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나라가 체육 강국이 되었다.

하계든 동계든, 올림픽이든 아시안게임이든 늘 상위권에 오르다 보니 출전국가들이 수백 개여도 탑 텐 정도는 당연지사가 되었다. 그런데 인기 구기 종목임에도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로 무려 20년간 올림픽 문턱을 넘지 못한 종목이 있다. 남자 배구. 지난 2019년 12월에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에서도 준결승에서 이란과 풀세트 접전을 펼쳤으나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여자팀의 진출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한참을 잊고 지내던 차에, 우리 나라 대표팀의 주장이자 국보급 센터인 신영석 선수의 인터뷰가 눈길을 확 끌었다. 1년을 함께 생활해봐서 그의 존재감을 잘 안다. 신 선수는 경기대 3학년 때인 2007년부터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센터로 활약해 올만큼, 몇 십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국보급 센터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이 삼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다음 올림픽을 준비할 시기면 그는 나이가 서른 여덟이 된다. 코치진이라면 모를까 현역 센터로 다음이라는 기회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그가 인터뷰에서 쓴 소리를 냈다. 꼴찌만 도맡았던 팀 내에서도 단 한번 싫은 내색, 힘든 표정 하지 않던 선수였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대표팀이 늘 눈앞에 있는 대회 성적만을 보고 베테랑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젊은 선수들은 그런 대회를 경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됨을 안타까워했다. “젊은 선수들도 대표팀에 들어와 국제무대에서 실패를 겪고 그 경험을 토대로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표팀을 꾸릴 때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지금도 실전에서 매일 실패하며 배워가고 있다면서 “대다수 후배들에겐 실패할 기회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고 쓴 소리를 토해냈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실패할 기회가 필요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 없고, 처음부터 완벽한 팀도 조직도 없다. 항상 과정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어떤 베테랑도 젊었을 때는 좌충우돌 부딪히고 깨져가면서 배우고 터득한 결과다. 나 역시도 지금이야 커뮤니케이션 일이라면 힘들 게 없지만,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거의 십 년 동안은 웬만한 기자들에게 전화 한번 하는 것도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겨우 A4지 절반 정도의 보도자료를 수도 없이 퇴짜를 맞아가며 고치고 또 고쳤던 것이 겨우 엊그제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은 키워드 몇 개만 있으면 반쯤 눈을 감고도 쓰게 됐다.

예전에 함께 지냈던 재무팀장이 참 독특했다. 재무회계 일을 해오면서 계산기를 얼마나 두드려댔는지 달인의 경지를 넘어선 듯 보였다. 가끔 빈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박자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적힌 서류를 볼 때 검산을 위해서 계산기 없이도 마치 계산기의 숫자를 두드리듯 빈 책상에 손가락을 두드리곤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없는 숫자도 보이는지 계산을 딱딱 맞췄다. 그런데 진짜 계산기를 두드리는 속도는 어마 어마해서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계산기 화면은 보지도 않고 숫자만 번개처럼 입력했는데, 처음과 두 번째가 일치하는 값이 나오면 검산이 끝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산이나 재무 숫자에 밝으셨나 봐요?”라는 물음에 “저는 국문학과 출신인데요”라는 기가 막힌 답변을 들었다. 어찌어찌 첫 직장에서 인사관련 일을 맡다가 결원 때문에 재무 쪽을 지원하다가 나중엔 재무통이 되어버렸다 했다. 그러면서 초기엔 선배들로부터 엄청나게 꾸중도 듣고 했지만, 어느 틈엔가 보니 자신이 꾸중하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이란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으로 쫓아갈 수도 없다고 했더니, 자기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경지에 있던 선배가 있었다며 손사레를 쳤다.

재무팀장이 말한 그 선배는 왼손에 계산기, 오른손에 계산기를 각각 놓고 가운데 서류의 숫자를 봐 가면서 양손으로 한꺼번에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양손으로 두드린 결과가 일치하면 그 서류는 보나마나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게 가능한 지가 의문인데, 없는 말을 일부러 지어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실패와 실수를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부터 앞선다.

픽사의 공동창업자인 에드윈 캣멀은 “제작 초기부터 완벽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가? 처음부터 참신하고 완벽한 아이디어를 기대하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는 공격 받아 처참하게 물어 뜯기기 십상이다.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겨울왕국’이나 ‘토이 스토리’ 같은 영화도 처음 아이디어 수준에서는 모든 것이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 빈약한 줄기에 살이 붙고 다듬어져서 나중에는 성공의 롤 모델이 되었다. 누구나 그런 것을 부러워는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구글X의 CEO이자 문샷 프로젝트의 수장인 아스트로 텔러는 “위험 요소가 많은 대형 프로젝트에 구성원을 참여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얼마든지 실패해도 좋은 환경을 먼저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프로젝트에 몇 년씩 질질 끌며 돈을 퍼붓느니 그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중단시킨 직원에게는 그만큼 보상을 해주는 편이 낫다”고 역설했다. 실패한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두둑한 보너스라니 듣기만 해도 참 기분 좋은 얘기다. 그는 다시 “진짜 실패는 뭔가를 시도해보고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이다. 때문에 실패에 실패하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난 ‘꼬시래기 제 살 뜯어 먹기’를 잘 못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말을 수도 없이 많이 사용해 왔지만,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꼬시래기라는 물고기는 멍청하기 그지 없어서, 배가 고프면 자기 살을 뜯어 먹어서라도 배를 채우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꼬시래기는 일명 망둥어로 알려진 물고기의 경상도 사투리다. 흔히 망둥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말 역시 경상도 사투리며, 사전에 나온 정확한 표기는 망둑어다.

 

다 쓴 배터리 갈 듯 高경험자들만 가려 뽑으면, 조직의 내일은 없어

망둑어는 망둑어 살로 미끼를 걸어도 덥석 걸려들곤 하기 때문에,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여 더 큰 손실을 자초하는 한심한 행동을 일컫는 말이었다. 앞뒤 못 가린다는 뜻이다. 망둑어는 공격력이 강하고 잡식성이기 때문에 여러 마리를 함께 어항에 넣어 놓으면 서로의 몸통을 뜯어 먹어 상처투성이 채로 돌아다닐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동종간의 지나친 경쟁이나 정쟁으로 시간과 힘을 허비하는 것을 두고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써왔던 것이다.

비유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기는 하루살이와도 같은 직장인들의 희생이었다. 이래저래 경험치가 쌓이고 주위에서 능력 좀 있다고 생각되면, 어느 정도까지는 이직이 가능하다. 그러면 새 직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 발버둥을 치게 되는데, 대부분이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왔던 것들을 빼먹는 일이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새로운 경영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기가 과거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네트워크를 활용하게 되는데 자의든 타의든 간에 하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될 경우가 많다.

실은 기업도 그런 것을 바라면서 그런 인물을 뽑게 되는데, 어떨 경우에는 경영진으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요구를 받을 때도 있다. 오로지 인정 받기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위에 적잖은 민폐를 끼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 다음부터는 주위에서 그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고, 그러면 위로부터의 인정도 퇴색된다. 한 마디로 약발이 다 떨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약발이 떨어진 사람은 견디지 못하게 되고, 수명 다 되어버린 배터리처럼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종종 봐왔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성공만을 염두에 두고 당근은 줄이고 채찍질만 늘이게 된다. 조직 전체가 성장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고, 가르쳐서 일 할만하면 냅다 튀어 버릴 수 있기에, 똘똘한 사람 하나 건져서 뽑아 먹을 때까지 뽑아 먹자는 심산이다. 사람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늘 이 사람 뽑아먹고 저 사람 우려먹기 바쁘다.

낙하산처럼 누가 하나 와서 이 일 저 일 진행하게 되니, 팀원들은 바뀌는 사람 눈치 보다 세월 다 간다. 먼저 온 사람 일 하는 스타일에 적응할만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 또 다시 적응 기간이 반복된다. 뭐 하나 제대로 진득하니 배우는 거 없이, 이 사람이 시킨 일, 저 사람이 하는 스타일 따라 이랬다 저랬다 반복이다. 그러니 늘 구성원들 능력은 미달이고, 시스템은 제자리 걸음이다. 그런 조직분위기에서는 일에 눈 뜨고 뭔가 좀 한다고 평가 받으면 좀 더 나은 대우 해준다는 곳으로 달려가기 바쁘다. 그 결과 ‘우리 조직엔 멍청이들 뿐’이라는 하소연이다.

“실수하는 것이 용납되고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한다면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실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레이 달리오는 그의 저서 ‘Principles 원칙’에서 말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실수에서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수용해야 한다. 사실 이성적으로는 누구나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원과 시간의 한계에 봉착해 있는 많은 조직들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때문에 실수 한번 하면 끝이라는 심정으로 배움이 필요 없는 사람들만 바란다.

올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남자 배구가 4년 뒤인 2024년 파리 올림픽에는 나갈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 높지 않아 보인다. 2023년 말쯤 아시아 예선 시기에 국내 프로배구에서 베테랑으로 뛰고 있을 선수들은 지금 각 팀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20대 초중반의 중진급들이다. 앞으로 3-4년 동안 얼마나 기량이 발전할 지 함부로 얘기하기 어렵지만, 플러스 알파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던 선수들 보다 중량감에서 많이 떨어진다. 아마도 그때 가면 또 똑 같은 얘기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실패에 실패하는 일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