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 제 칼럼의 ‘결론’은 “영-미계 비즈니스맨들과 토론시 반드시 핵심과 결론을 먼저 말하고, 근거와 사유는 그 다음에 할 것”입니다.

시작하자마자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리니, 좀 당황스러우시죠?

자, 당황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영-미 비즈니스에서는 어느 경우라도 ‘두괄식 화법’이 진리입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차라리 상대방에게 “참 사람 좋고 신중한데 무슨 말 하려는지 모르겠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보다는 “직접적이고 공격적이긴 한데 그래도 자신 견해는 확실하고 명쾌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시간을 중시하는 비즈니스계(界)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 저도 과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습니다.                                 

MBA 유학시절 팀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독일, 동유럽계 팀원들과 진지한 회의 중이었지요. 나름 고민을 하여 사안의 현황, 배경설명,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갭 분석, 결론순으로 나름 일목요연하게 제 의견을 전달해 나갔습니다. 배경설명 할 즈음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앞에 앉은 미국, 독일계 팀원들의 인중에 주름이 잡히더니, 앞으로 몸을 숙이고 제 얘기에 집중하던 몸짓들이 뒤로 넘어가 있더군요. 마침내 고개를 갸웃 갸웃하더니, 심각하면서도 애매모호한 표정들을 짓더군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습니다. 앵글로색슨계뿐만 아니라 독일 비지니스맨들과 토론 시에는 항상 결론을 먼저 제시하는 ‘두괄식’ 화법을 써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나의 입장(결론)이 무엇인지 듣고자 기대했던 팀원들은 저의 장황한 설명들 - 서두, 배경, 시사점, 상황분석 등을 인내심 있게 들어 주었으나, 정작 제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도대체 네가 하고 싶은 얘기는 뭐니?” 이렇게 다들 외치고 있었던 겁니다.

영어, 독일어는 공히 “주어-서술어-목적어(보어)” 순서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지와 행동, 주 핵심 메시지는 ‘동사(서술어)’를 통해 전달되죠. 동사의 위치가 어딘가요? 항상 문장의 앞입니다. 기호로 표현하자면, 중요한 핵심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보충 설명이 이루어지는 ‘▶’ 이런 모양 정도 되겠군요.

반면, 한국어는 “주어-목적어(보어)-…-서술어” 어순입니다. 화자의 의지와 결론을 보이는 서술어(동사)는 어디 있나요? 상대방과의 관계와 주어진 상황을 고려해가며 문장의 가장 마지막, 끝에 위치합니다. 역시 기호로 표현한다면, 이런 ‘◀’ 모양이겠네요. 즉, 덜 중요한 것부터 중요한 것으로 발전하여 결론을 가장 뒤에 표현하는 접근방식입니다. 왜 그래서 이런 말 있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된다.”

영-미인들의 이러한 언어구조 방식은 ‘시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여기는 이들의 시간관념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토론을 하건, 의견을 말하건, 글을 쓰건 상대방이 말하는 사람의 핵심의견이나 생각을 도입부에 먼저 파악하게 해주어야 내가 상대를 지지할지 반대할지 또는 비판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고, 그만큼 나와 상대방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 줍니다.   

같은 맥락에서 영-미계 비즈니스맨들의 시간개념이 가장 잘 반영된 부산물 중 하나가 ‘Executive Summary (개요, 요약)’ 같습니다.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수십 페이지의 사업계획서 및 제안서, 몇 백 페이지의 관련 보고서나 논문 등을 검토할 때, 빠트리지 않고 작성하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두꺼운 제안서를 ‘Executive Summary’없이 제출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요. 그런데 영-미 비즈니스맨들이 ‘Executive Summary’가 없는 두꺼운 제안서를 받으면 어떻게 할까요? 아쉽게도 그 서류는 읽히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서류 더미에 쌓여만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여, 몇 십 또는 몇 백 페이지의 비즈니스 제안서를 읽고 났는데, 그 내용이나 결말이 부실하거나 의도와 완전히 다른 결론이라면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당황스럽고 그 긴 내용을 읽고 파악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정말로 아까울 것입니다. 글을 읽는 사람의 시간을 배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즈니스 관행이 바로 ‘Executive Summary’일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영-미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여러분의 핵심 아이디어와 결론은 반드시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설명을 이어가세요. 비즈니스의 승률이 달라질 겁니다.

우리 오늘도 품위 있게 비즈니스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