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동물+인간-문명 3부작 2006-15, 2006, 한지에 수묵채색, 162×139cm/Nomadic Animals+Human-Civilization Trilogy 2006-15, 2006, ink and pigment on hanji, 162×130cm

<익명인간>시리즈는 바로 인간의 인식에 대한 부정이다. 허진이 인간의 욕망을 통한 인식을 부정하고,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유목동물로서의 입장을 지닌 인간상이다. 문명의 탈을 쓴 욕망의 역사를 서술하기 이전의 인간상을 회복하자는 것이며, 인간 역시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원리에 입각하여 살아가자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에게는 인간관계라는 질서가 부여되며, 이러한 인위적 질서체계가 인간에게 죽음 혹은 죽음의 세계관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익명인간-생태순환도>로 대변되는 그의 세계관은 다분히 문명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기실 그의 이러한 문명비판적인 생각은 노자와 장자의 자연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노자는 만물 존재의 원리로서의 ‘도’와 그의 작용으로써 ‘덕’의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만물가치의 척도로서 ‘도덕’의 회복을 주창한다.

허진의 회화에서 그가 그리는 궁극의 세계는 자연으로 회귀한 인간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부귀나 비천의 가치를 잊고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갈등이 사라진 사회, 모순이 극복된 사회가 곧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이 유목동물, 유목인간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이상이고 노자의 ‘자연’이 구현된 사회이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이라는 가치의 보편적 의의는 군주와 백성의 관계 속에서 외부적인 통치자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자연’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되면, 백성들은 모두 내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고 여긴다.(功成事遂, 百姓皆 謂我自然)”《노자-17장》

△김백균(중앙대 한국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