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협상에 공식적으로 합의하며 글로벌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잦아드는 분위기다. 2018년 7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폭탄을 투하하며 벌어진 두 수퍼파워의 신경전이 표면적으로 일단락되고 있다.

두 나라가 1단계 무역합의를 통해 간신히 접점을 찾아가고 있으나 불씨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특히 양측의 약속 이행 여부와 화웨이로 대표되는 기술 ICT 영역의 충돌을 비롯해 홍콩 및 티베트 인권문제,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 등이 향후 협상 과정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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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는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1단계 무역합의에 공식 서명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양측이 도출한 합의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이 미국산 농수산품을 767억달러, 1233억달러 규모로 나눠 구매하고 지식재산권 보호에 나서는 한편 금융 시장 개방 확대에 나서면서 환율 조작 가능성을 봉쇄하고, 미국은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었던 중국산 제품 1600억달러에 대한 관세를 유예한다. 또 다른 규모의 1200억달러 관세 부과는 기존 15%에서 7.5%로 낮추는 것이 합의문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획기적인 결과”라면서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허 부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친서를 대독하며 “양국이 대화를 통해 차이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소식이 알려지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15일 마감 기준 다우존스종합지수는 전날보다 90.55포인트(0.31%)나 뛰어 2만9030.22로 치솟았고 S&P(스탠다드앤푸어스) 500 지수는 6.14포인트(0.19%) 상승한 3289.29로 장을 마감했다.

글로벌 경제계도 환호하고 있다. 특히 미중 두 수퍼파워의 격돌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던 것을 고려하면 ‘합의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두 나라의 격돌은 2018년 3월 23일 미국이 중국을 향해 연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벌어졌다. 무려 1333개의 중국산 수입품이 고율관세의 대상이 됐다. 중국도 맞불을 놨다. 즉각 500억달러의 미국산 수입품에 25%의 관세 부과 방침을 선언하며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타전이 벌어졌다. 치열한 난타전이다. 미국은 2018년 7월 예정했던 고율 관세폭탄을 던졌고 중국은 즉각 미국산 제품 545개를 대상으로 맞불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WTO에 미국을 제소했으며, 미국은 재차 7월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관세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9월 시행됐으며, 중국도 즉시 동일한 액수의 미국산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2018년 12월 G20을 계기로 두 나라 정상이 만나며 사태는 진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CFO를 체포하며 두 슈퍼파워 사이에 아슬아슬한 ‘유리공 던지기’는 파국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화웨이와 ZTE 장비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해 3월 헌법을 개정하며 시진핑 사상을 명기하는 한편, 사실상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 추인하며 두 나라의 대립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러자 미 국방부는 지난해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를 통해 대만을 미국이 수행하는 임무에 기여하는 국가(country)라고 명시하며 판을 키웠고, 두 나라의 신경전은 희토류 전략 무기화부터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까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변곡점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열린 워싱턴 실무회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기 시작하는 한편,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기술 제제를 유지하면서도 합의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를 중국도 일정정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지금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셈이다.

4개의 불씨

미국과 중국은 1단계 무역합의를 마친 후 바로 2단계 협상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 모두 “즉각 2단계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두 나라가 극적인 합의점을 찾고 있으나 아직 불씨는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먼저 약속 이행 여부다.

미국은 1단계 무역합의 직전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전격 해제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을 지정한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만이다. 중국도 환영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원래부터 환율조작국이 아니었다”면서 “위안화 환율을 앞으로도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수준에서 기본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화해무드 속에서 도출된 두 나라의 ‘동상이몽’ 가능성이다. 1단계 합의를 기점으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향한 압박에는 한 발 물러설 가능성이 높지만, 이후 약속 이행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상대방의 약속 이행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언제든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해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중국의) 합의 준수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일말의 여지를 남긴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도 1단계 무역합의 직전 중국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협상이 어려워 질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두 나라가 명확한 절차에 따라 상대방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약속을 이행해야 2단계 협상도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관세 부과 유예나 농수산물 구입 등은 정해진 액수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정확한 약속 이행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관건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장 적용 범위 및 실제 적용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두 나라의 아슬아슬한 유리공 던지기 게임은 여전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두 나라의 약속 이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브래드 세서 미국외교협회 국제경제학 선임 연구원은 "1단계 합의는, 중국이 구조적인 이슈와 관해 크게 반응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식하에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가 미중이 어떻게 조건을 이행하고 어떻게 긴장을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진핑 주석이 협정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미묘한 구석이 많다는 말도 나온다.

화웨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중국과 1단계 무역합의 초안을 끌어내면서도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화웨이가 중국의 백도어 창구라는 적나라한 비판은 자제하면서도 중국 기술굴기의 중심인 화웨이의 예봉을 꺾겠다는 의지는 그대로다. 최근에는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하는 것을 넘어 자국 기술이 지원되는 화웨이 상품이 제 3국에 팔리는 것을 막거나, 화웨이 기술이 들어간 상품을 아예 자국에서 유통되지 못하도록 하는 수준의 강력한 제재도 준비하고 있다.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블랙리스트(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조치를 더욱 강화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화웨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자국의 5G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도 발견된다. 5G 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미국 업체에 최소 7억5000만달러를 지원하고 5억달러 규모의 지원 펀드를 별도로 조성하도록 하는 법안이 미 하원에서 논의되는 중이다.

화웨이는 일단 여유만만이다. 5G 기술력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며 유럽, 특히 영국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강력한 ICT 생태계를 창출하고 있다. 여기에 화웨이와의 거래가 끊긴 미국 기업들도 당국에 거래 재개 요청을 할 정도로, 상황은 화웨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2단계 논의 과정에서 화웨이 문제 해결을 일종의 협상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홍콩 및 티베트, 대만 등 중화권을 강타하는 인권 문제도 2단계 무역협상의 불씨다. 현재 홍콩은 지난해부터 반중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티베트에서는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이어 티베트에서도 민족단결 조례를 제정하는 등 문제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인권 문제를 두고 미중 두 나라의 신경전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만의 경우 반중파인 차이잉원 총통이 재집권에 성공하며 양안관계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감한 인권문제가 제기되어 두 나라의 ‘경제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미국이 중국의 인권탄압을 협상 카드로 삼는다면 중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마지막 불씨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안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으나 소위 우크라이나 게이트로 탄핵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금주 내 미 상원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워싱턴 정가에서는 공화당이 장악한 미 상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나 탄핵안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흔드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정무적인 논란이 발생할 경우 2단계 협상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