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히어러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라몬 라마스 IDC 웨어러블 연구 책임자는 "제조사들이 이어폰 단자를 제거하면서 무선 이어폰 시장이 급성장했다"며 "가격이 20% 이상 크게 떨어진 것도 시장 확대의 또 다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많은 플레이어들의 참전으로 히어러블 시장이 양적인 팽창은 물론 질적인 성장도 거듭할 것이라 봤다. 가트너는 “2020년 기준 8600만 대의 스마트워치, 7000만 대의 히어러블 디바이스가 출하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애플(에어팟), 삼성(갤럭시 버즈), 샤오미(에어닷), 보스(사운드 스포츠)와 더불어 아마존까지 히어러블 웨어러블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라고 전망했다.

재미있는 대목은 히어러블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비단 음악을 듣는 행위를 포함해, 사운드 인터페이스 측면의 다양한 가능성이 모두 히어러블의 비전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 출처=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보청기, 청진기,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어러블은 대부분 음악을 듣는 행위에 기반한다. 실제로 히어러블이라는 단어는 2016년 애플이 에어팟을 발표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회자됐으며 주로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블루투스 5.0은 이제 히어러블의 기본이 되어가고 있으며 오디오 신호를 압축하는 코덱 측면에 서도 고음질을 지원하는 코덱의 적용이 늘고 있다.

다양한 기술적 진보도 이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이 작성한 ‘히어러블 단말의 시대가 다가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퀄컴은 자체 오디오 코덱인 aptX를 제공해 자사 칩을 적용한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고음질의 음원을 효율적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CD급 음질을 넘어 24비트/48kHz의 초고음질 음원을 지원할 수 있는 aptX HD로 발전시켰다. 

또 소니도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고음질 음원의 재생을 가능하도록 하는 음원 코덱인 ‘LDAC’를 제공하고 있다. LDAC의 확산을 위해 구글과 협력해 안드로이드 오레오 버전에 해당 코텍을 기본 탑재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히어러블의 범위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기기에서 벗어나 사운드. 즉 소리 자체의 인터페이스를 관장하는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보청기의 히어러블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현재 보청기 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케네스 리서치(Kenneth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보청기 시장은 2017년 70억달러 규모에서 2018년부터 2025년 연평균 7.0% 성장해 2025년 121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보건산업 진흥원 역시 2020년 글로벌 보청기 시장규모가 124억2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 잠재력이 풍부한 보청기는 히어러블의 최전선에 설 자격을 갖췄다는 평가도 받는다. 2000년대 이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보청기가 보편화되며 이제는 블루투스 기능 탑재, 세밀한 청력 기능 조절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보청기의 변화에 애플과 구글도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2013년 iOS 단말용 액세서리에 대한 인증 프로그램인 ‘MFi(Made For iPhone)’ 를 보청기에도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구글은 지난해 발표된 안드로이드 10에서 연결 된 보청기로 직접 소리를 스트리밍하는 ‘ASHA(Audio Streaming for Hearing Aids)’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과 보청기의 만남도 눈길을 끈다. 스타키는 보청기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리비오AI를 출시했으며 머신러닝을 통한 주변소리 분석, 모바일앱을 통한 사용자 맞춤형 소리 지정 및 구성, 아마존 알렉사를 통한 가전제품 컨트롤, 27개 언어 실시간 통역 등을 지원한다. 오티콘도 체 개발한 뷔록스 칩셋을 기반 으로 ‘IoT 보청기’를 제작하고 있다.

▲ 출처=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보청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탑재되어 히어러블의 새로운 가능성 타진이 이뤄지는 가운데, 의사들이 사용하는 청진기에도 비슷한 행보가 감지된다.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헬스 케어 상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에코가 눈길을 끈다. 

ANC 기능을 갖춘 에코의 신형 청진기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심장의 소리를 무선으로 스트리밍하고, 이를 환자의 ‘EHR(Electric Health Records)’에 통합할 수 있다. 더구나 심장소리를 스마트폰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해주어 의사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심장 질환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자체 인공지능 기술력으로 87%의 민감도(sensitivity)와 87%의 특이성(specificity) 으로 심장박동을 구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안경형 히어러블도 등장하고 있다. 증강현실 등 시각적 요소를 담아내는 안경에 히어러블의 ‘듣는’ 기능을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아마존의 ‘에코 프레임(Echo Frame)’이 단적인 사례다. 일반 뿔테 안경과 유사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나 안경테에 마이크와 스피커, 배터리 등을 내장해 음성통화는 물론 음악 감상과 인공지능 개인 비서 ‘알렉사(Alexa)’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완전충전은 75분이 걸리며, 60%의 볼륨으로 3시간 연속 음악 재생이 가능하다. 안경의 렌즈는 교체가 가능하기에 평소에 안경을 쓰는 사람도 자신의 시력에 맞는 렌즈로 교체하여 일반 안경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화웨이도 아마존보다 약간 앞서 한국의 안경 전문업체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와 제휴해 안경형 히어러블 단말인 아이웨어(Eyewear) 시리즈를 발표한 상태다. 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은 “안경 형태의 히어러블 단말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호응을 받을지, 그리고 시장규모가 어느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장기적으로 획일화된 디자인의 단말이 아닌 실용성과 디자인을 강조하는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판매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증강현실 글래스에서도 스크린 기능뿐 아니라 소리 측면에서도 기능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증강현실 안경이 히어러블 단말의 새로운 확장 영역으로 자리잡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 출처=애틀러스리서치앤컨설팅

“소리는 매개, 서비스의 연동이 핵심”

스마트폰의 시대를 관통한 키워드가 시각 인터페이스라면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은 음성 인터페이스가 각광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각 제조사들의 인공지능 스피커가 속속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글 및 애플은 자사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초연결 인프라로 피워가려는 노력에 나서고 있으며, 그 핵심을 음성 인터페이스에 두고 하드웨어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시도하는 중이다.

여기서 히어러블이 큰 힘을 발휘한다. 인공지능 생태계의 확산 측면에서 분석하면, 히어러블은 이동하는 순간에도 인공지능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락인 효과를 창출한다. 나아가 히어러블 단말을 통한 개인비서 제공은 홈단말을 통해서는 제공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능도 제공할 수 있다. 실시간 외국어 통역 기능을 제공하는 구글이 대표적이다. 이 기능은 가정 내에서는 큰 의미가 없지만 모바일 환경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결국 히어러블의 발전은 곧 ‘언제 어디에서나 인공지능 기술력을 만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는 히어러블 기기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에서 벗어나 일상의 모든 명령과 피드백을 매개할 수 있는 커버리지를 가져야 하며, 또 하드웨어 플랫폼도 가지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성 인터페이스로 인공지능 시대를 연 가운데, 이를 24시간 초연결 생태계로 끌어내려면 결국 사용자의 몸에 붙어있는 히어러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당연히 음악 감상을 포함해 보청기 및 청진기, 완전한 증강현실로 나아가는 길목인 안경형 기기까지 모두 히어러블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 이유로 히어러블의 미래는 곧 소니 워크맨의 길을 닮았다.

소니 워크맨은 음악의 감상방식을 바꿨다. 실제로 워크맨 출시 전까지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려면 커다란 붙박이 기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한 자리에서 음악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워크맨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동하며 음악을 즐겼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양 손이 자유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단순한 변화로 보이지만 향후 초연결 모바일 시대의 마중물이 되었고 새로운 질서가 됐다.

음악 감상을 포함한 모든 ‘듣는 행위’의 히어러블도 마찬가지다. 음성 인터페이스로 현존하는 사물을 조작하고 연결하는 시대가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인공지능’과 시너지를 내며 전혀 다른 국면을 창출하는 셈이다. 

히어러블은 24시간 인공지능과의 만남을 의미하며 인공지능과 만날 때 한 자리에 있거나 이동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부순다. 이 사소한 변화가 전체 사용자 경험을 파괴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이라도 히어러블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