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목동물+인간-문명 2007-22, 2007, 한지에 수묵채색, 130×162cm/Nomadic Animals+Human-Civilization 2007-22, 2007, ink and pigment on hanji, 130×162cm

허진 회화에서 어떤 시각적인 재현을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의 내용과 이야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제시하면서 어떤 일관된 이야기나 담론을 박탈하고 대상의 의미를 고립시켜 의미론적으로 반재현적인 낯설음을 창출하는 것은 허진 회화의 중요한 전략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가 불러일으키는 즐거움은 친숙한 사실성에서 오는 발견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맥락을 벗어나는 데서 오는‘일탈과 부정의 즐거움’이다. 이러한 일탈과 부정의 즐거움은 그것을 평면에 배치시키는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조형언어는 고전적 리얼리즘에서처럼 3차원적 원근법이나 모더니즘 회화에서 보이는 평면성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입체파적인 다시점도 보이지 않는다.

▲ 유목동물+인간 2007-25(정림사지5층석탑2), 2007, 한지에 수묵채색, 162×122cm/ Nomadic Animals+Human 2007-25(Five-story stone pagoda of Jeongrimsa temple site2), 2007, ink and pigment on hanji, 162×122cm

그는 대상의 크기와 위치가 시각적 맥락과 상관없이 마법사가 마술을 부리듯이 대상을 변형시켜 배치한다. 이러한 구성은 시각적 질서가 아니라 마음의 의한 마음의 질서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표현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자신의 주관적인 내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화면의 구성방식에서 일상적 사물을 통해서 일상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마그리트식의 데페이즈망에 가깝지만, 초현실주의에서처럼 막연한 무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인 아우라가 붓 터치를 통해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의(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 회화는 양식적으로 무의식에 의존하는 초현실주의와 신체성에 의존하는 표현주의의 틈새에서 자신의 조형언어를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최광진(미술평론가, 理美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