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주총시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KCGI와 한진칼 간의 첫 대결은 한진칼이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으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지난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신청 제50합의부에서 열린 ‘의안상정 가처분’사건에서 피신청인인 한진칼 측이 KCGI가 3월 주총에서 의안으로 삼아줄 것을 요구한 사항을 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며 사실상 KCGI의 신청을 수용하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 ‘의안상정 가처분’신청은 무엇인가?

KCGI가 제기한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은 주주인 KCGI가 가지고 있는 ‘주주제안권’, 즉 ‘주주가 일정한 사항을 주주총회의 목적사항으로 하여 줄 것을 제안하는 권리’에 기초한 것이다(상법, 이하 법명 생략 제363조의 2 제1항). 주주총회를 소집할 때 소집통지에는 주주총회에서 논의할 목적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고(제363조 제2항), 이 소집통지에 의하여 소집된 주주총회에서는 기재된 목적사항에 한하여 결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주총회의 목적사항은 주주총회 소집을 결정하는 이사회가 결정하기 때문에(제363조 제1항), 주주가 주주총회에서 의결되기를 바라는 사항이 있더라도 이사회에서 이를 거부하면 주주총회에서 거론조차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주주의 적극적인 경영참여를 돕기 위해 도입된 것이 주주제안권인데, 주주제안권자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서면 또는 전자문서를 통해 자신이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다루고자 하는 의안을 주주총회 의안으로 상정할 것을 이사를 상대로 요구할 수 있고, 이사는 이를 이사회에 보고할 의무를 진다(제363조의 2). 이 경우 이사회는 제안의 내용을 심의하여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는 경우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의 10% 미만의 찬성밖에 얻지 못해 이미 부결된 내용과 같은 내용의 의안을 부결된 날로부터 3년 내에 다시 제안하는 등 주주총회 의안으로 삼기에 부적절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사항을 제외하고는 이 같은 주주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제363조의 2 제3항). 다만, 주주가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경영진에 의안 상정을 요구하더라도 이사회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농후해 이사회 및 주총이 열리기 전에 긴급하게 주주제안권을 보장받아야 할 경우라면 서면 또는 전자문서가 아닌 ‘가처분 신청’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KCGI가 한진칼 측을 상대로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한 KCGI,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해에도 KCGI는 한진칼 측을 상대로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하여 1심에서는 받아들여졌으나, 항고심에서는 결과가 뒤집혀 결국 KCGI는 자신이 상정되기 원하던 의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하지 못하였다. 당시 KCGI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의 지위를 갖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법 상 ‘주주제안권’은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이기만 하면 행사 가능한 권리이지만(제363조의 2 제1항), 한진칼과 같이 자본금 1천억원 이상의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6개월 전부터 계속하여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0.5%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해야만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제542조의 6 제2항). 당시 KCGI는 비록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3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0.5% 이상을 보유한지 ‘6개월’을 경과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주주총회 의안 상정을 요구할 주주로서의 지위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KCGI는 지난해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 이후 지속적으로 한진칼 주식을 보유해 왔으므로,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0.5% 이상을 보유한지 ‘6개월’을 경과하였는지는 더 이상 쟁점이 되지 못하였다. KCGI가 의안 상정을 요청한 사항 역시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4명 등 8명의 이사 후보 추천과 주총 전자투표 도입, 주총에서 이사의 선임 시 개별투표 방식을 채택하도록 명시하는 방안’ 등으로 한진칼 측이 이사회 논의를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한진칼 측은 법정에서 KCGI의 주주제안을 받아들여 이사회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KCGI가 한진칼 측에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한 진의는?

사실 따지고 보면 올해 KCGI가 한진칼 측에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 KCGI는 의문의 여지없이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로서의 지위를 가졌고, 이 점은 한진칼 측 역시 다투지 않았다. 그렇다면 KCGI로서는 한진칼 측에 서면이나 전자문서를 통해 의안 상정되기를 바라는 바를 전달하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가처분 신청’의 측면만 놓고 본다면 한진칼 측이 이사회 상정을 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힌 이상,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할 이유, 즉 ‘보전의 필요성’은 없는 것이어서 법원에서는 KCGI의 신청을 기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KCGI가 이번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과 이른바 3자 연합을 만든 이후 존재감을 드러내어 KCGI와 한진칼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지 못한 주주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한진칼 측에 이후 경영권 분쟁에 있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선전포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원은 한진 칼 측이 KCGI의 요구를 수용해 의안을 이사회에 상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섣불리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가처분 사건에 대한 승패 여부를 떠나 KCGI와 한진칼 간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