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대영 기자] 불확실성에 기반한 위기가 시작된다면, 기업은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할까? 역량을 집중해 더욱 강력한 동력을 창출하는 ‘정면돌파’를 택하거나,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현상유지’를 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정면돌파와 현상유지를 모두 택해 흥미롭다. 연속적인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 조직구성을 탄탄하게 유지하면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파격과 안정의 중심추를 잡고 ‘조용한 돌진’을 택했다.

불확실성을 위한 무대는 충분히 만들어 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일본 소재 수출 규제부터 미중 무역전쟁, 이재용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 이사회 의장 법정 구속까지 악재의 연속에 시달렸다. 그러한 악재는 해가 바뀌어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삼성전자 연결 실적은 매출 230조4000억원, 영업이익 27조7685억원, 순이익 21조738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5%, 52.8%, 51.0% 줄어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

삼성전자가 지난 1월 말 뒤늦게 정기인사를 전격 발표한 이유다. 삼성전자는 DS(디바이스솔루션), CE(소비자가전), IM(IT·모바일) 부문장 및 대표이사를 그대로 유지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안정’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하지만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최상층부에서 세대교체를 위한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K·Y·S’ 퇴진… 3K도 ‘황혼기’


삼성전자는 지난 1월 보직 변경을 통해 권오현 종합기술원 회장, 윤부근 CR 담당 부회장, 신종균 인재개발담당 부회장이 공식적인 직책을 내려놓고 ‘고문’으로 남는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핵심 부문장에 이어 대표이사를 역임한 위치한 권 회장(K), 윤 부회장(Y), 신 부회장(S)은 사실상 퇴진하게 됐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예상한 바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 ‘3K’로 통칭되는 김기남 부회장, 김현석 사장, 고동진 사장이 삼성전자의 핵심 부문인 DS, CE, IM 부문장이자 대표이사까지 계속 겸임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특히 김기남 부회장은 그간 삼성전자의 인사 원칙으로 알려진 ‘60세 룰’도 깨트렸다. 3K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현상유지’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삼성전자 3K 체제로 집중된 힘의 분산이다. 승진 임원 인사를 통해 차기 CEO 후보군을 선발하는 한편, 3K 대표이사의 겸임 직책 일부를 떼어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정면돌파’가 되어 ‘조용한 돌진’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여명’, CEO 후보군 선발


▲ 삼성전자 주요임원 조직도

삼성전자는 올해 임원 인사를 통해 차기 CEO에 오를 후보를 대거 발탁했다. 이러한 CEO 후보들은 이후 성과와 검증을 토대로 삼성전자의 CEO로 성장을 가늠하게 된다.

IM 부문에서는 ‘휴대폰 장인’이라 불리는 노태문 사장이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맡는다. 올해 52세인 노태문 사장은 휴대폰 영역에서 20년 이상 몸담은 베테랑으로 지난해 갤럭시 언팩에서는 고동진 사장(IM 부문장)이 발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태문 사장은 차기 IM 부문장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3K 체제의 고동진 사장과 합을 맞추며 조금씩 자기의 영역을 확장할 전망이다.

CE 부문에서는 이재승 부사장이 생활가전사업부장 자리에 올랐다. 이재승 부사장은 삼성 냉장고를 7년 연속 1위에 올린 주역 중 하나다. 이와 함께 TV 분야에서는 최용훈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LED개발그룹장이 부사장으로, 용석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TV개발그룹장이 전무로 각각 승진했다. 삼성전자가 그간 강조한 ‘성과주의’가 반영된 결과며, 역시 차세대 리더를 키우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DS 부문은 가시적인 세대교체 구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신 삼성전자는 DS 부문에서 가장 많은 임원 승진자를 배출했다. DS 부문 부사장 승진자만 6명으로 삼성전자 전체 승진자 대비 절반에 육박했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김기남 부회장 아래 진교영 메모리 사업부 사장, 강인엽 시스템LSI 사업부 사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 박학규 DS부문 경영지원실장 신임 사장 등이 포진했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분야에서 김기남 부회장의 ‘연구개발 업무’를 떼어내는 선에서 힘의 집중을 그대로 유지하고, 후진에 다양한 미래 리더들을 포진해 비즈니스 본능을 키우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정현호 사업지원TF 사장, 최윤호 경영지원실 신임 사장, 이인용 CR 담당 사장, 황성우 종합기술원장 신임 사장, 김상균 법무실장 사장 등 경영 지원부서와 함께 3개 핵심 사업 부문에서 각 부문장을 제외한 7명의 사장을 포진시킨 상태다.


서서히 세대교체… ‘안정화’ 방점


삼성전자의 인사는 ‘대외적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대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초부터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글로벌 경제에 악재가 시작됐고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수요 감소에 큰 영향을 끼친 미중 무역전쟁은 다행히 완화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점화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까지 진행되고 있어 내부의 경고등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단 급격한 조직개편으로 인한 내부적인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서히 변화하는 조직개편으로 안정화를 꾀했다. 3대 핵심 부문에서 커지는 불확실성에 상충하는 대응을 찾는 한편, 성과주의 승진 인사로 내부 결속도 강화했다. 또 올해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과 별개로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해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전반적인 윤리 경영 혁신도 제고하는 카드를 꺼냈다.

여기에 미래 리더들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다음’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투트랙 전략을 가동하는 셈이다. 여기에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도전, 그리고 위기의식을 동력으로 삼아 올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