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신약 개발에 성공한 기업이 나타나는 등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2020년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연구를 하고 있다. 출처=SK바이오팜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2015년도 이전까지 바이오의약품 복제약(바이오시밀러) 기업을 제외하고 대다수 한국 제약기업은 도입품목 및 화학합성의약품 복제약(제네릭)을 활용한 내수 위주의 사업을 전개했다. 한미약품이 최초로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에 성공하면서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는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발을 내딛었다. 글로벌 혁신신약 개발의 시대가 온 것이다. 유한양행과 JW중외제약 등 제약사의 꾸준한 신약 후보물질 기술이전에 더해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알테오젠 등 바이오텍도 대규모 기술이전을 성사시켰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해 기술이전 모델이 한국 바이오 업계가 더욱 성장하기 위한 발판 중 하나라는 평이 많지만 단독으로 글로벌 임상을 이끌고 간 바이오텍도 있었다. 다수의 바이오텍이 글로벌 임상 3상에 실패하면서 독배를 마셨지만 이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새롭게 임상을 디자인해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는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음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전제조건?

제약바이오 기업의 임상 실패에 대해 업계의 시선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하는 것은 혁신신약 개발 성공성이 낮으므로 실패는 성장통처럼 당연하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 절차는 우선 시초탐색 및 원천기술 연구, 후보물질 선정, 전임상(동물) 시험, 임상 1상‧2상‧3상을 거친 후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신약 개발을 위해서 기간은 평균 15년, 비용은 1조원에서 2조원이 필요하다.

▲ 미국 FDA 임상 단계별 성공률과 신약개발 성공률(단위 %). 출처=미국바이오협회

미국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단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미국 식품의약품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규제 당국으로부터 의약품 품목허가를 받을 때까지의 성공률은 약 9.6%다. 화이자, 베링거인겔하임, 로슈 등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연간 약 1조원을 투자하는 글로벌 제약사도 의약품 개발에 무조건 성공할 수 없는 점이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 실패가 당연시 되는 것은 안 되겠지만 인식이 바뀔 필요는 있다.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임상이나 FDA 품목허가가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과도하게 작용하고 있다”면서 “한국 제약바이오 업계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신약개발을 시작한지 5년여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해 몇몇 기업이 경험한 실패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나아가며 겪을 수 있는 성장통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시선은 신약 개발이 어려움에도 성공하는 기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뇌전증 치료용 혁신신약 ‘엑스코프리’를 단독으로 개발해 FDA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엑스코프리는 SK바이오팜이 2001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신약 후보물질 탐색, 전임상 등에만 6년을 소요했다. 이 기업은 2007년 임상시험계획신청(IND) 승인을 받고 2008년 임상 1상, 2015년 임상 2상을 완료했다. SK바이오팜은 2018년 임상 3상을 완료한 후 임상결과를 정리해 신약품목허가신청(NDA)을 냈다. 허가는 2019년 11월에 이뤄졌다. 개발 시작부터 판매허가까지 19년이 걸린 셈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발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지만 기업은 이를 해내는 것이 할 일이다”면서 “실패는 실패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실패냐 성장통이냐… 앞으로가 중요

2019년 품목허가 취소 통보와 임상 실패의 쓴맛을 본 기업들은 해당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의약품)의 재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에 대해 식약처로부터 품목허가 취소 조치를 받았다. 인보사는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한국 등 아시아권에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의 지역은 코오롱티슈진이 판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출시된 지역은 없다.

코오롱티슈진은 미국 임상 3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미국에서 임상이 재개된다면 성분 논란 등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FDA는 안전성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부작용이 있으면 어떤 기전에 따라 있는 것인지, 없다면 어떤 기전이므로 없는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데이터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헬릭스미스는 혈관신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통증성 당뇨병성 신경병증(DPN) 임상 3-2상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 기업은 앞서 DPN에 대한 환자 433명 대상 임상 3-1a상에서 약물혼용이 추정되는 사태가 벌어져 품목허가를 위한 데이터 확보에 실패했다. 헬릭스미스는 별도 임상시험인 3-1b상에서 엔젠시스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했다면서 해당 데이터를 토대로 3-2상을 진행할 방침이다. 최근 사장 자리에서 내려온 헬릭스미스 김선영 대표는 “그간 다양한 업무에 관여해 나의 역량이 희석됐다”면서 “회사의 존망이 달려 있는 임상시험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 임상단계별 대상자 수 및 주요 목적. 출처=한국임상시험포털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을 개발 중인 비보존은 임상 디자인에 실패해 임상 3a상에서 품목허가를 위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다. 비보존 이두현 대표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임상 3b상을 신속하게 진행해 통증강도 1차지표에서 확증적 결과를 얻어내겠다”고 밝혔다.

품목허가를 위한 데이터 확보에 실패한 기업이라도 앞으로 진행할 임상의 디자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재임상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주목되는 이유다. 다른 업계 전문가는 “어찌됐든 데이터는 쌓인다.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일부 기업이 임상 결과 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를 내보인 점이 아쉽다. 대외에 공개할 땐 냉정하게 데이터만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