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핀테크를 넘어 테크핀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모바일 혁명에서 시작된 O2O 로드맵이 이제 초연결과 5G,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의 바람을 타고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진화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오래된 욕망인 ‘돈’과 시대의 트렌드와 만나는 순간이다. 2020년 현재, 가장 생활밀착스러운 서비스는 여전히 ‘돈을 다루는 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테크핀 시대가 가져올 부작용이다. 특히 캐시리스(현금이 사라지는 현상)를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는 ICT 패권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과 관련이 있다.

▲ 캐시리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테크핀 전성시대

토스의 비바리퍼블리카가 지난달 16일 금융위원회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통과했다. 본인가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이어 또 하나의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하는 셈이다. 

오픈뱅킹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다양한 간편결제 솔루션도 나날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2018년 기준 국내 모바일 간편결제 가입자는 총 1억7000만명(서비스 중복 포함)이며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오프라인 간편결제 이용금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본격적인 테크핀 시대의 개막이다.

글로벌 시장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테크핀 시장 투자는 405억달러에 이르며, 투자 규모 연평균 증가율만 무려 67%다. 기존 ICT 기업은 물론 기존 금융권도 속속 시장에 뛰어들며 나날이 판은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네이버의 라인은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과 만났으며, 구글은 씨티그룹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은행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테크핀의 영역이 금융과 ICT의 만남을 넘어 모빌리티와 시너지를 내는 장면도 눈길을 끈다. 

동남아시아의 그랩은 지난달 30일 싱가포르 최대 통신사 싱텔(Singtel)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 취득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랩과 싱텔은 컨소시엄에 각각 60%와 40%의 지분을 보유할 예정이다.

디지털 은행 설립을 통해 편의성과 개인맞춤 서비스 향상을 기대하는 ’디지털 퍼스트’ 소비자와, 여신 접근성 부족을 핵심 페인 포인트(pain point)로 꼽는 중소기업의 니즈에 부응한다는 계획이다. 루벤 라이(Reuben Lai) 그랩 파이낸셜 그룹 매니징 디렉터는 “이제는 높은 접근성과 투명성, 가격 합리성 및 다양한 뱅킹,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정한 의미의 고객 중심 디지털 은행을 설립할 차례”라면서 “강화된 개인맞춤 서비스로 고객의 저축 증대를 통한 재산 형성에 기여하고, 매끄러운 거래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랩은 우버를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밀어낸 모빌리티 기반 기업이지만 2016년 그랩페이월렛(GrabPay wallet)을 출시하고 2018년에는 그랩 파이낸셜 그룹을 설립하며 결제, 리워드, 대출, 보험 솔루션을 제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동의 모빌리티가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강력한 생태계 전략을 보유한 가운데, 이를 적극적으로 금융의 방식으로 풀어낸 점이 새롭다.

테크핀 시대가 디지털 자산의 개념으로 확장될 경우, 전망은 엇갈리지만 암호화폐 업계와도 접점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테크핀 시대의 ‘연료’는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통화에 기반을 두지만, 이를 디지털 자산 전체로 연결할 경우 전혀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페이스북이 리브라 프로젝트를 통해 자체 플랫폼의 새로운 기축통화를 암호화폐 기반으로 상용화시키는 것에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테크핀 시대를 맞아 굳이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통화에 기반을 두지 않고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통화 패러다임을 이식한다면, 이를 디지털 자산으로 명명한다면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기존 금융권의 경우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통화에 기반을 둔 테크핀은 ‘활용의 방식’ 측면에서 용인할 수 있어도, 연료 자체가 변해버리는 디지털 자산 연장선의 암호화폐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된 충돌은 벌써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제도권 금융에서는 일관적으로 암호화폐 업계를 맹공격하고 있으며,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절대 기축통화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디지털 ‘자산’이 될 수 없다는 전제도 선명하다. 그러나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사이렌오더 하나면 전세계 스타벅스를 별도 환전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상의 일환으로, 2018년 스타벅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유수의 대기업과 연합해 백트(Bakkt)라는 암호화폐 거래소 파트너로 참가했다”면서 “스타벅스는 더 이상 단순한 커피회사가 아니라 규제 받지 않는 은행”이라고 말한 이유다.

▲ 캐시리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캐시리스, 필연적 현상이지만...

본격적인 테크핀 시대가 열리는 한편 디지털 자산에 대한 논의도 확장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가운데, 캐시리스 현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테크핀과 디지털 자산 시대가 캐시리스 시대를 전제한 것은 아니지만, 테크핀과 디지털 자산의 시대가 열리면 캐시리스 시대도 자연스럽게 열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신용카드 결제도 캐시리스에 포함되지만, 이를 테크핀 시대의 일부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큰 틀에서 테크핀과 현금이 없는 캐시리스 현상은 일종의 인과관계로 보는 편이 맞다.

캐시리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다. 당장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통화, 즉 현금을 제작하고 이를 보관하며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현금을 디지털 신호로 만들면 이론적으로는 유지비용이 ‘제로’다. 이러한 장점을 살리기 위해 테크핀 시대, 디지털 자산 시대를 맞아 확실한 캐시리스 시대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현금 의존도가 높은 일본에서도 캐시리스와 관련된 강력한 정책이 나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5년 20% 수준인 자국 캐시리스 비율을 2027년 4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이제 캐시리스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테크핀과 디지털 자산, 캐시리스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반론도 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계급격차가 커지는 지점이다. 아직도 저소득층은 신용카드 및 간편결제 등의 사용에 진입장벽이 높다. 또 디지털 기기를 익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노년층도 테크핀 시대가 끌어내는 캐시리스 시대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도 있다. 테크핀, 캐시리스 시대가 되면 모든 돈의 흐름이 디지털 신호로 입력되어 관리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의 일부인 암호화폐에서는 탈 중앙화 플랫폼 기반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지만 아직 이러한 전략은 대중적이지 못하다. 돈의 흐름이 투명해진다는 것은, 그와 비례한 ‘빅 브라더’의 등장을 예고하기도 한다.

일자리 문제도 얽혀있다. 캐시리스 시대가 열리면 돈의 관리에 있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으며, 결국 사회 공동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인공지능 일자리 문제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분별 과세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 캐시리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출처=갈무리

ICT 패권주의 시험대 올라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캐시리스에 대한 반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의욕적으로 캐시리스 시대를 준비하고 있으나 그 진척도는 상당히 더딘 편이며, 캐시리스의 성지로 불리는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회의론이 번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가 오는 3월부터 캐시리스 정책의 일환으로 롱아일랜드레일로드(LIRR) 객차 내 승차권 판매 시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가이드 라인을 세웠으나, 최근 이를 포기했다. 현금 결제가 주요 수단인 학생과 저소득층 주민들의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테크핀 시대와 캐시리스 현상은 결국 ICT 기술, 나아가 ‘ICT 기술이 과연 옳은가?’라는 근원적인 고민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ICT 패권주의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테크핀과 캐시리스는 그 방향성을 측정하는 일종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