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ditional Planes, 1979

2015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최명영의 개인전을 보러갔다.(최명영/평면조건展, The Page Gallery, 8-9월). 그곳에는 1975년의 작품에서 신작까지 이를 테면 회고전을 겸비한 신작전으로 매우 큰 규모의 전시였다. 최명영을 만난 것도 모처럼 오랜만이고 일련의 그의 작품들을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전시장을 둘러보았을 때 이를테면 <평면조건 8196> (도록번호 29번)처럼 흰색을 몇 번이나 겹쳐 칠한 모노크롬의 작품 군을 보고 있다 보면 나의 눈이 자연스럽게 강한 반응으로 감지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방문해서 현지의 한국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1981년 이었고, 확실히 최명영의 작업실을 방문 했을 때 본 작품 군이 이 작품들이었다고 짐작된다.

 

35년 전의 일이지만 큰 감명을 받았었다. 나는 그(한국단색화 최명영, Korean monochrome painter CHOI MYOUNG YOUNG, Dansaekhwa CHOI MYOUNG YOUNG, 최명영 화백, 최명영 작가, 단색화 최명영, 韓国単色画家 崔明永) 보다 5년 연하이고 이제 2015년이 되어 서로 나이도 들어서인지 전시장에서 나의 신체와 눈이 자기 도 모르게 센티멘탈 한 감성으로 되 버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 감성을 뿌리 치고 전시장의 작품 군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을 때 두 가지 인상을 느꼈다.

첫 번째는 [본질적인 변함없음]일 것이다. 진정한 화가, 본질적인 화가는 젊음에 기댄 시행착오의 시기를 지나 자신이 실현해야 할 회화의 펼침을 감각적으로 파악한 이후에는 일관되고 변치 않게 되는 것 같다. 변화가 없다고 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재능도 있다. 근대의 어느 시기 이후 [새로울 수 록 좋다(The newer the better]든가 표현은 언제나 새롭지 않으면 안 된 다라는 사고가 지배했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부정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은 회화의 [표면적인 양식]의 변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변화나 전개라는 것은 깊이 있는 향함이어야 만 한다. 단 회화라는 평면작품에서는 그 깊이라는 것은 적어도 평면위에서의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에 회화라는 예술의 곤란함이 있다. 동시에 어떤 곤란함이라도 거기에는 [심화] 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회화는 진화하는 예술이 아니라 한결 같게 심화해야 할 예술인 것이다.

△치바 시게오(千葉成夫),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