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동물 인간 2006-9, 2006, 한지에 수묵채색, 112x145.5cm/Nomadic Animals+Human 2006-9, 2006, ink and pigment on hanji, 112x145.5cm

<익명인간- 여로(旅路)>시리즈는 작가의 자의식이 중첩된 산수(반산수라 불리는 전통과 정체에 대한 자의식)를 중심화면에 앉히고 문명의 제 도구들인 전구, 와인따개, 전기드라이, 커피포트, 화분, 표지판(공사 중)등이 부각되어 있고 인간 및 동물의 부유가 화면 곳곳에 배치되면서, 거대한 코뿔소와 늙은 사슴의 형상이 화면의 한 면을 압도하고 있다.

부유하는 인간은 자의식의 중심인 산수를 배회하고 문명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체성을 여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언제나 공사 중인 현실의 반(反)산수는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이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역설을 상징화하고 있다.

문명에 대한 긍정과 비판, 전통에 대한 반발과 향수, 현실개선에 대한 욕망과 부유하는 익명성이 <익명인간- 여로(旅路)>시리즈를 통해 비유되고 있다. 현실의 문명은 인간이 감당하기를 넘어서는 과도한 과잉과 착종으로 귀결되고 급기야 문명의 파괴와 본성의 상실은 비가역적으로 전개되어 종국을 향해 달려간다.

물신숭배와 고향상실, 생태파괴의 현장에는 문명에 포획된 자연의 거대한 울음, 이주하는 유목동물이 자리한다. 현실에서는 대면하지 못했던 유목동물들은 그러나 티브이 매체 속에서 늘상 쫓겨 다니거나 그린피스 활동과 함께 생태고발 뉴스에 보도되고 오염물질로 떼죽음을 당한다.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은 인간조건의 근원을 위협하는 문명의 파괴적인 양상을 주목하고 문명과 인간탐구의 영역에서 동물을 부가(자연)하였다.

문명과 부유하는 인간 연작위에 실루엣의 점묘로 대담하게 처리한 동물이미지는 문명의 온갖 단서와 익명인간이 오버랩되면서 파편화되고 비순환적인 현실을 강렬한 색채로 부각시킨다. 문명의 월권과 그 파괴적 양상은 조화상실의 디스토피아적 상상과 함께 인간형상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고 있으며 주체적 관계상실을 동물과 문명의 제반이기를 부각시킴으로서 표현했다.

△류철하(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