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n69-K 1969년

1970년대 한국미술은 1960년대 말부터 징후를 보인 예술의 본질적 물음에 대한 움직임이 다양한 시각과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현실화된 시기이다. 이 시기 예술적 개념을 탐구하던 미술계 흐름은 전위적 방법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되묻고자 했다.

특히 회화는 전통적 개념이 무너지면서, 공간적 환영을 포기하고, 회화본질이 평면임을 인정하는 '평면성의 원리'에 주목하였다. 이것은 현대미술에서 회화가 형태, 일루전, 이미지표현에서 떠나 새로운 형식과 이론을 무기로 회화영역을 확대시킨 사례들을 통해 구체화된 현상이다.

1970년대를 접점으로 한국화단에 등장한 '오리진', 'A.G, 'S.T그룹', '에스프리 등 젊은 세대 소그룹을 중심으로 새로운 미술경향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전개는 미술사적 가치와 평가에 새로운 미학적 시각을 접목하며, 한국 미의식 본성과 아이덴티티 정립을 위한 담론을 이끌었다.

이 변화를 주도한 위치에 있었던 많은 작가 중 최명영(崔明永: 1941~)은 당시 모노크롬회화가 주목했던 이미지 부정과는 또 다른 시각에서 회화적 표현에 의문을 던진 화가이다. 그는 물성의 체득화 과정을 통해 회화가 지닐 수 있는 평면적 존재가치를 탐구하며, 궁극적으로 평면화를 위한 ‘평면조건’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이 점에서 스스로 미적 관점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는 자기탐구와 그 흔적들을 집적시켜 온 최명영의 평면회화는 단순히 한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기록하는 의미 이상을 지닌다. 그 이유는 70년대 한국미술계의 주류였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을 통해 평면 회화를 추구했던 경향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최명영의 작가로서 출발점은 회화의 비실재성을 발견하고, 질료와 기하학적 조화를 탐구한 60년대 중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대학시절, 회화에서 재현이 지닌 리얼리티의 한계와 모순에서 회회화의 비실재성을 자각했다. 그리고 사물의 기하학적 패턴을 추구하는 작품으로부터 회화가 구체적 형태의 재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도출해냈다.

이는 당시 활동했던 주변 작가들의 영향 속에서 수용과 변용 과정을 거치며 실험적인 작품으로 나타난다. ‘청년작가연립전’의 ‘오리진’에 참여하면서 선보인 작품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기하학적 추상작업의 대표작품으로 자연의 대상이나 이미지에서 벗어난 형태로서 비정형적 추상이 지닌 감성적 회화와 차별을 둔 것에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성과 논리적 사고로서 기하학 구조를 이해하고, 수학적 비례에 기초한 공간 분할로 균형과 질서를 지닌 화면 구성을 추구하였다.

특히 화면의 붉은색, 황색, 청색 원색들과 부드러운 곡선은 무심한 기하학적 화면에 부여한 생명적 색과 선으로 화면의 조화로움을 이끌며, 평면의 적막함과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준다. 이 시기 그의(CHOI MYOUNG YOUNG, 최명영 화백, 최명영 작가) 작업은 서구 미술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기하학적 추상미술 선구자인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 1872~1944),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작품들은 최영명이 근본적인 독자성을 획득하고 정체성을 찾기 전까지 필연적으로 수용했던 경향의 작품들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대상을 표상하지 않고 물감 자체에 관심을 가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원리와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은 당시 한국화단이 맞이한 새로운 서구물결 속에서 기하학적 추상과 모더니즘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변종필 미술평론가