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제유가 및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시장도 잔뜩 움츠려 든 모양새다. 심지어 현실경제가 어려우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자산이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깨지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연이은 시련에도 업계의 비전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다양한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출처=갈무리

암호화폐의 등장, 그리고 시련
"코인 소유자는 거래 내역에 디지털 서명을 한 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고, 받은 사람은 자신의 공개 키를 코인 뒤에 붙입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앞 사람이 유효한 소유자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0월 정체불명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은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9쪽의 논문을 웹에 공개했다. 비트코인의 등장이다.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최초로 발행되며 역사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개발자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창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논문을 발표하며 정부나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이 순수하게 개인과 개인의 빠르고 안전한 거래를 지향했다. 최대 발행양은 정해져 있었으며 모든 참여자가 장부를 공유하며 신뢰도를 상호보완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현재의 중앙 집중형 시스템의 대안을 마련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논문을 통해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뢰할 수 있어야하지만, 화폐 통화의 역사는 그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합니다"고 적었다. 사토시가 논문을 발표하던 시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혼란의 순간, 사람들의 지갑이 얇아지며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의 탈을 쓴 합리적 소비의 방식인 온디맨드 플랫폼이 태생되던 때였다. 그는 정부와 중앙은행,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기존 금융질서는 억압과 속임수의 연속이며 탈 중앙화를 통한 새로운 화폐질서가 디지털 자산의 이름으로 시대의 주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시간은 흘러 암호화폐 시장에도 기술적 진보와 다양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암호화폐가 우후죽순 등장했으며 이들은 거래 속도의 개선과 투명성 고도화 등 다양한 목표를 설정하고 하드포크를 비롯한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토큰 이코노미가 등장해 블록체인의 새로운 플랫폼 전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아가 암호화폐와 토큰 이코노미로 구축된 생태계는 '마이크로 리코드'와 같은 새로운 가능성도 시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암호화폐의 진화와 도전은 곧 다양한 시련에 직면한다. 먼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코드만으로 구성된 각 암호화폐에 현실의 재화가치가 매겨지는 단계에서 '버블 논란'이 불거졌고, 이는 곧 암호화폐의 허상을 비판하는 용도가 됐다. 즉, 아무런 가치가 없는 암호화폐에 현실의 재화를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회의론이다.

업계는 이 단계에서 토큰 이코노미를 통한 생태계의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략도 속속 실패하고 있다. 당장 트론에 인수된 스팀잇은 분산형 플랫폼 권력의 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콘텐츠의 세부적인 활용과 이를 통한 생태계 구축에 나섰던 왓챠 콘텐츠 프로토콜이 흔들리기도 했다. 블록체인은 탈 중앙화의 기치를 걸고 다양한 생태계를 연결해 '모두가 참여하는 시스템'을 꿈꿨으나 현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명확한 규제가 없고 시장은 방향성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대중의 욕구에 의해 시장이 만들어지고 돈이 몰렸다면,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시장은 시장이 먼저 만들어지고 돈이 몰린 후 대중의 욕구가 여기에 부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금 탈루 및 각종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한편 소위 '사기꾼'들이 대거 몰리며 판 자체가 혼탁해졌다.

무엇보다 암호화폐가 캐시리스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현실경제와 접점을 가지는 순간, 제도권의 반감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당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페이스북 리브라의 존재가 알려지자 지난해 7월 12일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부정적인 트윗을 남겼다. 그는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면서 “규제없는 암호화폐는 불법적인 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도 견제하며 "신뢰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와 바이낸스의 비너스 등 최근 관심을 받는 암호화폐 프로젝트는 모두 스테이블코인이다. 즉, 일정부분 현실경제에 영향을 받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암호화폐라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기들의 거대한 생태계에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 사실상 '탈'달러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제도권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 없는 태생적 구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최근 리브라가 사실상 기축통화 시도에 백기를 든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 암호화폐 시장 자체로만 보면,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지던 디지털 자산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 당시 비트코인 등이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한 때 고공행진을 누렸으나,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에서 비트코인 시세는 하락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16일 현재 일부 반등세가 보이지만 여전히 시세는 떨어지는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암호화폐는 물론 암호화폐를 원료로 삼아 토큰 이코노미와 관련 생태계를 가동해야 하는 업체들에게는 혹독한 겨울이다.

▲ 출처=갈무리

본실력 보여줄까
최근 암호화폐 시장으로만 보면, 제도권 편입이라는 큰 틀에서의 빅 이벤트가 눈길을 끈다.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해 프랑스 파리 총회를 열어 암호화폐인 스테이블 코인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국내서도 의미있는 행보가 감지된다.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6일 “환영한다”면서 “핀테크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핀테크산업협회 사무국은 “특금법 통과는 무엇보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며, “법 개정 이후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뿐 아니라 전체적인 핀테크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 일자리 창출 등 장기적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금법의 통과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의미한다. 당장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13일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통합 지칭하는 용어를 ‘암호화폐 (Cryptocurrency)‘에서 ‘디지털 자산 (Digital Asset)‘으로 변경한다"고 밝히는 등 거래소들의 전사적인 행보도 보이고 있다.

이미 2019년 8월부터 자금세탁방지 전문대응팀을 만들어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과 운영전략을 수립해 대응하고 있는 코인원도 마찬가지다. 특금법 통과를 기점으로 자금세탁방지 컨설팅과 시스템 구축을 바탕으로 자사의 자금세탁방지 역량과 위협기반접근법(RBA, Risk-based Approach)을 기반으로 한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강화했다.

코인원 차명훈 대표는 “코인원은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한 법 시행을 대비해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단순히 자금세탁방지 솔루션이란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을 넘어서 거래소 운영의 전반적인 수준을 금융권에 준하게 발전시킨 계기가 되었다"며, “향후 마련될 정부 차원의 정책과 더불어 코인원만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고도화해 신뢰받는 코인원 이미지를 더욱 확고히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 출처=갈무리

이러한 행보들이 모아지면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투명성 강화에 성공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파생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도 키울 수 있다. 아직인 지지부진한 토큰 이코노미와 분산형 플랫폼에 대한 신선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포석도 마련된다.

암호화폐의 투기성 투자가 아닌, 블록체인 기반의 진정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열릴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나온다. 현실경제와 관련을 맺으면서 토큰 이코노미 및 마이크로 리코드 등의 특징을 살린 의미있는 서비스들이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고조되면 생태계 조성을 위한 디지털 자산의 개념이 명확해지고, 온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서비스와의 교집합을 노리는 것도 꿈은 아니다.

각 국의 규제기관들이 기업의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사업을 다소 탄압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국가적 차원의 암호화폐 헤게모니에는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블록체인 생태계가 등장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