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1차 합의를 기점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나, 미국 정부와 중국 기업 화웨이의 신경전은 여전히 벌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영국이 자국의 5G 장비 구축에 있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웨이 장비를 채용하기로 결정하는 등 충돌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다시 오래된 백도어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화웨이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고, 화웨이의 백도어를 통해 중국 정부가 기밀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미국이 말하는 ‘화웨이 백도어 설’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이 전방위적인 도감청을 통해 적국은 물론 동맹국의 기밀 정보를 무차별 수집했다는 폭로가 나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WSJ “화웨이 백도어 존재” vs 화웨이 “거짓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리를 인용, 화웨이가 백도어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확하게 말해 현지 당국의 법 집행을 위한 백도어를 화웨이가 활용해 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통신장비 공급사는 3GPP/ETSI 표준에 따른 합법적인 감청 인터페이스를 공급한다. 감청을 지원하기 때문에 백도어로 볼 수 있지만, 통신장비 공급사가 제공하는 감청 인터페이스는 말 그대로 통신사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법 집행당국만 이용할 수 있다. 즉 화웨이를 비롯한 모든 통신장비 공급사는 통신사에 장비를 제공하며 합법적인 틀 내에서 감청이 가능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이는 통신사의 허락을 전제로 법 집행기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WSJ의 주장은 다르다. WSJ는 화웨이가 통신사의 허락없이 망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지난 10년 간 활용했다고 보도했다. 감청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은 화웨이의 의무로 볼 수 있지만, 이를 화웨이가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화웨이 백도어 설’에 무게를 싣는 셈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지난해 말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동맹국에 알렸다.

WSJ가 지핀 백도어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화웨이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화웨이는 13일 입장문을 내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사이버 보안에 있어 수용 가능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는 연막에 불과하다”면서 “화웨이는 그 어떠한 통신 네트워크에도 은밀한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그러할 능력 또한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화웨이는 “일반적으로 법적 감청은 통신장비사가 아닌 이동통신사들의 소관”이라면서 “WSJ은 미국 정부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미국 주요 관료들이 퍼뜨리는 거짓된 정보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법적 감청 인터페이스의 실질적인 관리와 사용은 오직 통신사와 규제 당국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해당 국가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직원이 운영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한편 “화웨이는 통신장비 공급사로서 고객의 허가와 감독 없이 고객의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지어 WSJ도 미국 관료들이 백도어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미국은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화웨이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WSJ의 보도를 보면, 미국 정부는 화웨이 백도어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화웨이가 어디서 망에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누가 악당인가?

미국은 중국의 기술굴기 선봉장인 화웨이를 상대로 지속적인 압박을 거듭하고 있으며, 화웨이 백도어 가능성을 지피는 방식으로 동맹국에도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하고 있으며, 화웨이 통신장비를 구축하는 순간 국가안보가 무너진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동맹국들이 속속 화웨이의 손을 잡고있는 장면이다. 이미 영국은 화웨이 5G 장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스위스와 포르투갈 등 많은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도 화웨이 장비 활용에 적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미국 정부가 WSJ 보도를 기점으로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일으켜, 일종의 분위기 반전에 나서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이 적국은 물론 동맹국의 기밀정보를 무차별 수집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했다며 비판하던 미국이, 오히려 스스로가 무차별 도감청을 통해 ‘빅브라더’로 행세하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WSP)는 12일 미 중앙정보국 CIA가 동맹국과 적국을 대상으로 무차별 정보를 수집했다고 폭로했다. 옛 서독 정보기관 BND와의 공조를 바탕으로 스위스의 암호회사 장비 크립토AG를 통해 각 국의 기밀을 빼냈다는 내용이다. 작명은 루비콘. 미국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적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적용됐으며, 아시아에서는 한국도 크립토AG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의 폭로로 무차별 도감청 시스템을 가동했다는 점이 알려져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여기에 작전명 루비콘을 통해 적국은 물론 동맹국의 기밀을 마구잡이로 수집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 백도어 논란을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업계의 의혹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