산 경쟁으로 최대 13억배럴의 공급 과잉이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가 증산 치킨게임을 벌인 배경에는, 사우디의 판 흔들기가 있다.

사우디는 2015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시기, 증산을 통해 판을 뒤흔든 경험이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할 경우 산유국은 커다란 수익을 보장받기 때문에 당시 사우디의 증산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사우디는 당시 '지금의 호황에만 안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였다. 바로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때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텍사스를 중심으로 이른바 에너지 혁명을 시도한다. 이는 글로벌 원유 패권을 가진 사우디 입장에서 좌시할 수 없는 사태며, 또 언젠가는 셰일가스 업체들의 반격으로 저유가 기조로 돌아설 리스크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사우디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기던 호황기에도 불구하고, 발 밑의 공포로 자라고 있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증산을 통한 국제유가 하락을 시도한 셈이다.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낮기 때문에 국제유가를 낮추면 이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판단도 깔렸다.

지금(2015년)이야 호황이지만 훗날 셰일가스 업체들이 성장해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우디와 같은 산유국들은 말 그대로 '앉아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더 심각한 리스크는 사우디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잃는다는 것이다. 유가를 올리든 내리든 모든 결정은 원유 패권국인 사우디가 내려야 한다는 절대적 명제를 세운 상태에서, 사우디는 국제유가를 떨어뜨리는 증산을 통해 판 뒤집기를 시도한 셈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은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의 기업처럼 국영기업이 아닌 민간기업이라 소위 '담합'도 시도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로는 치킨게임이다. 사우디가 증산을 선언하자 러시아도 증산으로 맞불을 놨고, 일단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사우디와 러시아가 무작정 증산을 통한 치킨게임을 불사하기에는 잃을 것도 많았다. 게다가 미국도 셰일가스 업체의 구조조정 등 체질개선에 들어가자 두 나라는 2016년 OPEC+를 통해 감산에 합의한다.

주요 산유국들이 감산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다시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증산을 통한 국제유가 하락에 신음했으나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으로 체력을 키웠고, 미 정부의 강력한 우회지원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형 석유 수입국에서 중요한 수출국으로 변신하며 셰일혁명에 시동을 걸었고, 이런 상태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결국 OPEC은 지난 6일 다시 러시아와의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공식적으로 감산을 제안했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두각을 보이자 이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수요가 떨어지자 국제유가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를 거절했다. 국제유가 안정에 따른 당장의 이익보다 시장 패권, 즉 국제유가를 정할 수 있는 권력에 더 구미가 당겼기 때문이다.

결국 사우디가 폭발했다. 사우디는 러시아가 감산에 합의하지 않자 오히려 증산이라는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 참에 원유 패권국 지위를 굳히려는 러시아도 견제하고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에게도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증산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이 이어지면 산유국인 사우디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차치해서라도 라이벌들의 기세를 눌러줄 필요성을 느낀 셈이다.

파괴적 영향 이어질 듯
사우디와 러시아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들이 전부 증산 카드를 꺼내가 국제유가는 기어이 마지노선인 배럴당 30달러선도 깨졌다. 이런 가운데 2015년 증산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던 미국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자국의 셰일가스 업체들이 또 한 번 줄도산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채산성이 낮은 자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무너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증산 결정이 나옴과 동시에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태 진작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뉴욕타임즈는 정부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최우방국인 사우디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묵살한 셈이다.

원유 패권국 지위를 지키려는 사우디의 의지도 강했지만, 최근 삐걱거리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과 사우디가 수니파를 지원하며 시아파를 지원하는 이란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지난해 미군이 시리아 철수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며 두 나라의 이상기류가 증폭됐다는 말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시아파를 지원하는 이란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고, 러시아는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급속도로 시리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최우선 동맹국인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발을 빼는 한편,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자국의 원유시설이 타격받는 상황에서도 미국이 오로지 '발만 뺄 생각'만 하자, 원유 시장에서의 협력을 거부한 분위기다. 미국의 고립주의,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자국 우선주의가 사우디와의 국제유가 공조전선에 악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미국은 13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원유를 대량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해 자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피해를 보기 전, 막대한 달러를 풀어 국가 비축유를 채우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내려앉은 가운데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당장 미국의 비축유 선언이 나왔으나 매입에 드는 비용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이 없다. 의회의 동의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현재 미국의 비축유가 이미 상당하다는 말도 나온다. 사우디와 러시아, 그리고 셰일가스 업체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미국까지 얽힌 국제유가 전쟁의 방향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