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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수수께기 같은 대화, 꼰대의 특권인가?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 압니다!’

이 말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에 족히 반년은 넘게 걸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안면이 있는 정도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그것이 아니었다. 겨우 안면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정도면, 잘 아시네요?”라고 물었더니, 여전히 대답은 ‘조금 안다’는 것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나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나에 대해서는 많이 안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조금밖에 모르다니 하는 궁금증이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거의 육 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그 뜻을 알게 됐다. ‘알긴 아는데,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만난 기간이 얼마나 오랜 동안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래 만나지 않았어도 서로 통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면 ‘좀 많이 안다’는 표현을 하고, 신뢰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안다’로 구분했던 것이다.

대체 ‘많이 안다’는 것과 ‘조금 안다’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 아직도 구분이 모호하기는 하다. 대충 감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진 1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대화를 통해서야 그 정도의 차이를 겨우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지인과 대화를 할 때는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다. 함부로 맞장구를 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를 한참을 하고 나서도 무슨 얘기를 했는지 대화의 결론이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고, 한참을 곱씹어 봐도 무슨 내용인지가 헷갈린다. 오늘 한 대화의 내용은 다음에 만났을 때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더 해봐야 그 진의를 대충 파악할 수가 있다.

‘엔드 게임’이 빚어낸 대 혼돈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때 너무 혼돈에 빠졌다. 함께 본 아들도 ‘대체 다음 편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가 되어야 하는 거야’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 이유는 당시 극장 상영 중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어벤져스 군단의 한 인물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저가 스러져가며 던진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We are in the endgame now.” 극장 자막에서는 ‘이제 우린 가망이 없어’라는 말로 번역이 되었다. 우주 최고의 악당 중의 한명인 타노스에 더 이상 대적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당연히 그걸로 끝인데,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나 하는 기우였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어벤져스 군단의 대장 격인 닉 퓨리가 산화되면서 미처 끝을 내지 못한 한 마디가 있었다. “Mother f~…” 그런데 자막에는 ‘아, 어머니..!’라는 말로 둔갑해, 갑자기 어벤져스 대장을 효자로 만들어 버렸다. DC진영에서 비 오는 날 슈퍼맨과 배트맨이 허벌나게 싸우다가 ‘마사’라는 같은 엄마 이름이 나오면서 갑자기 화해를 해서 힘을 합쳐 싸우게 되는 어이없는 장면은 번역이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 전개의 개연성 부족이라 하겠지만, 엔드게임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사실 엔드게임이라는 말은 어벤져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영화의 제목으로 등장할 정도로 의미 심장한 말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저의 예지력으로 수없이 많은 케이스의 시도를 미리 보고 난 결과, 단 하나의 성공 케이스 대로 진행해 나가며 그가 먼지가 되어 스러지기 전에 던지는 마지막 그렇지만 조용한 절규가 그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인터넷은 뜨거워졌고, 소위 영어에 통달했다는 한국인 네이티브 스피커들의 제대로 된 해석이 여기 저기서 올라왔다. 결론은 ‘가망이 없어’가 아닌 ‘(계획대로 되고 있고, 이제 최종 단계에 진입해서) 막바지야!’ 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닉 퓨리의 단발마적인 말은 내가 봐도 ‘제기랄’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았다.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그때 그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도 달라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은 ‘게임 체인저 (Game Changer)’라는 말이다. 사전적인 의미는 기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정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바꿔버리는 것을 말한다.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같이 기존 시장의 질서를 뒤흔들어서 전체적인 게임의 판도를 자신에게 맞게 바꿔버린다는 것인데, 말처럼 그게 쉽지 않다.

너무나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해석하는 사람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기 십상이다. 연말 연초에 국내 대형 유통기업에서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조직의 슬림화와 동시에 본사의 스태프 지원 인력들을 현장으로 전진 배치하는 내용도 담겨있었기에, 그 내용을 본 사람들은 당연히 ‘본부에서 근무하다 현장으로 내 몰린’ 좌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사부로 모시는 선배님과의 신년 모임에서 들었던 얘기다. 아마도 유통 쪽에 꽤 인사이트가 있는 고참 기자인 모양인데, 이번 인사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물어왔다고 한다. 그 물음의 첫 머리는 ‘이 정도면 구조조정에 좌천이 아닐까요?’ 하지만 선배의 대답은 결이 달랐다. “기업은 어떻게 하든지 생산 효율성 제고를 지향하고 있고, 그 기업이 그 바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되고 싶다고 밝힌 만큼 그에 맞도록 체질을 바꿔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 또는 기존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기존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내거나 지출을 줄이거나 하는 삼박자가 곧 기업 생산성 향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 연장 선상에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했다. 선배가 해준 말을 새롭게 받아들였는지, 아마 그 기자는 ‘게임 체인저’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사를 준비할 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해석의 차이는 분명 있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던지는 화두나 메시지, 정치인들이나 국내 시장에서 업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 기업들이 던지는 말을 놓고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어떤 한 가지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서로 물고 물리는 복잡한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단정적으로 던진 얘기가 아니기에 분석이라는 것을 하고 서로가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고자 노력한다.

좋아도 깜찍, 싫어도 깜찍,,,, 이런 깜찍한 꼰대 같으니

그런데 어느 조직에서건 나름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의견을 분명히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말을 할 때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법이 없다. 때문에 이를 두고 꼰대 의식의 발로라고 치부되는 일이 많다.

언젠가 모셨던 부사장 중에서 ‘깜찍한’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누가 얘기하면 ‘아이디어가 참 깜찍하군!’이라며 평가를 했고, 신입사원이 뭔 일을 저질렀을 때도 ‘참 깜찍한 짓을 했구나!’라는 말부터 했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다 보니 깜찍하다는 표현이 아주 긍정적인 사안부터 극도로 부정적인 사안까지 거의 모든 상황에서 다 사용이 되어 여러 사람 힘들게 했다.

그 부사장과 회의라도 하고 나면, 여러 팀장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부사장님이 웃으시면서, 깜찍한 의견이군 잘 해보라고 하신 거지?”라고 받아들인 팀장들이 있는가 하면, “부사장님이 어이없어 하시면서, 그런 깜찍한 의견 말고 좀 더 잘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박하는 그룹도 있었다. 결론은 그 부사장과 가장 오래 지낸 고참 팀장의 생각을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그 고참 팀장마저도 “나도 진위 파악이 잘 안 되는데”라며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나도 그때 어떤 생각에서 그렇게 얘기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라고 본인이 실토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그런 회의는 하나마나했고, 늘 소모적인 자잘한 분쟁만 뒤따랐다.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몸 값 비싼 팀장들과 임원들이 모여서 수수께끼 장난이나 하는 소모전을 펼치고 있다니’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일본말을 사용해서 거북하기는 하지만, 흔히들 사회생활에서 윗사람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되고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를 많이 들었다. 겉으로는 ‘하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그의 속마음은 ‘하지 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혼네는 ‘본의 (本意)’의 일본식 발음으로 말 그대로 개인의 본심(本心)을 가리킨다. 이에 반해 다테마에는 ‘건전 (建前)’의 일본식 표기로 사회적인 규범에 의거한 의견을 말한다.

흔히들 내게 충고하는 선배들의 말을 빌자면 다테마에는 겉 마음이요, 혼네는 본심을 말한다고 한다. 공식 회의 석상에서는 사회적 트렌드나 회사의 방침에 따라 ‘하자’고 말을 하더라도, 그의 본심은 ‘하지 말자’는 말이니, 회의 중 언급한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시행하면 낭패를 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행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직적 고민에 휩싸이기 마련인데, 나는 본심이야 어떻든 간에 조직의 리더가 입 밖으로 내어서 한 말은 그대로 시행을 해야 조직적 신뢰가 유지가 된다는 입장이었고, 선배들은 ‘그러다간 너만 다치게 돼’라며 몸을 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그런 회의를 왜 했습니까?” 회의에 참석한 선배들을 향해 불만 섞인 반문을 던지면 “그건, 아랫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하고 간을 보려던 것”으로 치부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정작 회의 결과에 따른 뭔가에 대한 이행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사장이나 경영진 입장에 있는 지인들은 가끔씩 내게 “오너는 때때로 말을 바꾸기도 하고 속마음을 숨겨야 할 때도 있어”라고 얘기를 한다. 아직 내가 경영자 입장에 서 보질 못했기에 어슴푸레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짐작될 뿐이다. 하지만 합의에 의해 결정하고 이행한다는 기본적인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건 조직이 아니라 그저 그런 패거리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20.01.27  12: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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