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기자]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때문에 허리 피기 어려운 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는 게 있다면 잠시 짬을 내 피는 한 모금의 담배가 아닐까? 하지만 몸에 좋지 않다고 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차마 끊지 못하는 담배 때문에 또 한 번 울화가 치미는 일이 생겼다. 다름 아닌 외산 담배사들의 가격 인상 꼼수 때문이다.

지난 10일 외산 담배업체인 필립모리스코리아가 말보로, 팔리아먼트 등 주요 담배 가격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전격 인상했다. 인상폭 200원은 8%라는 인상률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로써 지난해 상반기 원가 인상 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 BAT코리아, JTI코리아에 이어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약속이나 한듯 모두 담배 가격을 올리는 모양새가 됐다. 던힐과 켄트 등을 판매하는 BAT코리아와 마일드세븐을 공급하는 JTI코리아는 작년 4∼5월에 일부 제품 가격을 200원 올린바 있다.

이번 가격 인상이 더 씁쓸한 이유는 지난해 BAT와 JTI가 담뱃값을 올릴 때 인상을 미뤘던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시장점유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잠시 가격 인상을 전략적으로 미뤘던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다른 외국 담배회사들이 값을 올릴 때 잠시 쉬어가면서 반사이익을 충분히 챙긴 후 담뱃값을 올리는 꼼수전략이라는 비난이 거센 이유다.

사실 담배는 국민건강에 큰 해를 끼치는 위해산업이다.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세금 등 제세기금이 높게 책정된다. 담배로 인한 국민건강 재정의 악화를 감안한다면 높게 책정되는 제세기금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담배가격을 결정하는 제반 여건들만 제대로 알더라도 외국 담배회사들의 가격 결정이 얼마나 논리가 빈약한 지 알 수 있다.

제조사들 정부 가격결정 구조깨고 ‘배짱 장사’
이번 담배가격 인상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제조업자가 일방적으로 인상하는 이례적인 상황 때문이다. 2500원 짜리 담배를 기준으로 할 때 한갑 당 부과되는 조세기금은 1549.5원이다. 조세율은 무려 62%에 달한다. 여기에 판매업자 마진 10%를 제외하면 제조업자의 몫은 28%에 불과하다.

때문에 담배가격은 담배소비세, 교육세 등 세율에 더 큰 영향을 받으며 담배사업자의 가격결정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담배가격 인상을 주로 정부에서 주도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BAT, JTI와 이번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연이어 가격을 올린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는 전조현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988년 국내 담배시장 개방 이후 20년간 시장 확대에 주력해 온 외국계 담배회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최근 40% 내외까지 급성장 했다. 이같은 시장 확대를 기반으로 이제 외국계 담배사들이 본격적인 수익성 확대 전략으로 전환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들 외국계 3사의 가격담합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시장에서는 일단 저가정책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길들여 일정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다음 차츰 가격을 올리는 전형적인 ‘글로벌 꼼수 전략’으로 향후 담배가격 인상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라는 추론이다.

지난해 상반기 이미 담배가격을 올렸던 BAT, JTI와 이번에 전격 인상한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부담 가중을 표면적 인상 이유로 꼽고 있다. 하지만 수입 잎담배만을 사용하는 외국계 담배업체와 달리 2배 이상 더 비싼 국산 잎담배를 전량 구매 사용하는 KT&G와 비교할 때 원자재 가격상승의 압박이 가격을 필히 올려야 할 만큼 큰 것인지는 수긍하기 어렵다.

수익 국외유출에는 혈안, 사회공헌엔 짠돌이
굳이 국내 담배와 가격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필립모리스코리아의 가격 인상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 관측이다. 지난 2009년 729억원, 2010년 418억원의 천문학적인 배당금 외에도 2009년 367억원, 2010년 418억원이나 판매 대금의 로열티(8.5%) 명목으로 국외로 유출한 필립모리스코리아가 경영압박을 받는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이번 200원 가격 인상으로 필립모리스는 연간 영업이익(2010년 1332억원)보다 더 많은 1400여억원(2011년 판매량 8억9000갑 기준, 부가세·소매마진 제외)이 추가로 해외로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가격을 올린 BAT코리아, JTI코리아까지 가격인상 분을 합산하면 추가유출 규모는 약 3000억원 수준으로 커진다는 계산이다.

결국 외산 담배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다국적 자본의 이익실현을 위한 결정이라는 것이 여론의 핵심이다. 외국 담배회사의 인색한 사회공헌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외산 담배업체들이 배당이나 로열티 지급에는 통큰 결정을 하면서도 정작 사회공헌에는 생색내기 차원에서 마지못해 응하는 인상이 짙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회기부금액을 들여다보면 BAT코리아는 3억1000만원, JTI코리아는 1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4985억원의 매출을 올린 필립모리스코리아는 그 조차도 없다. 해마다 연매출의 2% 이상(최근 5개년 평균 576억원 수준)을 사회공헌 활동에 집행하고 있는 KT&G의 경우와 비교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국민건강이나 환경 등 사회해악적인 죄악산업(Sin industry)으로까지 일컬어지는 담배산업은 그 특성상 정부나 사회구성원의 용인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담배업체들의 사회 기여는 의무사항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크다는 의미다. 사회의 일원으로 사업 이익을 지역사회에 재투자하거나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야 함에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기업이익의 대부분을 국외로 유출한다면 건강이 미치는 해악 만큼이나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 이른바 국민정서다.

서민·물가당국 모두에게 부담… 정부 행보 주목
담배는 서민의 시름을 달래주는 기호품이다. 세상살이가 힘들 때 또는 삶이 너무 어렵다고 느껴질 때 세상 근심을 내려놓게 하는 애용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2500~2800원 정도의 담뱃값 부담은 고소득층 보다 저소득 계층에서 더 힘들게 받아들여진다. 당장 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직장인 최영식씨(37)는 하루 1~2갑을 피우는 흡연자다. 예전에 던힐을 주로 피우다가 작년 상반기 가격이 오르자 필립모리스의 팔리아먼트로 바꿨다는 최씨는 “가진 사람들은 200원 차이에 입맛까지 바꾸느냐고 하지만 하루 두 갑의 담뱃값이 솔직히 부담스럽다”며 “이번 기회에 아예 담배를 끊든가 국산 담배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한 달 4만~5만원의 담뱃값도 힘든 판에 담배 가격이 또 올라 부담스럽다”면서 “그나마 잠깐의 휴식같은 담배 피울 권리마저 빼앗기는 것 같아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국민건강 증진과 세수 확보라는 보편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각종 제세공과금 인상을 억제해왔던 정부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물가 억제도 필요하지만 외국계 담배사의 일방적 가격인상을 더 이상 수수방관하기도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자칫 이런 분위기가 또 한 차례의 담뱃값 인상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내심 속을 태우고 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