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89세인 워런 버핏은 1970년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버크셔 헤서웨이를 이끌고 있다.    출처= Flick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 여성 의류업체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의 82세 억만장자인 레슬리 웩스너 CEO가 늘 말해온 것처럼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그것은 소매업계에서만의 빅 뉴스가 아니라 S&P 500 기업 최장수 CEO가 임기를 마치는 재계 전체의 뉴스가 될 것이다.

그 다음 장수 CEO는 워렌 버핏일 것이다. 그가 버크셔 헤서웨이의 CEO로 일한 지도 거의 반세기가 되어가니까.

웩스너는 자신이 설립한 소매 대기업 엘 브랜드(L Brands Inc)의 CEO로 57년 동안 재직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주, 이 회사가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웩스너가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과 아예 회사 자체를 매각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89세의 버핏은 1970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다.

CEO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무는 것은 재계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외환위기 이후 S&P 500 회사의 CEO 재위 기간이 길어졌고, 최근엔 일부 기술기업 창업자들이 무기한으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의결권을 갖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 십년 동안 CEO자리를유지하는 임원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리더십 자문 및 임원 채용 회사 스펜서 스튜어트(Spencer Stuart)의 북미 CEO 훈련과정 책임자인 제임스 씨트린은 “CEO들의 장기 재직이 회사에 더 유리하다고 보는 기업 이사회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 재위 기간에 대한 생각들이 이제 변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민간 경제조사기관 컨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의 마테오 토넬로 전무는 "지난 10년간 S&P 500 기업 CEO의 임기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2018년 현재, S&P 500 기업 CEO들의 평균 임기는 10.2년으로 2009년의 평균 재임 기간인 7.2년보다 3년이나 길어졌다. 그러나 CEO 재임 기간 통계는 해마다, 그리고 분석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증시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안정적인 경제 상황에서 대부분의 기업 이사회는, 기업이 확실한 성과를 내고 있다면 경영진의 변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펜서 스튜어트는 새 연구에서, 최고경영자들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머물러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시사했다. 스펜서 스튜어트는 지난해 말 하버드 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약 750명의 S&P 500 기업 CEO들의 재임 기간 동안 재무 실적을 매년 분석하고 수 십 명의 리더들과 인터뷰한 결과, CEO들이 최고의 가치를 창출하는 시기가 재위 11년에서 15년 사이였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이 기간을 CEO 재위 ‘황금기’라고 설명하고, 리더들은 이 기간 중에 회사 업무 지식 (institutional knowledge)이 최고조에 달하고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회사를 이끄는 풍부한 경험을 쌓게 됨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씨트린은 여러 기업 이사회에 이 연구 결과를 소개했는데 "대부분의 회사에서 CEO가 장기 재직할수록 좋은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 2004년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가 웩스너 만큼 오래 회사를 이끈다면 그는 2061년에도 76세의 나이로 이 회사의 CEO일 것이다.    출처= Flickr

기업 CEO가 자신의 자리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는 (창업자일 경우) CEO가 가지고 회사 주식 지분을 포함한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창업자들은 대주주로서의 지분과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특별한 의결권을 부여함으로써 장기간 재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기술 회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페이스북, 스냅, 리프트 같은 회사들의 CEO들이 그런 슈퍼 의결권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장악하려는 노력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대 차량호출업체 우버는 지난 2017년, 회사 문화와 관련한 스캔들로 공동 창업자이자 CEO였던 트래비스 칼라닉을 교체했다. 사무실 공유회사 위워크의 아담 노이만은 지난해 거액의 손실과 경영 스타일에서 보인 갈등으로 컴퍼니(We Co.)의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우버의 경우, 나중에 원상태로 되돌리긴 했지만 두 설립자 모두 회사 내에 슈퍼 의결권 구조를 구축했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은 종종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10년 동안 의료기기 회사 메드트로닉(Medtronic PLC)의 CEO였으며 현재 하버드 경영대학원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빌 조지는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오랜 기간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조지 연구원은 10년이 CEO들에게는 ‘마법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즉, 안주하지 않고 회사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기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기간이 지나면 회사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올 수 있는 리더를 찾는다.

"첨단기술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오늘날의 기업은 10년마다 새로운 CEO가 필요하지요. 많은 창업자들이 자신의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지 연구원은, 더 오래 동안 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영자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S&P 500 기업 중,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Nvidia), 게임 회사 액티비젼 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 세계 최대 크루즈 회사인 로열 캐리비안 크루즈(Royal Caribbean Cruises)의 CEO들을 포함해 약 15명의 CEO들이 25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

오늘날의 많은 대기업 CEO들이 장수하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많은 CEO들이 떠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수 CEO들이 물러나면 이사회는 내부에서 후계자를 계승시키기도 하고 아니면 외부에서 새 인물을 발탁하기도 한다. 컨퍼런스 보드의 토넬로 전무는 "어쨌든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CEO들이 떠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기업들이 새로운 장수 CEO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도 관심 거리다. 2004년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가 웩스너 만큼 오래 회사를 이끈다면 그는 2061년에도 76세의 나이로 이 회사의 CEO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