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대(三代)이야기, 1990,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244×366cm/Three Generations of Stories, 1990, ink and pigment on several kinds of paper, 244×366cm

화면들은 크고 작은 조형양식으로 조립되는데, 주제부분은 큰 화면으로 처리되고 여타의 이미지들은 중간 크기의 화면과 작은 화면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주대신소(主大臣小)의 방법을 그는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표출된 형상들은 일상성의 일차적인 성격에서 2차적인 성격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 매체로서는 평면성, 정면성, 반복성, 이중성, 역사적 순환성. 상황성, 조형적 장식성 등과 상징화, 왜곡화, 나열화 등이 쓰이고 있다.

허진 작가는 이러한 요소들을 우리의 전통민화에서 찾고 있는데 그 서술적 조형요소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다시점(多視點), 원근법의 무시, 과거·현재·미래의 동시적(同視的) 표현, 사물의 상호비례 무시, 각 사물의 개별적 색채효과의 극대화, 대칭형·나열형 구도, 사물의 평면화, 이러한 민화의 조형요소들을 작가는 자신의 회화영역에 적용시키거나 변용하면서 자신의 조형어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순환체계(循環體系) 방법은 하나의 서사시(敍事詩)와도 같은 연대기적인 조형성을 가져다준다. 그러면서도 화면상에는 동시적 형상으로 드리워져 있으며, 자연의 섭리와 맞물리고 있다.

동시적 표현방법의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의 역사적 인물 등을 자신을 비롯한 현존의 주변인물과 사물 등과 병치하는 대비적인 효과에서 볼 수 있다. 또 도식화된 사물의 경우는 비인간화, 소외, 부조리 등의 아이러니로 나타나는 풍자화(諷刺化)된 구열상(龜裂像)을 표현한다.

▲ 默示(묵시)7, 1990, 여러 종이에 수묵채색, 200×524cm/Implied Apocalypse7, 1990, ink and pigment on several kinds of paper, 200×524cm

그리고 상징적인 이미지의 여러 가지 형상들은 주제와 함께 새롭게 조합됨으로써 개개의 형상성 차원에서 확장된 복합적 의미망을 갖게 된다. 그 의미망은 복합적은 조직에 의한 것이지만 주제를 축으로 한 통일성에 의해 확장된다. 따라서 복잡하고 다면적인 형상들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특성을 확연하게 드러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조형방법들은 작가의 회화에 있어 서술적 양식으로 대표된다. 전일적(全一的)으로 이뤄지는 상황적 구조, 유기적 혹은 다의성(多義性) 안에서의 통일성 그리고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적으로 총괄하는 시간적인 순환체계로 이룩되는 허진의 독특한 서술적 조형방법은 다분히 작의적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부분을 전체로 통제하는 프레임을 위한 사전계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장방형, 마름모형, 십자형, 화살표형 등 여러 가지 기하학적 형태로 구조되고 있는 프레임은 작가의 제작의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조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ARTIST HUR JIN,許塡,허진 작가,HUR JIN,허진 교수,허진 화백,A Painter HUR JIN)프레임 속에 여러 가지 형상들을 담고 있는데, 그 형상들은 앞서 언급한 일상적인 체험들로 구성되고 있다. 그 체험들은 형상성 혹은 추상성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 속에 내재하는 것은 상징성, 은유성 등을 포함한 주제를 위한 내용물들이다.

내용물들을 결정짓고 있는 재료와 기법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의 접목으로 설명된다. 마치 내용에 있어 시간적인 순환체계를 갖는 것처럼 재료와 기법 역시 과거와 현재를 혼합하는 방법으로 쓰인다.

△미술평론가 김리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