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인간-동물의 왕국1, 1999, 한지에 수묵채색, 122×161cm/Aonnymous Human-Animal Kingdom1, 1999, ink and pigment on hanji, 122×161cm

허진의 회화를 현실에 관한 비판적 담론의 기능으로 간주하려는 시도는 지나치게 소재주의적 발상으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물론, 허진이 권력과 부의 망상에 미쳐버린 동시대에 눈쌀을 찌푸리는 쪽이긴 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그물망에 걸린 모든 물상들을 적어도 한번 씩은 자신의 화폭에 담으려고 작정한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허진의 사물들이 지니는 속성만큼이나 그것들을 다루고 배치시키는, 맥락화의 방식이 비중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익명인간-현대십장생도>는 그 좋은 예일텐데, 여기서는 개와 변기, 플라스틱 폐용기와 분무기가 장생의 상징들을 대신하고 있다.

영속의 오래된 염원이 덧없는 일상의 소모품들로 대체된 것이랄까. 흥망을 거듭해 온 인간의 역사가 <동물의 왕국>과 차별 없이 중첩되는 것도 같은 문맥이다. 점점 더 실루엣일 뿐인, 즉 윤곽으로만 허락되는 허진의 인간들은 걷거나 뛰면서 익명의 어딘가를 지향하지만, 그들의 자세는 하나 같이 어정쩡하고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다.

▲ 익명인간-복날+야간비행, 1999, 한지에 수묵채색, 176×122cm/Aonnymous Human-The Dog’s Day of Summer+Night Flying, 1999, ink and pigment on hanji, 176×122cm

작가는 여전히 일상과 현재로부터의 탈출을 발화하는가? 아니면, 더러운 플라스틱 용기들로 뒤덮여가는 지상으로부터의 비상을? 그러나, 탈출과 비상의 주체일 인간의 도상학은 날렵한 대신 차라리 비둔해 보이며, <질주>의 경우에도 동작은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다. 실루엣은 강조된 윤곽으로 확연히 분할된 경계들 위에서 완만하게 어슬렁거리거나 배회한다.

사실 허진(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한국화가 허진,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의 인간들은 언제고 역설 위에서 상존해 왔고, 그것은 사체와 진배없이 처리되었었던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생물학적으로만 보자면, 묘사는 틀림없이 미이라의 그것이지만, 그 세부는 역설(?)로 가득했었다. 사망의 음영이 드리워진 퀭한 눈두덩에 비해 입술은 탐욕스럽게 두툼했고, 피부는 완전히 부패했지만 아랫 배는 여전히 불룩했었다.

당시에도, 빈사의 도상학 위에서 탐욕이 유희하거나, 장례식 분위기와 삶의 가장 천박한 동기가 공존한다는 역설의 수사학이 지배적이었다. 주사위는 던져지지 않았고, 탈출과 머무름, 생과 사의 그 어느 쪽도 결정적이지 못 한, 섣불리 낙관이나 비관을 택할 수도, 희망과 절망의 그 어느 편에도 설수 없는 어정쩡함과 머뭇거림. 이 때, 시선은 불가피하게 부조리의 수사학 그 자체로 향하고, 결과는 (어쩌면 작가조차도)원치 않는 중립이 파생시키는 실소이리라.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