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전염병 위기로 정부부처들이 활발하게 위기관리를 하고 있는 중에 저희 회사도 이번 계기로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있습니다. 정부 부처들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가져다 좀 수정해서 쓰면 어떨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실제로 여러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비교해 보면, 기업 상호간 매뉴얼을 공유해서 각 기업 버전으로 세부 수정 정리해 놓은 경우들이 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대형 기업에서는 실제로 정부 기관의 표준 매뉴얼을 자사 버전으로 변환 시킨 흔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 정부에서는 정부 차원의 국가 위기관리 매뉴얼을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각각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고, 그 형식을 표준화 해서 각 부처별로 하달해 세부 매뉴얼이나 부처별 내용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체계적으로는 상당히 의미 있는 노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의미의 핵심은 그렇다면 그런 정부 위기관리 매뉴얼을 가져다 기업이 사용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인데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구성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얻으실 수 있어도, 그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차원에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권장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정부 매뉴얼과 기업 매뉴얼의 가장 큰 차이는 의사결정 주체의 다양성과 특정된 대응 분야, 법적 근거 유무입니다. 정부 매뉴얼은 먼저 단계별로 의사결정그룹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일부 위기 단계별로 대응 조직에 대한 분리를 정하고는 있지만, 그와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기업에서는 굳이 그렇게 다단계의 별도 의사결정그룹을 정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정부 부처 매뉴얼은 해당 부처의 책임하에 있는 대응 분야가 정해져 있습니다. 국방부의 위기, 보건복지부의 위기, 외교통상부의 주요 위기가 모두 각각 다릅니다. 기업에서도 부서별로 다양한 주요 위기가 연결은 되지만, 부서별로 위기관리 매뉴얼을 따로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부서별로 의사결정 하고 부서별 대응하여 관리할 수 있는 위기는 기업에게는 일상 업무이지, 전사적 위기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법적 규정이나 절차 등에 크게 구애 받지 않습니다. 정부 부처야 모든 실행 의사결정이 법과 규정에 의거해 정리되어야 사후 문제가 없고, 협조체계도 순조롭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전략적 판단이 상당 부분 위기를 관리합니다. 물론 기업도 법을 지켜야 하고, 정관이나 여러 규정이 존재하지만, 위기 시 정부기관들의 그것과는 의미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정부기관의 위기관리 매뉴얼은 목차나, 대응 프로세스의 체계, 보고와 브리핑 체계, 커뮤니케이션 체계, 기타 대응 물자와 협력 체계 등에 대한 벤치마킹에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매뉴얼도 그렇듯, 그대로 가져와 조그만 다듬어 우리 것으로 쓸 수 있는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뉴얼 자체의 보유 여부에만 신경 쓴다면 몰라도, 실제 위기 시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는 정부다운 매뉴얼, 기업은 기업 다운 매뉴얼이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